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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연기가 아닌 폐기였고 사기는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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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은 연기가 아닌 폐기였고 사기는 떨어졌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1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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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하게도 휴전선을 타고 임진강을 건너온 그들은 산속에 몸을 숨겼다.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였다. 어디로 내려가야 반신반인이 사는 곳으로 직행할 수 있을지 가늠해 보면서 숨을 골랐다.

입김은 이내 얼어붙었다. 북한산의 추위는 그날 영하 18도를 오르내렸다. 발은 감각이 없고 굽은 손가락을 펴지지 않았다.

서너 명씩 모여 앉은 그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살기 어린 눈이 번득였다. 그러나 피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보아온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이 그전보다 더 빛을 발할 뿐이다. 이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남은 동료들과 죽은 동료들을 생각하면 작전은 성공으로 끝나야 한다.

그들은 억지로 손을 펴고 맞잡았다. 떠나올 때 건장한 체구의 수령은 ‘동무들, 무훈을 비오’ 한마디 했다. 그를 위해서도, 그의 조국을 위해서도 반드시 그래야 했다. 수령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하얀 눈썹 위로 눈물방울을 떨어트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빨리 남하했다. 훈련보다 실전이 강한 것을 감안해도 놀라운 질주였다. 분노가 없었다면 얼음산을 이런 속도로 진군할 수는 없었다.

그들 속에 숨은 분노가 무엇인지 왜 그들은 그런 분노를 키웠는지 그 분노를 키워준 자들만이 분노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예상 저지선을 언제나 뛰어넘었다. 사람이 갈 수 있는 하루 최대치를 정해 놓으면 그 배를 달렸다. 분노의 힘은 그런 것이다.

바위틈에 잠복해 있던 그들은 날이 새기 직전에 돌격을 감행했다. 애초 작정했던 시간보다 무려 23시간이나 빨랐다. 그러나 공격으로 정한 새벽 시간대는 엇비슷했으므로 지체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복장도 바꾸지 않고 대담하게 시민들이 움직이는 도시로 뛰어들었다. 눈썰미 있는 아침형 인간이 수상한 행적의 그들을 신고했고 높은 벽 앞에서 출동한 경찰의 일차 저지를 받았다.

숫 적으로 불리한 그들은 초반 우세를 이겨내지 못했다. 기습공격의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속전속결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쓰러진 주검은 한동안 방치됐다. 구중궁궐의 깊은 곳에 있던 반신반인은 좀처럼 놀라지 않는 대담한 심장을 가졌음에도 이 사태 앞에서는 손을 조금씩 떨었다.

나중에는 더 심해져 주변을 지키던 경호 대장조차 그러지 말라고 손을 잡고 부축 일 정도였다. 마침 처가에 와 있던 결혼한 딸은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같이 떨면서 역시 그러지 말라고 아버지를 달랬다.

여섯시 33분 총알이 떨어진 그들은 두 손을 들고 항복을 하거나 총을 버리고 달아나지 않았다. 자살용으로 남겨둔 마지막 한 알로 자신의 목을 겨냥하거나 칼을 꺼내 들고 조선 병사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무모한 짓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얼마나 잔인한 자들인지 두고두고 화제에 올리는데 앞머리에 섰다.

죽을 때 어버이 수령을 외치는 것은 그 다음 이었다. 칼과 수령. 이 단어는 나라 전체를 하나로 묶는데 성공한 키워드였다. 다른 이견은 없었다.

신고 정신이 투철했던 아침형 인간은 신고하고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상황을 지켜본 관계로 칼을 들고 돌진하는 적과 그 순간에 질렀던 소리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기자들에게 전했다.

저기 쓰러진 자가 칼을 들었다. 그리고 총에 맞아 쓰러지면서 수령을 외쳤다. 눈치 빠른 기자는 칼과 수령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다음날 신문은 무자비한 적은 최후의 순간에 칼을 빼들고 두목 수령을 외쳤다고 헤드라인을 걸었다. 제목이 길어서 전달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했던 편집국장의 걱정은 기우였다.

