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그날의 일에 대해 침묵했다. 입은 열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학교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기보다는 혹 잘못 전달됐을 경우 오는 불이익에 대해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웃음기를 지우고 근엄한 선생 본래의 자세로 돌아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약간의 여유까지 부렸다. 그렇지만 민구는 언뜻언뜻 보이는 표정에서 그들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두려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속에서는 민구와 같은 걱정거리가 있음을 알아챘다.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바람에 밀려오는 먹구름이 비를 잔뜩 품고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모를 리 없었다.
그런데도 비가 오니 우산을 준비하라거나 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우산이 없으면 맞고 피할 수 없으면 집에 있으라고 다독이지 않았다.
그들은 조용했다. 비겁했다. 아이들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떠들던 애들도 입 밖으로 내선 안 될 질문이라는 것을 서로 눈짓을 교환하지 않아도 알았다. 대신 누군가 그래 주기를 바라기는 했다. 당장은 얻어터지더라도 말이다.
그런 기대는 오지 않았다. 담임 말고 교과 선생님들도 갑자기 생겨난 금기어처럼 죽음에 대해 입을 다물었다. 한마디쯤은 해도 괜찮을 텐데 모두가 자물쇠로 잠그듯이 입을 봉해 버렸다.
그사이에 어떤 지침 같은 것이 상부에서 내려왔는지 아니면 교무 회의에서 교장의 지시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한결같이 자, 수업하자는 어제와 같은 말만 해댔다.
알려 주어야 할 것을 말해 주지 않는 선생님들을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졌고 앞으로 학생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책 정도는 있어야 했다. 학교에 나와야 하는지 집에 머물러야 하는지 학교에 나온다면 공부를 해야 하는지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선생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가 죽은 지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말하지 않은 것은 일부러 알려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진짜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죽은 것만은 확실하지만 왜 죽었는지 스스로 죽지 않았다면 누가 죽였는지 시체는 어디 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으므로 선생들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알지 못하는 것은 아는 것보다 불안을 더 키웠다. 그날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예정된 것을 다 마친 수업이었는지 아니면 한 시간 일찍 끝났는지는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없다고 민구는 생각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고 심란했고 어리둥절했다.
다만 교련 선생이 종례 시간 전에 들어와 함부로 입 놀리지 말라고 눈을 부라린 것만은 기억한다. 군복을 입고 대위 계급장을 단 교련 선생은 지휘봉을 항상 가지고 다녔는데 그것으로 칠판이 아닌 교탁을 두드렸다.
항상 무서운 얼굴로 화가 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 선생님은 그 순간 평소보다 더 공포스럽게 다가왔다. 어린 학생들을 위협하는 어른 선생의 태도가 마음에 들 리 없었으나 그가 도끼눈을 부릅뜰 때 아무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민구는 그나마 그 선생이 다른 선생보다는 낫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도끼는 그래도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걸.
적어도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는 경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도끼로 불리는 교련 선생뿐이었다. 함부로 놀리지 말라는 말은 절대자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은 불경한 짓이고 따라서 그런 말을 하다 들키면 곤봉으로 얻어터질 각오를 하라는 의미였다. 실제로 그는 곤봉을 치켜들면서 그 말을 할 때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시늉을 했다.
교련 선생은 육사를 졸업했다.
그 당시 육사를 나와 대위로 제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소령이나 중령 정도의 계급장을 달고 나왔다. 그만큼 육사는 직업군인들의 엘리트 코스였다. 그러나 그는 제대했다. 대위로 제대했으나 실력이 없어서 진급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을 그는 입에 달고 다녔다.
늘 그는 진급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자기가 지금까지 군대에 있었으면 별을 달았을 거라고 틈만 나면 말했다. 짜식들, 하늘의 별, 니들이 알아? 그는 곤봉으로 배를 꾹꾹 누르면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진급 누락이나 불명예 제대가 아니고 제 발로 스스로 나왔다는 것이다.
말뚝을 박지 않고 제대한 이유는 그게 다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군대를 그리워했다. 불러만 준다면 바로 달려갈 태세였다. 언제나 차렷 자세를 하고 각이 진 걸음걸이는 그가 사회보다는 군대에서 더 잘 어울린다는 증거였다.
자기 동기 가운데 사단장으로 있는 친구가 있다는 말은 교무 회의 때 수시로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단장 친구를 둔 교련 선생을 학생들은 물론 학교도 무서워했다. 그가 다시 군대로 돌아가 친구의 호의로 승승장구하기보다는 사단장이 어느 날 학교에 찾아와 교장을 불러낼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심지어 교장까지도 그가 다가오면 인사하는 학생처럼 한쪽으로 비켜서서 고개를 숙였다. 언제나 쓰고 있는 선글라스 안에서 그의 눈은 그런 교장 선생을 깔보았다. 사단장 친구가 이번에 ‘쓰리스타'로 진급이 확정된다고 그가 덧붙이면 교장 선생의 고개는 아래로 더 숙여졌다.
그는 학교에서 가장 유명했다.
비록 일주일에 한 시간밖에 없는 교련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어떤 선생보다도 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그에게 맞지 않은 아이는 아버지가 검사인 반장뿐이었다. 그는 체벌을 자주했다.
어린 새끼들이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기 시간이 아닌데도 복도에서 마주치면 곤봉을 꺼내기 일쑤였다. 어떤 때는 워커 발로 조인트를 까기도 했다. 아이들은 짧은 비명을 지르고 주저 앉으면서 다리를 잡았으나 선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갈길을 갔다.
비뚤어지기 쉬운 시기의 아이들 인성을 제대로 심어주는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을 교련 선생은 알지 못했다. 하루는 의사 아들이 끌려나가 따귀를 세 대나 맞았는데 그때 그는 ‘니 아버지도 의사냐’며 때렸다. 아들 앞에서 아버지를 모욕했으면서도 교련 선생은 그것이 부끄러운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가 때리면 맞는 것이 고작이었다. 왜 그런 험한 말을 했는지 다른 애들은 물론 맞은 의사 아들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해 혼란 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