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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대장은 배웅하려는 이름난 자를 손으로 주저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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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대장은 배웅하려는 이름난 자를 손으로 주저 앉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29 10: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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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깬 반신반인은 어제 실수는 없었는지 그래서 술 깬 후에 후회 같은 것이 일어나는지 기억을 뒤로 돌렸다.

그러나 부하 앞에서 품위를 잃을 만한 행동은 없었다. 설사 그런 것이 있었다 해도 신경쓸 것 없었지만 그래도 나이가 늘어 갈수록 그런 것에 조금씩 관심이 갔다.

전에 없던 것이 지금 있는 것은 그가 갈수록 힘이 빠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러나 곧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은 선녀를 내려다보면서 반신반인은 픽 웃으면서 아직은 아니다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어젯밤의 일이 그리고 오늘 새벽의 일이 그러니까 두어시간 전에 작은 선녀와 함께 했던 두 번의 거사에 미쳤던 생각 때문이었다.

아직은 아냐, 그는 팔을 안쪽으로 구부려 이두박근을 부풀렸다. 그는 발로 차서 작은 선녀를 깨울까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좀 귀찮았지만 손수 커피를 먹기 위해 물을 끓였다. 은은한 향이 넓은 홀을 가득 채우면서 퍼져 나갈 때 그는 따뜻한 온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기보다는 땅 위에서 인간들과 사는 것이 백번 좋은 일이었다. 물론 하늘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들의 명령을 받아야 할 때가 있고 그는 그런 것이 싫었다.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행할 운세를 그는 타고나지 않았다.

한번은 변장을 하고 쌍포 중 경호팀장만을 데리고 조계사 근처에 있는 점 집을 방문했다. 허름했으나 권세가들 사이에서는 신년 운세 잘 보기로 소문난 집이었다.

누구라는 것을 그는 알리지 않았다. 말끔한 턱에는 수염을 붙였고 머리는 귀를 가릴 정도로 가발을 썼다. 그것도 모자라 모자까지 썼다.

상대방을 살피기 위해 굴리는 눈알을 감출 수 있는 안경은 필수였다. 불룩한 지갑을 확인한 그는 거침없이 그러나 조심하는 눈치를 보이면서 절 모양의 붉은 간판이 있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각이라 관상쟁이는 미처 몸 단장을 하지 못한 상태라 좀 당황했다. 마침 간판보다 더 붉은 깃발이 낮은 대문 위에서 흔들리자 비가 오려나보다고 혼잣말을 하면서 난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반신반인은 임기응변에 뛰어난 그가 사람도 제대로 볼 줄 알 것으로 짐작하면서 제대로 추천을 한 경호대장을 신임한다는 듯이 슬쩍 쳐다보았다.

짙은 안경 안에서 눈의 표정을 읽지 못했으나 쌍포는 그의 상전이 지금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심기까지 경호하는 그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리 없었다.

속으로 전하를 위해 죽을 각오로 임하겠다고 다짐을 한 번 더 하면서 너무 일러서 미안하다고 점잖게 운을 뗐다.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한 분야의 전문가에 대한 예의였다. 이런 태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최선을 다하게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그런 것까지 염두에 둔 경호대장을 반신 반인은 흐뭇하게 생각하면서 언제까지 마당에 세워 둘 작정이냐고 눈길을 돌렸다.

두 사람은 아직 세수도 하지 않아 부석부석한 얼굴의 이름난 사람의 안내를 받으면 안으로 들어갔다.

부처와 비슷한 사람의 좌상과 어제저녁 차린 상이 그대로 있는 방 안에서 이름난 자는 잠시만 기다리라며 쪽문을 통해 사라졌다.

잠시 후 나타난 그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고양이 세수를 마쳤는지 얼굴에는 연지곤지 같은 화장을 했다.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위 아래가 노란 색으로 옷을 바꿔 입은 그는 직업 정신이 투철한 사람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수세에 몰렸던 적이 공세로 나선 것과 같은 형국에서 그는 조금 거만한 태도로 종이를 내밀었다. 적으라는 뜻이었다.

눈치빠른 경호대장이 앞에 있는 펜을 들고 반신반인 대신 그렇게 했다. 그 모습을 반신반인이 제대로 적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곁눈질로 보았다.

이름난 자는 다 적기를 마치자 뺏듯이 종이를 받아 들고서는 손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했다. 마치 늘어선 시체를 세기 위한 제스처 같았다.

그는 역시 뺏듯이 받아든 볼펜으로 준비된 종이위에 무언가를 끼적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우린 급한 사람이오.

경호대장이 잔꾀를 부리지 말라는 듯이 쏘아 보았다.

여기 오는 자들은 힘깨나 있는 자들이었고 그들은 대개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을 이름난 자는 알고 있었으므로 게의치 않는다는 듯이 하던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상대가 지칠 정도쯤 해서 한 마디 불쑥 질렀다. 태어난 생시가 예사롭지 않다는 듯이 놀라는 눈은 거두지 않았다.

너는 누구 밑에 있을 놈이 아냐, 네가 대장이다.

쌍포는 그때 품속에 있는 권총으로 놈의 숨통을 단번에 끊기 위해 손을 가슴 쪽으로 옮겼다. 감히 반말이라니. 게다가 나이도 어린놈이, 건방지다.

그는 이런 말이 목구멍에서 나오다가 걸리는 듯 꺽, 꺽하고 입맛을 다셨다. 화를 겨우 참은 경호대장은 다 알았다는 듯이 뒤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부처상을 쳐다봤다.

아래를 보고 있는 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아차 싶었던지 들었던 손을 앞쪽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점쟁이는 물어볼 말이 있는지 말로 하지 않고 턱짓으로 짙은 경호대장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안경을 쓴 이에게 물었다.

반신 반인은 대답 대신 지갑을 꺼내 수표 여러 장을 바닥에 던지듯이 떨어트렸다. 네가 잘 났어도 내 앞에서는 고개를 숙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또 더 많이 잡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길게 펴서는 만 원짜리 수십 장을 꺼내서는 바닥에 날렸다. 점쟁이는 현금보다 수표 쪽에 관심을 보였다.

숫자에 예민한 그는 적힌 숫자가 기대했던 것보다 많았던지 순간 놀라는 표정을 순간 지었다. 그러자 뺨에 그어진 칼자국도 따라 움직였다.

점쟁이는 그것을 바로 집으려다 말고 한 템포 늦췄다. 집어서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 조금 늦게 그렇게 할 것인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받아 두소.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쌍포가 한마디 하자 그것을 신호로 그는 얼른 흰 수표부터 집었다. 그리고 언제든지 오라면서 명함을 주고는 오기 전에 전화라도 하면 미리 준비하고 있겠다고 오늘 결례가 있었다면 사과한다는 듯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표하면서 발로 밟고 있는 아직 다 줍지 못한 수표의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점쟁이는 반신반인의 제대로 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해서 눈을 열심히 굴렸으나 그는 손으로 밀짚모자를 아래로 누르면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다. 무언가 모르는 것을 말로 짐작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선생님 존함은 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처럼 반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은 그가 보여주는 보통 사람과 다른 신적인 어떤 위엄 때문이었다.

반신반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섰다. 자칫하면 나올 뻔한 이름 석 자를 대지 않은 것에 그는 만족했다.

단 세 글자만으로도 상대가 누구인지 점쟁이는 알 수 있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유명해 세 살짜리 아이도 알 정도였으니 점쟁이가 모르면 간첩이었다.

반신 반인이 제힘으로 일어서자 쌍포는 나오지 말라는 뜻으로 배웅하려는 점쟁이를 손으로 주저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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