사람들은 그 말을 외고 다녔다. 무자비한 적은 최후의 순간에 칼을 빼들고 두목 수령을 외쳤다.

사람들은 혀를 차면서 신문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고개를 디밀고 단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다 읽은 것을 또 읽어 내려갔다.

제목 아래에는 피로 보이는 검은 물줄기가 쓰러진 시체 옆을 따라 흐르다 멈췄다. 선명한 그것은 끌고 온 자국을 길게 남겼다.

사막의 뱀이 자신의 흔적을 감추지 못하는 것처럼 그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끌린 자국을 따라가면 시체가 있을 것이다. 시체를 들지 않고 끌고 왔구나.

사람들은 시체임에도 일말의 동정을 보이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는 말을 삼가거나 조심해야 한다는 내려오던 오랜 전통은 무시됐다. 그들은 사람도 시체도 아닌 짐승의 무리였다.

죽어서 움직이지 않는 그것들을 세기 좋게 일렬로 늘어놓았는데 딱 삼 십 명이었다. 신문을 보던 사람들은 손가락을 꼽으면서 숫자를 계속 세어 나갔다.

숫자가 늘어날수록 분노의 함성도 높아갔다. 소리를 지르면서 각자 안에 감춰진 두려움을 떨쳐냈다. 두려움은 곧 적의로 바뀌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상황이 종료되자 절대자는 자신이 긴장했던 조금 전의 상황은 잊고 부하들을 긴급히 소집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그들은 부르는 소리를 듣자마자 그 앞에 모여들었다.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선처를 바랐으나 절대자는 혼내는 대신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것이 절대자의 장점이었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것, 그는 오랜 군인생활에서 그것을 터득했다.

다 임자들 덕분이야. 그가 호탕하게 말했다. 낮은 저음이 고음질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듯이 단전을 거친 그의 음성은 절대자만이 가질 수 있는 품위를 더해줬다.

평소 준비를 했으니 이 정도지 아니면 어쩔 뻔 했어. 그는 칭찬의 말로 부하들을 안심시켰다. 그것은 동시에 충성경쟁을 유발했다. 이런 절대자에게 과연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나를 알아 주는데 목숨 정도는 기꺼이 바쳐야 한다. 냉정은 찾은 절대자는 늘어선 부하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기까지 했다. 일부러 웃는 웃음은 그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리려야 한다. 침착한 부하들은 여유를 부리면서 권위를 찾아가는 절대자의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절대자는 그러는 대신 부하들에게 의견을 말하라는 기회를 주었다. 자신의 판단을 보류하면서 부하들의 여론을 모으것 역시 절대자의 장점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도 말할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절대자의 심중은 헤아릴 것이 없을 만큼 단순했다.

피에는 피로. 공격에는 공격으로.

절대자는 그 순간 호탕한 웃음 속에 엷은 웃음을 새로 깔고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턱을 가볍게 끄덕였다. 동의의 표시이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밀고 나가라는 의미였다.

부하들은 흩어지고 참모 둘만 옆에 남았다.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으르렁거리는 표정을 지으면서 서로 네 탓 이라고 입속으로 까불어 댔다. 절대자를 욕보였으니 한 방 먹어라.

생각 같아서는 주먹을 날리고 사생결단을 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니었다. 안마당까지 적이 침투한 것에 대한 책임은 둘 중의 하나가 져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책임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상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둘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절대자는 또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움직였다.

이참에 귀찮은 것들을 다 쓸어내자. 그것이 물이든 불이든 상관하지 않으리라. 절대자는 속으로 이런 다짐을 하면서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위기는 호기의 다른 말이었다.

눈보라 휘날리며 만주벌판에서 추위에 떨며 전선을 누볐던 그는 이런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천황을 위해서든 독립을 위해서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오직 명령에 따른 결과만이 있을 뿐이었다.

적에 대한 적개심은 날로 높아졌다. 모여든 사람들은 천인공노할 일을 벌인 집단을 증오했다. 증오는 증오를 불러 왔고 우리도 보복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빠르게 모아졌다.

