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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03 17:58 (일)
군인들이 몰려 들어왔던 사실을 이야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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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 몰려 들어왔던 사실을 이야기 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24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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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의 죽음이 차차 알려지면서 두려움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가 죽을 때 누군가 옆에 있었는데 어떤 사람은 같이 죽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기적적으로 살기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죽는 자리는 술판이었다고 한다. 노래도 부르고 술을 먹었다고 했다. 그때 부른 노래 제목이 무엇이고 먹은 술 이름이 무엇인지 사람들을 귀를 기울이고 촉각을 곤두 세웠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죽은자와 산자들이 했던 오고갔던 말들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증이 날로 커졌다.

그리고 다음 절대자는 누가 될지를 놓고 입방아를 찧어댔다. 죽은 자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기도 했고 그가 민주주의를 하지 않고 독재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됐을 때 사람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가 나중에는 분노에 치를 떨게 된다. 속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래서 그 속은 것에 대한 분풀이로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공사판의 노가다처럼 그 자식이라고 부르면서 놈이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놀라운 것은 이런 것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신반인었던 그는 하루 아침에 나쁜 놈으로 전락했다. 돌아가는 꼴이 그랬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알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수업 끝 종소리가 나면 뒤로 몰려가서 아무 얘기나 마구 떠들어 댔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교련 선생은 잘 보이지 않았고 말을 아끼던 선생들은 자유니 민주니 같은 말들을 함부로 내뱉었다. 골목길을 빠져나올 때 느꼈던 무거운 공기는 사라지고 없고 새로운 공기가 교실을 채우고 있었다.

무서운 것은 가고 가벼운 것이 바람 든 공처럼 이리저리 튀었다. 거리에서도 그것을 느꼈다. 낙엽은 질서 없이 제멋대로 떨어졌고 떨어져서는 아무 데로나 바람 부는 데로 쓸려갔다. 그 길을 사람들이 걸을 때 민구도 거리에 있었다.

형은 알까. 형이라면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떠드는 내용이 사실인지 신문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뉴스가 거짓이 아닌지 말해 줄 것이다. 휴가 나온 형은 들떠 있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구름처럼 붕 떠서 여기저기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첫 휴가이기도 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어떤 자유의 냄새가 푸른 군복에 봄바람처럼 실려 왔다. 같은 군복이어도 할아버지의 군복과 형의 군복은 달랐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라도 한 양 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이야, 모두 사실이라고. 그 말을 할 때 형의 얼굴은 입대할 때처럼 야릇한 표정으로 가득찼다.

이제부터 시끄러워질 거야. 이렇게 조용한데 시끄럽다니, 민구는 형을 뻔히 쳐다봤다. 내가 모르는 것을 형은 확실히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구는 그것을 알아서 기쁘기보다는 무언가 풍겨오는 불안함에 몸이 무거웠다.

형은 일주일간의 짧은 휴가를 얻었다. 그 기간 민구는 딱 한 번 그것도 한 시간 정도 만났는데 나머지 시간을 형이 어디서 어떻게 보냈는지 민구는 알지 못했다. 다니던 학교에 갔거나 친구를 만났거나 뭐, 그런 것만 생각해 볼 뿐이다.

시골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온 것은 확실하다. 양손에 무거운 것을 들고 어느 날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편지도 없이 급하게 온 것은 예정에도 없던 포상 휴가를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대대장이 갑자기 불렀고 다음 날 휴가를 다녀오라고 했다고 한다.

그날은 전방에 비상이 걸린 날이었다. 모두 완전군장을 하고 침상에 대기하거나 혹은 잠도 관물대에 기대서자는 정도였다. 삽탄을 하고 총은 옆구리에 차고 있는 상황에서 형을 후방으로 내보낼 때 대대장이 어떤 말을 했는지 형은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전방은 비상이다, 전쟁이 날지도 몰라. 지금 데프콘 3야, 그게 뭔지 아니? 넌 알 필요 없다고 질문과 답을 동시에 말할 때 형은 동생이 아니고 형인 것이 자랑스러운 뜻 뽐냈다.

군인들은 완전군장으로 침상에 앉아 있었다. 무슨 지시가 떨어지면 바로 밖으로 나갈 태세였다. 긴장의 얼굴, 무언가 검은 것이 닥쳐오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것의 불안함이 소대를 짓눌렀다.

병사들은 이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듯이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면 그쪽으로 눈길이 쏠렸다.

명령의 하달은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몸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고 늘 피곤에 절은 병사들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바라는 것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개는 반대로 나타난다.

그것이 불길한 조심일 때는 더욱 그랬다. 결국 지시는 내려왔고 그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만히 있는 병사들을 앞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 내몰 때 상사들은 가엽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이번에는 나도 그런 상태이므로 너희들만 가여운 것이 아니라는 듯이 미안한 감정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차별 없이 밖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그것은 병사나 하사나 장교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지시하는 쪽은 당당했다.

예상하던 것은 그러나 터지지 않았다. 밤이 지나고 낮이 왔으나 출동은 없었다. 연병장에 집합해 수류탄 세발 씩을 받을 때만 해도 죽었다는 곡소리가 났다. 그러나 내무반에서 지루한 대기가 하루를 지나자 되레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의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어느새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 번 붙어보자는 위험한 소리로 번져 나갔다. 붙어 보는 것은 병사들이 원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명령이나 어떤 지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말 그대로 아무 존재도 없는 것들이었다.

전쟁이 날지도 몰라. 형은 말했으나 그 말에는 그래서 걱정해야 한다는 불안보다는 어떤 기대감 같은 것이 묻어났다.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떨리는 음성이 아니었고 데이트 나갈 때 느끼는 그런 쾌활한 음성이었다.

전쟁이 무슨 장난은 아니지, 그치? 형은 그렇게 말꼬리를 올렸는데 그것은 그로 인해 잃게 되는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장난이 아니라면서도 그렇게 품었던 깊은 뜻이 어디에 있는지 이곳인지 전방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민구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잠깐 하기는 했다. 터지면 터지는 것이고 싸우면 싸우고 그러면 학교도 쉬고 시험도 없고 월세도 살이도 없고 시골에 숨어서 낚시질이나 하면 됐다.

징집 대상도 아닌 어린 학생을 끌고갈리도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고향 보령 바다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밥하고 설거지하는 귀찮은 일도 없다. 엄마가 해주는 맛있는 밥이나 먹고 들로 산으로 쏘아 다닐 생각에 민구는 터질 것이라면 지체하지 말고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속마음을 안 형이 다 죽어, 그래도 전쟁이 좋으냐고 물었다. 자기가 전쟁을 말할 때는 괜찮고 동생이 말하니 겁주는 꼴이라니, 민구는 샐쭉했으나 이내 주인 할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다니고 월세 집에 군인들이 몰려 들어왔던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를 형에게 한 것은 할머니의 경고 따위를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형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내 말에 형은 웃으면서 그렇겠지, 당연히 그래야지. 하면서 미리 알고나 있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라면을 사 먹으라고 형은 천 원짜리 한 장을 내게 주었다. 철원에서 출발해 그날 저녁 늦게 보령에 도착했고 다음 날 일찍 서울로 올라왔던 형은 그렇게 떠났고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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