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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군복 위에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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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군복 위에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19 0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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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전체가 고요했다. 작은 발소리까지 다 들렸다. 주인집 할머니는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으나 안에 있다는 것을 민구는 알았다.

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가서는 급하게 문을 닫는 것을 열린 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기에 두 사람은 너무 젊었다.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래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자주는 아니나 간혹 젊은 그들을 대할 때면 낯이 간지러웠다. 사실 그러는 것은 민구가 아니라 그렇게 불리는 두 사람이야 옳았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였고 나중에 그 호칭은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됐다는 것을 알았다. 나이가 아니라 인격이나 돈이나 지위로 그런 대접을 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까짓 호칭이 무슨 대수냐, 서울 하늘아래서 보호막이라고는 거미줄처럼 허술했으나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나았으니 민구는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없었다.

그들 부부가 생활하는 공간과 민구의 방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원래는 없었으나 월세를 받기 위해 마당의 한켠에‘보로꾸’몇 장을 쌓아 가건물처럼 만들었는데 옆집 누나의 방도 그런 식이었다.

여름은 더웠다. 그러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접어들자 이곳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거실을 보기 위해서는 작은 창을 통해 비스듬히 시선을 돌려야 했는데 민구는 별로 하는 일이 없을 때는 그렇게 안쪽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쪽에서 누가 왔다 갔다 하거나 간혹 얇은 차림의 할머니가 경계도 없이 돌아다닐 때면 무슨 횡재라도 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사 온 첫날 그 집의 식탁에서 밥을 먹었기 때문에 거실과 방의 위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할머니 댁에서 식사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끼니때가 지나고 여독이 있고 첫날이라는 것을 감안 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밥을 먹으면서 할머니가 말하는 주의사항을 듣자 밥알이 목구멍에 걸리지는 않았으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영 거북했다. 밥 한 끼 주면서 할머니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시골 촌놈이라고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이 정도의 친절을 베푸는데 그 정도의 예의로 보답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투였다.

먼저 자기가 찾기 전에는 안채에는 들어오지 말고 무엇을 시키면 군말 없이 해야 하며 혹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학교에 가서 떠벌이지 말고 전기세가 많이 나오니 전등 외에 라디오나 다리미 같은 것은 가급적 사용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하는 할머니는 할머니가 아니라 30 후반의 아줌마였는데 건장한 체구에서 우러나오는 여유가 몸에 배어 있었다. 아래로 깔리는 듯한 묵직한 목소리로 너와는 다른 신분의 사람인 나를 대할 때는 조심하라는 의미가 작은 웃음 속에 묻어났다.

화장하다 뒤돌아보면서 한마디씩 할 때는 훔쳐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귀중한 무엇인가를 몰래 가져갈 만한 놈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는 듯했다. 순진한 민구는 교련 선생 앞에 불려 나갈 때 짓는 죄지은 사람 같은 표정을 하면서 얌전하게 밥을 먹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식모가 더 먹을 거냐고 물어봤을 때 민구는 됐다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무언가에 쫒기듯이 거실을 빠져 나왔다.

그 뒤로는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대문을 통과하면 바로 우측의 작은 길로 가야 나오는 민구의 방과 똑바로 가서 들어가는 안채는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아저씨로 불리는 그 집 아들과는 학교 가는 길에 간혹 마주치기도 했으나 모른척 하는 사이였다. 그 아들은 인문계가 아닌 공고를 다녔는데 가방을 옆구리에 끼는 좀 불량기가 있는 학생이었다. 민구보다 두 살이 많았고 형보다는 한 살 어렸다.

그 집에는 딸도 있었는데 근처 여학교에 다녔다. 흰색 상의에 곤색 치마를 입고 학생 가방을 들고 날 때 그녀는 단정했다. 그녀 역시 민구를 봐도 모르는 사람 대하듯이 했다. 그러나 시선은 할머니처럼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었다. 마치 보지 못한 것처럼 지나칠 뿐이었다.

그날 저녁 할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그는 교련 선생처럼 군복을 입고 있었고 중령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교련 선생보다 훨씬 신분이 높았고 위엄이 넘쳐 흘렀다. 자동차 멈추는 소리가 들리고 개가 무섭게 짖다 꼬리치고 대문이 열리면서 그가 들어왔다. 옆에는 그를 따르는 군인 한 명이 서류 가방 같은 것을 들고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군복을 입은 모습을 민구는 그날 처음 보았다. 평소에는 신사복을 입어서 그가 군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으나 실감하지는 못했었다.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다듬고 작은 갈색 가방을 든 손목 위로 살짝 살짝 비치던 하얀색 와이셔츠가 언제나 돋보였기 때문에 단색의 푸른 옷은 낯설었다.

