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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 혼잡한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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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 혼잡한 버스에 올라탔다
  • 의약뉴스 이순 기자
  • 승인 2020.06.11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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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김장철이었다. 대문 앞은 배추 부스러기가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고향의 냄새가 났다. 지저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계절은 가을이었고 고약한 냄새도 없었다.

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다. 가방을 든 학생들이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이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이상했다. 무언가 일이 터졌는데 평상시와 같았다. 오늘은 어제와는 분명 달라져야 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있을 수 없었다.

구민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라디오 뉴스 때문이었다. 아나운서는 절대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같은 말을 계속 되풀이 했다. 다른 소식은 없었다. 죽었다는 소리만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비통한 음성으로 그는 했던 소리를 또 하고 또 했다. 다른 방송국도 똑같았다. 보지 않아도 슬픈 몰골을 하고 죽음을 말하는 뉴스에 사람들은 귀를 갖다 댔다. 그들은 곧 바이러스에 전염됐다.

전파력이 강한 바이러스는 금세 세상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죽음은 그런 것이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나 거리는 죽은 자를 애통해하는 공기로 가득했다.

그것이 무거워졌다는 말은 사실이었고 바뀌었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누가 그러라고 하지 않았어도 사람들의 가슴에는 슬픔이 다가오고 있었다. 무언가 복받치는 것이 있어 그대로 주저앉고 싶었다. 그것은 위가 아닌 아래로부터 끓어 올랐다. 마음 놓고 울어도 좋다는 신호가 왔다.

잠에서 막 깬 아이가 이유 없이 우는 것처럼 그렇게 울고 싶었다. 부드러운 얼굴로 다가와 젖을 물려 주는 엄마가 그리웠다. 이런 때는 누군가 옆에 있어야 했다. 서로 껴안고 다독이면서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지? 하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살아갈 의미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준비하지 않은 기말고사 걱정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시험은 무의미했다. 세상의 종말 앞에서 그까짓 공부는 안중에 없었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누구를 의지하며 삶을 지탱할 것인가. 오로지 그 생각만이 민구를 지배했다.

답답함에 시야가 뿌옇게 흐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왔는데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잘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막힌 것이 뚫어져야 했다. 장맛비에 둑이 터져 물이 아래로 철철 넘쳐 흘러야 했다. 그러기 위해 민구는 죽은자를 떠올렸다.

그는 보통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자는 세상의 모든 것을 관장했다. 신은 아니었어도 사람들은 그가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반신반인으로 여겼다. 나이 들었어도 건장했으며 텔레비전 속의 눈빛은 언제나 사나웠다.

그 사나움은 그러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 누구나 그렇게 말했고 누구나 그렇게 썼다. 그러나 스펀지에 스며든 물을 짜듯이 절대자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떨어져 나갔다.

벌어질 수 없는 일이 일어나 가슴을 치던 사람들은 그 시간이 오래 가기를 기원했다. 통곡했고 교회의 설교자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민구의 발걸음이 떨리고 있었다. 구석진 길을 돌 때는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애도 대신 학교에 가는 자신을 향한 신의 저주가 내려졌다.

더는 학교로 가는 등굣길에 몸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버스를 기다릴 때는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가 없는 세상에서 교문을 통과하는 것이 무슨 대순가 싶었다. 그러나 버스는 왔고 민구는 어제처럼 혼잡한 버스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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