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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두 파산> (1949)- 이유가 어떠하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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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두 파산> (1949)- 이유가 어떠하든 간에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6.26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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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해방 직후, 당연히 혼란스럽다. 정부도 사회도 개인도 각자도생이다. 일단 먹고 사는 것이 급선무다. 살아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례 모녀도 그 길에 뛰어들었다. 문방구를 하면 그럭저럭 먹고 살기는 할 것이다. 사는 정도를 넘어 이참에 한몫 잡을 수도 있다. 아낙네 소일로 네다섯 식구가 먹고살면 그만한 일도 없다.

여자 중학교와 초등학교가 있어 장소도 그만하면 딱이다. 그러나 세를 내고 물건을 들이고 내부 시설도 살펴야 하니 초기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돈이다. 그 원수 놈의 돈이 없다.

그래서 일단 꾸기로 한다. 꿀 수 있는 정도니 그래도 정례 모녀는 다른 사람보다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30만 원을 빌린다. 장사는 방학과 맞물려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나 꾼 돈에 대한 이자는 복리에 복리를 더한다. 버는 돈도 있으나 나가는 돈은 더 많다. 기껏 벌어서 남 좋은 일만 하게 생겼다.

이 순간 교장 선생님이 등장한다. 호칭 뒤에 님 자가 붙으니 존경할 만한 직업이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교장 선생님은 사회 지도층이다. 당연히 약자를 위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상식선에서 일 처리는 기대할 만하다. 아무리 소학교 교장을 지낸 전직이라고 해도 말이다.

▲ 돈을 빌려 문방구를 연 정례 모녀는 쫄딱 망했다. 소학교부터 동경여대 까지 같이 다닌 옥임의 고리 대금업에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정례 모녀가 물질적 파산자라면 옥임이는 정신적 파산자로고 할 만 하다.
▲ 돈을 빌려 문방구를 연 정례 모녀는 쫄딱 망했다. 소학교부터 동경여대 까지 같이 다닌 옥임의 고리 대금업에 꼼짝없이 당한 것이다. 정례 모녀가 물질적 파산자라면 옥임이는 정신적 파산자로고 할 만 하다.

그런데 이 선생은 그런 것에는 안중에 없다. 옥임이 정례의 문방구에 따로 투자한 돈을 대신 받으러 온 것이다. 정례가 아주머니한테 받을 돈은 아주머니한테 받으라고 쏘아 주지만 그뿐이다. 그따위 경위가 어디 있느냐고 고함을 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옥임이 돈이든, 교장 돈이든 갚아야 하는 것은 자신들이다.

한편 옥임으로 말하자면 정례의 소학교 친구일 뿐만 아니라 동경여대도 같이 다닌 말 그대로 죽마고우다. 그런데 이 오랜 친구도 교장만큼이나 약삭빨라서 정례의 사정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다.

젊은 정례의 남편은 무슨 정당의 부장이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면서 행세깨나 한다고 설치니 아니꼽기도 하다. 이참에 확 정례의 기를 꺾고 싶다. 마침 기회가 왔다. 정례가 딸과 열심히 한다고는 하지만 늘어나는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다. 본전은커녕 이자 값기도 벅차다.

일부 오리는 양반이다. 이 할이 넘는 고리다. 새끼를 쳐서 이자만 이십만 환으로 불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사업은 쫄딱 망했다. 눈이 억수로 퍼부어 전차가 다니기 어려우니 택시 사업으로 큰돈을 벌려던 욕심은 가차 없이 깨졌다.

준비한 차는 고장 나기 일쑤요, 수리하기가 바쁘다. 로또가 아니면 파산이다. 빵이나 과자 혹은 여학생들 상대로 한 수예 재료 등을 갖다 놓고 가게를 키울 욕심은 멀찌감치 사라졌다.

집도 날리게 됐다. 은행에 삼십만 원, 옥임이 이십이 만원, 교장 오만 원 도합 오십칠만 원이다. 양잿물이라도 먹고 심정이 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결국 가게는 이들에게 넘어갔다. 이자에 짓눌려 파산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파산한 또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옥임이다. 정례모친이 ( 모친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돈 때문에 물질적 파산을 했다면 옥림이는 정신적으로 파산했다. 그래서 현진건은 <두 파산>이 라는 제목을 붙였다.

옥림이는 돈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오가는 행길에서 정례에게 만행을 저질렀다. 심하게 닦달한 것이다. 한 번은 질러야 할것을 지른 것이다. 동경에서 대학 다니면서 신여성 운동을 했던 안 했던 돈을 받기 위해서는 할 수 없다.

창피함을 느낀 정례모친은 더 큰 창피를 당하지 않기 위해 골목길로 줄행랑을 놓았다. 반면 소리 지르고 이년 저년 욕지기를 했던 옥임이는 기분이 째진다.