민구가 주인 할아버지 집에 온 것은 한적한 어촌 마을에 사는 외삼촌의 소개 때문이었다. 나한테는 멀었지만 엄마의 삼촌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진짜 삼촌인지 적당한 호칭이 없어 그렇게 부르는지 민구는 관심도 없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골에 있는 삼촌과 같은 느낌은 엄마에게도 없었다. 그러니 혈육 관계에 의한 삼촌이 아닐 수 있었다.

엄마는 전쟁 전에 친척들과 이북에서 함께 내려와서 충남 보령에 정착했다. 평양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오빠는 방학을 이용해 엄마를 만나러 왔다가 전쟁이 터져 그만 돌아가지 못했다.

엄마 삼촌들은 서울에서 살았다. 시골과 서울은 너무 멀리 있어서 만나지 못했으나 소식은 간간히 주고 받고 사는 사이였다. 형은 그때 시골 농업학교에서 수재 소리를 들었다. 선생들이 이런 애는 아깝다고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으면 전학 보내라고 몇 번 집으로 찾아왔다.

농사짓는 아버지는 그러고 싶지만 돈이 없다고 고개를 숙였고 어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이북에 있을 때 어머니의 큰 아버지는 그러니까 지금 삼촌으로 불리는 주인 할아버지의 형은 해주 지방의 군수였다고 한다.

그 막내 동생은 서울에 있는 신문사의 기자였고 그래서 어머니는 배우는 것에 미련이 있었다. 형이 고 3이 되기 전 어머니는 이 십리 길을 걸어 오빠가 사는 바닷가로 찾아갔다.

그리고 오빠가 다리를 놓아 둘째 아들 성구의 서울 전학을 부탁했다. 오빠는 그런 여동생의 청을 들어주면서 삼촌이 군인이니 민구가 혼자 있다고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켰다.

그러니까 군대 가기 전까지 형이 살았던 방이 지금 민구가 사는 곳이다. 그 집은 제기동에 있었는데 막 불기 시작한 개량 한옥 이었다.

할머니는 집 장사를 했다. 집을 짓고 팔면 집 하나가 더 떨어졌다. 할머니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집 장사를 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돈벌이로 이만한 것이 없다면서 성구 아버지도 장사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그까짓 농사 지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 아버지는 표정이 나빴다. 평생 농사를 천직으로 사는 농부에 대한 모욕이었다. 그로나 아버지는 웃으면서 농사밖에 모른다며 장사는 소질이 없다는 말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논을 팔아서 돈을 대면 농사 짓는 것보다 수익이 열 배는 많다고 부추겼으나 아버지 귀에는 소귀에 경읽기였다. 아는 것은 농사뿐인데 다른 것을 할 재주가 없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땅을 팔면 다시는 살 수 없다는 불안감이 그 순간 아버지를 덮쳤다.

땅은 정직하다는 것이 아버지의 신념이었다. 어디로 도망가는 것도 아니었고 해마다 밥을 주고 적은 돈이나마 모이게 했다. 그 돈은 성구나 민구의 학비로 다 들어갔으나 땅에 대한 존경심, 고마움은 늘 아버지를 지배했다. 그런 땅을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확고한 판단이었다.

서울로 가고 싶었던 엄마는 그것이 불만이었다. 나이 들어서도 엄마는 그때 그렇게 하지 못한 아버지를 원망했다. 시골보다는 서울에서 더 잘 어울렸던 엄마의 불만을 민구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주인 할아버지는 두 개의 집을 하나로 터서 넓게 사용했다. 그 집도 할머니가 집 장사를 해서 장만한 것이었다. 그러니 할머니를 대하는 할아버지의 태도는 공손했다. 밖에서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오로지 돈만 모으는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는 보물이었다.

삼 일만에 한 번 들어올 때도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도 않았다. 간혹 옷에 다른 여자의 분 냄새를 묻히고 와도 할머니는 모른 척했고 애써 외면했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었다.

할머니에게는 공손했던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는 인상을 썼다. 깡마른 몸에 빈틈이 없었고 말은 항상 명령조였다. 그는 민구를 심부름꾼 아이 정도는 아니어도 언제나 부하처럼 무언가를 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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