복수만큼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도 없다. 모든 두려움은 사라졌다. 오로지 적의 심장 깊숙이 칼을 들이미는 일에만 신경이 곤두섰다.

준비는 착착 진행됐다. 그들보다 더 빠르고 강하고 더 잔인한 대원들은 선발된 자의 자부심까지 더해 인간 병기로 성장했다. 감옥에서 죽으나 전투 중에 죽으나 죽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싸우다 죽지 않고 살면 살인죄든 뭐든 저지른 모든 죄는 없어진다. 그것이 그들이 받는 유일한 포상이었다.

그 포상은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생명보다 더 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죄수들도 알았다. 그들의 용감함과 무모함은 이런 데서 왔다.

지휘관은 이것을 십분 이용했다. 살아서 영웅이 되라는 말을 덧붙일 때면 젊은 피는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그들은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깨진 유리로 손가락을 찔렀고 허벅지 살을 날 선 대검으로 잘라 났다. 피가 나올 때 그들은 비명을 질렀으나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 더 잘라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모아진 살점들은 불에 태워졌고 기름이 탈 때 나는 냄새가 진해지면 술잔이 돌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동지애를 다졌고 살의를 키웠다.

그들보다 더 용감한 전투력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외계인이 긴 혀를 이용해 기습공격을 감행해도 그들을 당해 낼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상부에서는 디데이를 정해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무엇보다 훈련이 길어지면서 최상의 전투력은 유지되기보다 서서히 꺾이고 있었다. 교관들은 그 점을 눈여겨보고 이를 건의했고 상부는 알았다는 전통을 내려보냈다.

검은 두건을 쓰고 섬의 모래 사막에 집결한 그들은 명령만 기다렸다. 충천한 사기는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백발백중 사격술은 그 누구도 포위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날짜는 한 차례 연기됐다. 그 이유를 궁금해했으나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분노한 시민들은 열었던 궐기대회를 또 열고 짐승만도 못한 그들이 저지른 만행을 규탄하면서 저주의 행렬을 이어갔다.

이때가 공격의 적기였다. 그러나 작전은 또 연기됐다. 부산까지 내려갔던 궐기대회는 다시역으로 서울로 올라오고 있었다. 대전까지 왔으나 작전은 한 차례 또 미뤄졌다.

대원들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처우도 부실했다. 교관들은 그들을 치워야 할 골칫거리로 여겼다. 작전은 연기가 아니라 폐기였다. 절대자는 이만하면 됐다고 했다. 원하는 것 이상을 얻었으니 소란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신임하던 상부는 섬에 모인 그들을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부패하기 전에 버려야 했다. 그런 대접이 싫었던 그들은 차라리 감옥으로 돌아가자고 은밀히 모의했다.

죽으려고 섬에 왔으나 그럴 기회가 오지 않자 그들은 단독으로 작전을 하자고 모의했다. 감옥이 아닌 훈련받은 대로 현지로 투입되자, 그들은 스스로에게 명령을 내렸다.

상부의 지시 같은 것은 하달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안 그들은 지시하면 따르기 위해 무리가운데서 가장 냉혹한 자를 대장으로 정했다. 대장이 된 자는 바늘과 실을 가지고 누구를 시키지 않고 홀로 전투복에 별 두 개를 달았다. 그리고 작전 명령으로 망나니 원을 발령했다.

달빛이 환한 팔월 보름을 사흘 앞둔 어느 날 술타령을 하는 교관 13명을 단 13초 만에 13발의 탄환으로 살해한 그들은 북쪽을 향해 보트를 몰았다.

어둠 대신 달빛을 택한 대원들은 그 빛을 이용해 물길을 잡았다. 삼십 분 후에 섬에 상륙한 그들은 보트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각자 무기를 점검하고 육지를 타고 달렸다.

그들은 남쪽으로 내려온 적들보다 더 빨랐다. 날이 새기 전 하얀 궁전 앞에 모인 그들은 각자 정해진 위치로 산개했다. 홀로 남은 대장은 궁전의 맨 위에서 흩날리는 깃발을 보았다.

끝장내리라. 그는 두 주먹을 쥐었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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