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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지구를 지켜라 (2003)- 그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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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지구를 지켜라 (2003)- 그럴 수만 있다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6.1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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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밖에 사는 사람만 외계인인가. 돈과 권력을 쥐고 제멋대로 산다면 그 역시 외계인일 수 있다.

화학 회사를 운영하는 강만식 사장(백윤식)이 그런 인물은 아닐까. 구사대를 동원해 직원을 패고 그래서 사람이 죽고 근무환경은 열악해 중독 사고는 다반사로 일어난다. 어디 그뿐인가.

비엠더블유 최상위 버전을 타고 다니는데 핑곗거리를 찾아 대리운전비 2만 원을 깎는 파렴치범. 병구(신하균 )가 볼 때 이런 인간은 외계인이 확실하다.

녀석을 납치해서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는 병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돈키호테처럼 책을 많이 읽어 그 세계에 빠져든 병구는 만식이 안드로메다의 왕자와 유일하게 소통하는 인물이라고 철썩같이 믿는 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 절대 시간은 별로 없다. 개기월식의 순간은 다가오고 그 전에 왕자와 연결되지 않으면 지구는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가 만식을 납치한 것은 그럴싸한 정당성이 있다. 지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주가조작을 일삼고 여배우를 농락하고 온갖 나쁜 짓을 일삼는데 법망은 교묘히 빠지는 만식에 비해 방식이야 어떻든 이런 병구의 행동은 나름대로 평가받을 만하다.

납치한 그가 외계인임을 실토받기 위한 순조롭지 못한 과정 역시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묶고 차고 바르는 잔인한 방법은 병구가 선택할 있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래도 폭력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음이 착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가진 자의 일탈에 대단히 너그러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대화하고 타협하는 그 순리라는 것을 만식이 거부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행세깨나 하는 만식의 납치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다. 그가 ‘검찰 총경’도 아닌 경찰청장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사는 속도가 붙고 일류 형사들이 현장에 급하게 투입 된다.

여기에 빠지면 서운한 양념 같은 존재 전직 형사가 끼어든다. 유능했으나 뇌물로 옷을 벗고 식당에서 잡일을 하는 개코 형사에게 이번 사건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 악질 사업주 만식을 납치한 병구는 그가 안드로메다의 왕자와 소통할 유일한 인물인 외계인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만식은 한사코 자신은 외계인이 아니라고 우긴다. 병구는 유능한 형사처럼 고문으로 그가 외계인임을 밝혀내는데 진력을 기울인다.
▲ 악질 사업주 만식을 납치한 병구는 그가 안드로메다의 왕자와 소통할 유일한 인물인 외계인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만식은 한사코 자신은 외계인이 아니라고 우긴다. 병구는 유능한 형사처럼 고문으로 그가 외계인임을 밝혀내는데 진력을 기울인다.

최고 먹물인 신참 형사는 그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반장과 달리 존경하면서 따라 다니는데 문제 해결은 공인된 공권력이 아닌 전직 공권력의 손에 의해 해결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런 유의 흐름은 다른 곳에서 숱하게 써먹은 수법이기에 어림짐작이 가능하다.)

한편 병구에게는 만식의 구사대에 맞아 죽은 옛 애인을 대신하는 이름도 순박한 순이 (황정민)가 있다. 둘은 사이좋게 고문을 하면서 외계인의 실체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데 만식 역시 주인공인지라 쉽게 자백하거나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는 끈질기게 살아남아 병구를 괴롭힌다 .

그때마다 위기를 돌파하는 병구의 힘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과거와 현재가 바탕이다. 어린 시절 병구 아빠는 막장에서 일하다 한쪽 팔이 절단된다. 구급차에 실려 가는 그 모습을 병구가 보고 울부짖는다.

학창시절은 양아치 때문에 괴로움을 겪고 참다못해 일을 저지르고 소년원에 갇힌다. 그곳 생활은 사회처럼 겉으로는 법이 지배하나 실제로는 법 밖에 있어 교도관의 행패는 어린 병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출소해서 들어간 곳이 하필 만식의 회사였고 거기서 애인을 만나는데 애인은 새로운 희망을 꿈꾸다 구사대의 방망이에 머리가 박살난다. 머리가 깨지고도 살 수 없어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병구의 어머니 역시 만식의 회사에서 일하다 약물중독이 됐고 지금은 식물인간으로 병원에 누워 있다. (먼저 한 말을 또 하는 것은 앞을 건너뛴 독자들을 위한 친절한 설명이라기보다는 병구의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현재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 타는 순이는 그런 병구에게 위안을 주는 존재다. 눈치 빠른 만식은 그런 순이를 병구에게서 떼어 놓기 위해 이간질한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버스에 몸을 싣고 잠시 병구를 떠난다.

