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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이렇습니다, 관등성명 외치듯이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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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이렇습니다, 관등성명 외치듯이 크게 소리치고 싶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7.0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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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는 동기 이병과 영등포 밤거리를 돌았다. 철책 길을 순찰돌 듯이 한 바퀴 걸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휴가 나온 병사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인 것처럼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실행했다.

보이는 것은 자세히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은 고개를 디밀고 무엇이 있나 호기심의 눈알을 굴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는 두 눈은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대감 같은 것으로 싸여 있었다. 대개의 기대가 그렇듯이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싸면서도 푸짐한 안주를 제공하는 허름한 술집이라고 판단할 만한 곳을 더듬고 있었다. 더 돌아도 새로운 것은 없었다. 미리 짠 일정표는 시간 보내기용이었고 그런 시간은 즐거웠기 때문에 이제 목표는 달성됐다.

어느 한 곳을 골라 자리를 잡자 근무가 끝난 것처럼 주어진 일을 해냈다는 작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근 한 시간 정도 여기저기 기웃거렸으니 근무를 섰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영등포 밤거리의 찬란한 레온 사인과 그것이 부르는 유혹은 술자리의 떠들썩한 외침과 교묘하게 섞였다. 이곳도 전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절대자가 죽었으나 사람들은 술을 먹었고 떠들었다.

전방이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근무 강도가 세지고 긴장의 정도가 더 높아진 것은 확실하다. 훈련은 실전처럼 이어졌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처럼 나쁜 것이 있으나 희미하게나마 그 반대도 있었다.

점호 전에 정신무장 교육이 추가됐다. 그것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시간이 없으면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쳐 맞거나 단체 얼차려를 받아야 했다. 병사들이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때는 침상 점호도 없었다. 취침 점호로 대신했고 이때는 정신을 무장하는데 시간을 썼다. 교관의 교육이 다 끝나기도 전에 코 고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알몸에 완전군장으로 연병장 열 바퀴를 돌아도 시원치 않을 일이다.

그러나 교관은 인자했다. 별일 아니라는 듯이 잘 사람은 자고 깨어 있는 사람만 상대로 하지 못한 말을 마무리했다. 한 사람이 추가돼 양쪽에서 코를 골아도 그래서 내무반 전체가 그 일을 알고 있어도 교관은 너털웃음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장교들은 이처럼 어떤 때는 병사들에게 좀 더 너그러웠다. 전에 없는 일이었으나 나쁘지 않았으므로 정신교육이라는 것이 군 생활의 필요 덕목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사회도 그랬다. 무거운 공기는 차츰 바뀌었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저절로 순환됐다. 주문하지 않은 술안주가 추가된 것은 정신교육 같은 것이었다.

사회는 그 전에 맛보지 못한 미식의 손짓에 기꺼이 동참했다. 막걸리를 먹으면서 막걸리 법을 걱정하지 않는 그들은 어제 일은 한 세기 전에 일어난 역사라는 듯이 까마득한 과거로 인식했다.

그러나 그러기에 그들의 시간이 짧았고 다가올 어둠은 그 이전의 어둠을 덮을 만큼 검고 거칠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폭풍이 오기전에 잔잔한 물결이 영원히 지속 되리라는 믿음은 늘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사회의 단면이었다.

술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했다. 달든 쓰든 성구는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며 입맛을 다셨다. 죽으러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처럼 흐뭇한 표정이 얼굴 가득 퍼진 것은 알코올과 겹친 변화하는 공기에 편승했다는 안도감이었다.

놓칠 뻔한 버스에 올라타면 이런 기분이 들지 않는가. 더구나 이 버스는 지각을 막아주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군대 생활도 나쁠 것이 없었다. 살림살이가 확 펴진 어느 가난한 집의 가장이 된 듯이 어깨 한 번 으쓱 해보고는 다시 술잔을 부딪쳤다.

동기는 대구로 가는 막차를 예약해 놓았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그가 걸어가기 시작할 때 성구는 상봉 터미널에서 보자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대고 손을 들었다.

뒤돌아본 동기가 비틀대면서 성구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으나 성구는 벌써 다른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한 시간 후에 만나자는 연락은 미리 취해 놓았다. 얼추 그 시간이 지났다.

