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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7-15 06:39 (수)
그런 정성과 위로가 오래 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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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성과 위로가 오래 가기를 바랐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6.02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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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 굶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 매일 세 번씩이나 먹는데. 때로는 간식도 챙긴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런 일상을 되풀이한다. 습관에 지겨움이 붙는 것 처럼 먹는 것에도 그래야 공평할 것 같았다.

불과 몇 시간을 참았다고 해서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친김에 한 끼를 더 굶어 두 끼를 채우고 싶었다.

심술을 부리는 것이 인간의 심보가 아니던가. 그러나 이런 허세는 곧 중단됐다. 뱃속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다섯 시간이 지나자 앞이 노래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사물의 형상이 흐릿해졌다. 문학과 철학과 수학에 통달했어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파우스트처럼 시야가 혼탁해졌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서 개기보다는 더욱 어두워졌다.

이러다가 볼 수 있는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몸도 흔들렸다. 누가 뒤에서 갑자기 미는 것처럼 하마터면 걸을 때 넘어질 뻔했다.

겨우 한 끼를 굶었을 뿐인데 몸이 휘청거렸다. 몸이 그러니 정신마저 덩달아 그렇게 됐다. 온통 먹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머리는 다른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일주일 이상 단식을 수차례 한 바 있다. 특별한 지침 없이 결심한 바로 그 날 그 시각부터 굶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배가 고팠으나 충분히 참을 수 있었고 걸을 때 조심하면 넘어질 염려가 없었다.

3일 정도는 이랬다. 정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흐려지기보다는 되레 뚜렷해져 무언가 집중하면 풀리지 않은 것이 시원하게 해결됐다. 그런데 이번은 상황이 완전히 달랐다.

늙은 몸은 굶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더구나 먹을 수 있는 대도 그러지 않는 것은 반항하는 것으로 간주해 더 가혹하게 대했다. 이유 없이 그러는 것에 대한 경고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유는 있었다.

먹기 싫은 것이 이유라면 이유였다. 무언가 입에 넣는 행위가 지겹다는 생각이 든 것은 종업원의 간단한 실수 때문이었다. 주문한 음식이 탁자 위에 놓일 때 그것은 탁 소리를 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종업원이 약간 당황하는 표정에서 그가 실수로 그렇게 한 것을 알았다. 들깨 수제비 국물이 그릇 안에서 출렁였다. 밖으로 뛰어나와 옷을 적시거나 살을 뜨겁게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식욕이 싹 가셨다. 이것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 한동안 망설였다. 적어도 나는 종업원을 배려했다. 먹지 않고 그냥 나간다면, 물론 음식값을 계산했어도 그 종업원은 종일 기분이 상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몇 숟가락 뜨는 시늉을 했다. 배는 고팠으나 먹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들이 말하는 갑자기 식욕이 떨어지는 경우였다. 억지로 반찬도 몇 번 집어 먹었다.

한 십분 간을 주춤거리다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기분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되레 상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종일 산행을 한 후 목욕을 한 것처럼 개운하기도 했다.

그러니 거리로 나와 조금 걸을 때 발걸음이 바빠질 수밖에 없었다. 한강으로 가기로 했다. 도림천을 지나 안양천 합류 지점까지는 2 킬로미터 정도였고 나는 그곳을 지나쳐 갔다.

주변은 온통 꽃 천지였다. 사람들은 정부가 조성해 놓은 꽃길을 열심히 왕복했다. 자전거 행렬도 끊이지 않았다. 6월의 날씨는 사람들을 밖으로 내몰았다. 전염병이 창궐해도 방안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마스크를 유일한 안전 막으로 삼고 그들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날씨는 좋았고 이런 날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미세먼지도 없었다. 알프스의 어느 깊은 산자락을 헤매고 있다고 착각해도 무난했다.

이런 날씨는 계속되고 간혹 비가 온다 해도 괜찮았다. 다만 홍수 정도는 아니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이 든 것은 이 꽃들이 온전히 제 생을 마감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안양천은 조금 큰 비만 오면 쉽게 범람했다. 범람은 둑을 타고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꽃길을 덮는 것을 말한다. 이 꽃들이 무사히 가을까지 피어 있기를, 그것은 온전히 비의 양에 따라 달랐다.

5년 전만 해도 안양천은 해마다 넘쳤다. 그래서 가로수가 잠기고 쓰레기 더미가 꽃밭을 덮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그러니까 5년 전부터 한 번도 그런 비가 오지 않았다.

구청은 더 많은 나무와 더 많은 꽃을 심었다. 단지를 새롭게 조성하고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을 수도 없이 심었다. 사람들은 위로를 받았다.

나는 그런 정성과 위로가 오래가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올려 보았다. 구름 몇 개가 한가롭게 떠있고 나머지는 온통 푸른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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