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진짜 외계인 흉내를 내면서 병구와 잔머리 대결을 펼치는데 이 장면은 고문 장면만큼이나 숨막힌다.

살아서 나가야 하는 만식의 이런 태도를 바른 자세가 아니라고 탓할 수는 없다. 아무리 외계인이라고 해도 그의 생명 역시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그에게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많은 돈과 권력과 지위를 두고 여기서 개죽음 당하면 체면은 고사하고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장준환 감독은 그런 만식의 희망 사항을 자꾸 뒤로 미루면서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고통을 끊임없이 주문한다. 그렇다고 만식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제목만 보면 이 영화는 무슨 로봇이 나오는 황당한 코미디물처럼 보인다. 포스터 역시 그런 생각에 일조하는데 신하균은 머리에 이상한 것을 쓰고 있다. 아이가 부모 손을 잡고 극장 행렬이 이어질 것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면 지구는 누가 지키지 같은 명대사를 남겼음에도 영화는 참패했다. 그러나 흥행에 실패했다고 해서 영화의 진가가 묻힌 것은 아니다.

최근 할리우드는 이 영화의 리메이크를 결정했다. 작품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평자들 역시 좋은 작품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 끝날 때쯤 끝나지 않고 자꾸 이어지는 것이 흠이라면 할 말 없지만 그것 말고는 손댈 것이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오래 살아남는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이 생각할 거리도 많이 던져 준다. 병구가 왕자를 만나 지구를 지켰을지 아닌지는 모르나 이 영화만큼은 영원히 지켜질 것으로 확신하는 이유다.

국가 : 한국

감독 : 장준환

출연 : 신하균 , 백윤식

평점 :

: 좋은 영화는 장르 불문이다. 코미디라고 해서 다를게 없다. 호러 물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굳이 그런 것을 구분해야 할까. 편의상 그렇게 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중국집의 짬뽕처럼 버무러져 있는 경우도 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가 그렇다. 어떤 때는 웃음을 주다가 어떤 때는 공포감을 심어주고 어떤 때는 아름다운 사랑을 주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인간의 양심은 물론 기본 상식을 버리고 온갖 패악질을 하는 힘 있는 자들은 지구인이라기보다는 외계인이다.

인간의 피를 받고 태어난 사람이 인간 이하의 짓을 한다면 그는 분명 지구밖에서 지구로 침공해온 착한 외계인 아닌 나쁜 외계인이 분명하다. 이 영화는 처절한 복수극으로 읽히기도 한다. 병구를 고통으로 몰고갔던 무자비한 인간에 대한 통쾌한 주먹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최소한 지구인이 지켜야 할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지구인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여러 장면에서 심금을 울리나 만식의 기계 조작에 의해 죽는 순이의 마지막 순간이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순박한 그녀가 죽을 때 병구의 마음은 또 그렇게 하나의 저주를 지구에 남겨 놓게 된다.

엄마에게 벤젠을 들이붓는 장면, 발등을 긁은 다음 스프레이를 뿌리는 고문, 한 시간 동안 가해지는 220 볼트의 전기충격, 실험실의 인체 표본들, 만식의 몸에 들어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거대한 딜도, 애완견 지구가 먹는 신체, 꿀을 뒤집어쓴 채 벌들의 공격으로 추락하는 개코 형사, 스텐리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에 나오는 원숭이의 뼈다귀 내려치기,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져 순식간에 이승으로 사라지는 놀라운 반전, 과연 미친 자는 누구이고 제정신 인자는 누구인가? 영화는 이런 묵직한 돌직구를 던진다.

무지개 너머에는 과연 어떤 것이 있을까. 걸작은 비록 제목이나 포스터 때문에 저주받았을지라도 오뚝이처럼 다시 살아나 저주가 잘못된 것이라고 그러니 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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