상대가 나오지 않았는지 성구는 공중전화를 걸었고 20분 후 누군가와 만나 지금 서 있는 곳보다 조금 더 깊숙한 야채시장 안쪽으로 사라졌다. 흐릿한 여관 불빛이 반기기보다는 방이 없으니 어서 가라는 듯이 떠밀어 대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자 동아리 선배와 과 동기가 있었다. 네 사람은 대충 인사를 했다. 그중 장발이 군바리와 술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들은 가지온 술병을 앞에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장발이 먼저 술을 따르고 건배를 제의했다. 자유를 위해, 그러자 나머지 세 명은 따라 했고 성구도 뒤늦게 자유를 위해 잔을 들었다.

그 말을 할 때 그들은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 얼굴에 가득 묻어났다. 마치 내가 아니면 누가 하랴 같은 자신감을 넘은 오만함도 있었다.

목소리는 낮았으나 힘이 있었고 의문을 나타내기보다는 확신하는 말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젊었으므로 조금 겁이 없었고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투의 언사는 삼가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은 취중 진담을 늘어놓았다. 성구의 신분을 몇 마디 말로 확인한 그들은 그도 자신들의 무리와 같이 한배를 탄 사람이라고 여기고 우리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우리는 혹은 동지라는 말도 나왔고 그 말을 할 때 그들은 흩어지지 않고 뭉쳐 있다는 연대감을 느꼈다.

그래 우리는 우리야. 성구는 주절대는 목소리로 누군가 우리가 하고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상대가 하는 말도 듣지 못하면서 옆으로 기대듯이 쓰러졌다.

절대자의 죽음 이후 학원가는 긴장모드였다. 골목길을 나설 때 성일이 느꼈던 그런 묘하고 탁하면서 무거운 공기가 캠퍼스 여기저기를 배회하고 있었다. 성구는 어렴풋이 들어오는 소리를 귀로 듣고 있었다.

전대협이 조만간 큰 판을 벌여 놓는다는 말에는 새로운 안주가 들어온 것처럼 정신이 조금 들기도 했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도 성구는 대대장이 휴가를 보낸 이유를 상기해 냈다.

대대장은 절대자가 죽고 없자 쓸쓸하고 불안했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됐던 것이 하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오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중령의 계급도 이런 시급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혼동의 시간을 보내야만 서랍장의 옷처럼 정리가 됐다. 아직은 옷들이 바닥에 널부러져있는 상태였고 그는 가만히 있기보다는 옷을 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성구의 휴가를 결정했다.

그는 야전 부대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전방 경험을 이유로 1년간 철원에 파견 나온 보안전문가였다.

중령은 예민한 더듬이로 위험한 곳은 피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후퇴하거나 옆으로 이동하는 것에 익숙했다. 본능적으로 대학을 떠올린 그는 성구를 통해 자신처럼 불안해하는 상관에서 어떤 기대할 만한 보고 거리를 주고 싶었다.

대대장은 그저 학교에 가서 친구도 만나고 부모님도 뵙고 이런저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고 오라며 특별 휴가에 대한 평범한 이유를 댔다. 다른 어떤 이유는 붙이지 않았다.

그러나 성구는 귀대하면 그가 부를 것이고 부르지 않더라도 관사로 찾아갈 것이고 그러면 그는 사회는 절대자의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이것저것 지나가는 말로 물어볼 것이다. 그러면 성구는 그런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 들은 것에 대한 느낌을 전해야 한다.

그때 대대장의 아들은 중 1이었는데 시원찮은 공부 탓에 성구를 1인 과외 교사로 붙여 놓았다. 간혹 가벼운 훈련에 빠지거나 야간 점호를 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면서 성구는 대대장 아들의 과외를 기꺼이 받들었다.

그것이 나쁘지 않았고 설사 나빴다고 해도 다른 방도가 없었다. 비상이 걸렸는데 성구가 휴가를 나가도 고참 들이 불평하지 않은 것은 대대장과 성구와의 이런 관계를 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까리라고 놀려댔으나 그 놀림의 이면에는 부러움도 있었다. 그래서 원래 따가리가 있었고 자신은 두 번째 따까리지만 원래보다 더 관심을 받고 있다는 것도 성구는 알았다.