울적한 기분이 한 순간에 다 달아났다. 그런 옥임이를 독자들은 정신적 파산자로 여긴다. 물질과 정신 두 파산자는 일제 시대의 잔재다. 허겁지겁 조선에서 도망친 일제는 고리대금업이라는 치유할 수 없는 똥물을 남겼다.

그 똥물을 두 친구는 뒤집어썼다. 파산 후 집으로 돌아온 정례는 참을 수 없는 울분을 느낀다. 몸살감기에 울화가 터져 그만 몸져 누웠다. 보름간이나 누워있던 정례에게 남편은 이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마누라 걱정마, 옥임이 돈 삼사십 만 원쯤은 금시 녹여 낼 자신 있어. 큰 소리친다. 하지만 정례는 무슨 재주로 먹을까 의심이 든다. 허튼소리 같다. 그러나 남편은 옥임이가 요사이 자동차를 놀려 보구 싶어 안달이 났다는 사실을 알리며 마침 어수룩한 자동차 한 대가 있다고 한다.

옥림이가, 돈 많은 옥림이가 자동차에 관심이 있으니 한번 걸어 보겠다는 심사다. 마침 고장이 잘 나기로 괜찮은 물건이 하나 있다. 옥림이는 정례가 휘두른 복수의 칼에 맞고 파산자가 될 것이다. 조금만 참자. 우리 집문서는 곧 찾게 될 거야.

작품이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까지의 작가 스타일로 봐서 당연히 옥임은 정례남편에게 당해 정례로부터 받아먹은 고리 이자를 고스란히 토해내는 장면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작품 밖의 일이니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넌센스다.

: 현진건의 작품 중 비교적 덜 알려졌으나 <두 파산>이야 말로 리얼리티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의 가치나 추구해야 할 덕목을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어수선한 가운데 고리대금업으로 가게를 뺏고 뺏기는 과정이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육십이 넘은 아버지 같은 영감과 사는 옥임이. 그나마 거동도 못하고 누워있다. 한때 도지사를 지내고 전쟁 말기엔 군수품 회사의 감사인 말하자면 친일 부역자였다.

반민족특별법이 제대로 시행되면 중풍에 반송장이라도 남편은 으레 걸려들고 있는 재산도 몰수당할 처지다. 그러함에도 옥임은 되레 그것을 간판으로 내세우고 돈이 되는 것에는 악착같이 달려들고 있다.

그녀 옥임. 머리를 곱게 지지고 엷은 얼굴 단장에 번들거리는 미국제 핸드백을 들고 착 끼고 나설 때는 맵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 옥임이가 고리대금업자가 돼서 옛친구를 울리고 있다. 자신 보다 못한 정례의 처지가 우월한 것을 참기 어렵다.

다 죽어가는 늙은이의 그것도 후처로 자식 하나 없는데 정례는 공과대학 다니는 맏아들 중학교에 다니는 어머니보다 키가 큰 둘째 아들이 있고 딸은 지금도 사위를 보게 다 길러 놓았고 남편은 자동차로 땅뛔기를 까불었을망정 신수가 멀쩡한 호남자. 거기다 무슨 정당의 부장이다.

옥임의 행패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한다.

사람들 앞에서 욕지기 하면서 한바탕 한 것은 시기하는 속사정과 그래야만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런 옥임에게 손가락질 할 사람 많지 않다. 한바탕하고 나서 속이 시원한 옥임이.

교장은 또 어떤가. 정례딸이 교장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낯부끄러워 겸연쩍은 웃음만 짓지 않았던가. 그런 행태와 교장 직함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교장은 고리대금업에 나섰다.

이들이 벌이는 추악한 행태는 두고두고 뒷맛을 쓰게 하지만 시대와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알면 그들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변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친구는 빌린 돈의 무서움을 알기도 전에 이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본전을 주고 적당한 선에서 이자를 주면 서로에게 이득이겠지만 그런 것은 통하지 않는다. 윤리와 도덕과 우정은 개나 줘야 한다.

비록 아이들의 코 묻은 돈일망정 모녀가 성실하게 일해 차곡차곡 재산을 늘리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그 과정이 실로 생생하다. 그러니 여기서 교훈 하나. 빚은 절대 지지 마라. 사채는 더 그렇다.

지금도 빚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내 이웃의 소식은 자주 들린다. 일제아닌 21세기의 정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해방 직후 일어난 일을 가지고 이러니 저리니 품평말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것은 인간의 양심이며 도덕이며 우정이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문장이 짧지 않고 긴 만연체다. 물질 만능을 비판하고 싶은 현진건의 심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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