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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늙기 전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자인척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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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늙기 전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부자인척 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30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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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잡는 철은 정해져 있었다. 아무 때나 그물을 칠 수도 없고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한겨울이라면 그물 안에 뱀이 들어 있을 턱이 없었다. 여름이 막바지에 달한 무렵, 가을바람이 북쪽 나라에서 불기 시작하면 땅꾼들은 바빠지기 시작한다.

노숙자들이 한겨울을 나기 위해 삼 개월 정도 따뜻한 남쪽으로 피신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기간에 준비를 잘하면 나머지 계절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미리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그물값을 알아보고 그물 칠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장소가 정해지면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여러 차례 답사를 한 후 확신이 서면 그때 어느 정도 길이가 필요한지 어림짐작으로 잰 것을 장날 철물점에 들러 값을 따진다.

그물값을 뱀으로 대신 내는 경우도 있었다. 그물 주인이 먼저 말하는 경우도 있었고 겨우내 노름이나 술판으로 돈을 탕진한 땅꾼이 넌지시 제의하기도 했다. 미리 봐 둔 곳이 겹쳐질 때도 있다. 이럴 경우 땅꾼들은 윽박질러서 해결되면 홀로 작업을 한다. 그것이 안통해 독차지 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두셋이 합동작전을 펼 때도 있다.

어부가 바다로 나가야 할 때를 손꼽아 보듯이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린 땅꾼들이 드디어 작전에 나섰다. 갑자기 장마비가 쏟아지는 등의 다른 이유가 없다면 디데이를 물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색해 둔 장소에 도달하면 우선 가지고 온 삽으로 그물을 칠 수 있도록 주변을 정리한다. 마치 전방 철책을 치기 전에 고르는 평탄화 작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래야 그물 치기가 수월하고 그물을 따라 걸려든 뱀들을 수거하기에 용이하다.

처음이 어려우면 나중이 쉬운 것과 같은 이치를 땅꾼들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벌써 알고 있었다.

그물을 치고 친 그물이 쓰러지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말뚝을 박는 일도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이 작업이 끝나면 가장 중요한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 짓기 위해 삽으로 골을 낸다.

밭고랑을 잘 내야 장마철 배수가 수월해 작물이 썩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뱀 고랑 역시 중요하다. 뱀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또 다른 그물망으로 잘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작업이 끝나면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낮에도 한 번 가고 심심해서 할 일이 없으면 두 어 차례 갈 수도 있다. 길을 내니 반대했던 사람이 먼저 이용하는 어처구니를 막기 위한 것처럼 기껏 그물을 치고 고생을 했는데 나무꾼이나 다른 사람이 잡아가는 헛고생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 걱정 때문에 온 신경이 그물에 가 있는 사람은 산을 수시로 들락거린다. 그러나 좀 배포가 있고 기다릴 줄 아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낮 대신 밤에 한 번 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남들이 보기에 배포가 크든 적든 이런 땅꾼은 천한 직업이었다. 한철 벌어먹는다고 해도 나 땅꾼이요 하고 자랑하는 경우가 드문 것은 그런 분위기를 인식한 탓이다. 그래서 숨기거나 드러났을 때는 마지못해 인정하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땅꾼을 천직으로 아는 사람들은 겉으로 말은 안 해도 이처럼 쉬운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되레 다른 사람이 끼어들까봐 물어보는 사람에게 경계의 시선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는 100을 넘고도 남았다. 가장 잘하는 일을 좋아서 하면서 돈도 버는데 나쁠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촌이 소개한 땅꾼도 이런 경우에 해당됐다. 그도 처음에는 다른 땅꾼과 비슷한 경로를 통해 땅꾼의 세계로 진입했다.

보령의 어느 다리 아래서 고아들과 자라다 우연히 뱀장수를 만났고 그를 통해 발을 들여 놓았다. 그 후 그는 한 번도 땅꾼인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뱀을 잡기 시작한 이후로 손을 배에 대고 주린 배를 문질러본 적이 없었다.

뱀은 끼니를 제공했고 어떤 때는 돈까지 거머쥐게 했다. 거지라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손가락질을 받지도 않았다. 어떤 때는 지체 높은 부자가 돈을 싸가지고 와서 부탁하기도 했다.

좋은 놈으로 골라줘. 돈을 얼마든지 줄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땅꾼은 입이 귀에 걸렸으나 잘 내색하지 않았다. 그들은 드러내기보다는 표정을 감추는데 훨씬 더 능숙했다.

표정을 드러낼 경우 뱀의 형상이 상대방을 주눅들게 해 한 번의 부탁으로 끝나는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말도 되도록 줄였다.

그러면서 돈은 필요없으나 그렇게 간절하게 부탁하니 인정으로 들어 준다는 듯이 그렇다면 한 번 해보겠다고 선심을 쓴다.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개 잡뱀보다는 구렁이를 원했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뱀 중에서는 구렁이가 최고라고 원하는 말 다음에 덧붙였다.

구렁이로, 이만한 놈으로. 팔을 벌려 길이를 재는 시늉을 하는 사람은 대개 나이 먹은 노인이었다. 이 말을 할 때 노인의 입가에는 음흉한 그 무엇이 뱀처럼 지나갔고 그것을 땅꾼은 놓치지 않았다.

뻔한 것이었다. 더 늙기 전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서 였고 그것은 뱀만이 할 수 있다는 집요한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이다.

구렁이 다름으로는 독사였고 물뱀이나 화사 같은 것은 뱀으로 치지 않았다. 그것들은 싸요, 원한다면 거저 줄 수도 있다는 듯이 헐값을 강조하면 노인들은 대개 그게 어디 약이 되나? 하면서 부자인 척했다.

이런 사람에게 돈을 받아 내는 것은 외상값과는 다른 것이었다. 떼일 염려가 없는 그야말로 현금박치기가 뱀거래의 원칙이었다. 뱀값을 외상으로 하거나 부르는 값을 깎거나 하면 기대한 약효를 얻지 못한다고 돌아가는 노인의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 지르면 그만이었다.

다른 것은 다 되도 뱀만큼은 안된다는 것. 그러면 에끼, 이 사람아,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 노인은 들리지 않게 속으로 그런 다짐을 하면서 굴다리를 혹은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을 나서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뱀은 말하자면 천사와 같은 것이었고 없어서는 안 될 신적 존재였다.

신이 뱀을 만든 것은 이 땅꾼을 위해서였다. 뱀을 잡으면서 땅꾼은 자신의 왜소하고 초라한 몸체가 다부진 체격으로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큰 평지풍파가 몰려와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그런 유형으로 몸이 움직였다. 그러나 키만큼은 자라지 않아 땅꾼은 작다라는 속설에 딱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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