대대장 부인은 성구가 과외를 마치고 돌아갈 때면 간혹 과일을 먹으라고 주거나 초코파이를 싸주기도 했다. 똥똥한 몸매의 사모님은 아들의 성적이 오르면 휴가를 주겠다는 말을 처음 과외선생으로 왔을 때 꺼냈다.

성적표를 보여주면서 그럴 가망성이 없다고 실망할까 봐 미리 단 한 명이라도 앞서면 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휴가를 건의한다거나 이야기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주겠다고 단언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하면 대대장인 남편이 그걸 따른다는 전제가 있었다.

일요일에 관사로 갔을 때 대대장은 없고 부인만 있었다. 휴일이라 사모님도 조금 편한 마음으로 거실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대대장은 서울로 볼 일이 있어 떠났다고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화장 거울을 손에 들고 뒤돌아보고 말을 할 때는 두툼한 목의 주름이 여러 개로 갈라졌다.

성구는 군대식으로 짧게 인사하고는 아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는데 사모님은 아이도 같이 나갔다면서 오늘은 아무도 없다고 역시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성구는 잘 됐다 싶어 부대로 돌아가 오랜만에 고참들 잔심부름을 하면서 그동안 빠진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달래주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모님은 차를 권하면서 난데없이 지금 서울은 시끄럽다고 말했다. 부산 등 지방도 마찬가지라며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 모양이냐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늘 새침한 얼굴로 인사만 받고 긴말을 하지 않던 사모님이 이런 예상치 않은 말을 하자 성구는 조금 당황했다. 사모님은 정치인들이 문제야, 문제 하면서 정치 문제로까지 대화를 확대했다.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전달이었으므로 성구는 네 하는 말 이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계속 말을 하지 않으면 이상할 것 같아 아들의 기말 고사준비는 그럭저럭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럭저럭이라는 말은 군대 말이 아니어서 성구는 잠깐 멈칫했다가 이번에는 준비가 부족했으나 다음번에는 더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을 확신한다고 마무리했다. 조금씩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순간 사모님이 바라는 것은 아들의 학업 성적에 대한 안심이 아니었다. 서울로 떠난 남편이 돌아올 때 어떤 것을 가지고 오느냐에 따라 안심의 태도가 결정됐다.

사모님은 대대장이 야전 전투병과가 아니라 특수 보안부대 출신임을 털어놓았다. 성 이병, 아마 텔레비전에서 대대장을 볼 날이 있을지도 몰라. 대대장은 이런 전방 생활이 아니라 서울에서 미군들과 생활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어.

찻잔을 들며 너도 먹으라는 듯이 눈짓을 하며 사모님이 덧붙였다. 네, 성구는 이번에도 짧게 대답했다.

쓰러진 성구는 이곳이 영등포의 여관방이 아니라 대대장 관사인가 헷갈렸다. 그의 생각은 군대에 있고 여관방에 있고 수시로 시공간을 넘나들며 들락거렸다.

취기가 온 방을 휩쓸었다. 그것은 돌아다니면서 고정된 것을 손으로 빙빙 돌렸다. 성구는 일어서려고 했다. 부대로 복귀해야 한다. 차가 없으면 걸어가자. 이틀이면 되겠지. 사회보다 부대가 편했다. 사모님을 만나 사회는 이렇습니다, 하고 관등성명 대듯이 크게 외치고 싶었다.

그는 빙빙 돌면서 서울지역 학생들이 모이는 장소와 날짜에 대해기억 하려고 몇 번을 외웠다. 거기서 터져 나올 구호가 어떤 것인지 들었던 내용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화장실에서 돌아와 고목 나무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성구가 무어라고 지껄이자 암구호 외치는 거야, 몸을 앞뒤로 흔들며 겨우 앉아있던 장발이 주절댔다. 짬밥이 쎄네, 쎄. 다른 한 명이 받았다. 그런 도는 소리에 투쟁이니 집회니 하는 말들이 간간이 섞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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