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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모래톱 이야기>(1966)-강물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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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모래톱 이야기>(1966)-강물은 흐른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6.01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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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로 작문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도 오래전이라 옛날 옛적이라고 하자. 그때는 선생님이 공공연히 그랬다. 말이 작문 숙제지 일기 검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사실대로 적기보다는 적당히 각색을 했는데 드러내고 싶은 것은 강조하고 그러고 싶지 않은 것은 줄이거나 아예 쓰지 않았다.

그 작문을 내용으로 상담을 받는 일은 더 고욕이었다. 그런데도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기에 불평을 한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은 일지 않았다. 뭔가 이상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남들 다 하는 것이니 홀로 당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김정한의 <모래톱 이야기>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런 것 외에도 작문 검사는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건우의 작문이 없었다면 이런 소설 형식도 나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숙제는 가정방문을 하는 사전점검에도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 건우의 글을 보지 않았다면 선생님이 그 집 사정을 알지도 그에 얽힌 이야기도 몰랐을 것이고 더군다나 재방문 후에 확실히 알게 된 조마이 섬에 대한 내력도 후세에 남겨졌을 리 없다.

그러니 작문 검사에 대한 불쾌한 기억은 이것으로 끝내자.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건우는 중학생이고 나는 그의 담임 선생이다. 선생은 수업시간에 늦는 아이들이 많으면 예나 지금이나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일기가 불순하다고 해서 늦는 것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지각생이 늘고 이런 날은 그런 횟수가 많은 아이가 본보기를 당하기 마련이다.

하나밖에 없는 나룻배로 두 시간에 걸쳐 통학하는 건우가 지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더구나 그날은 물이 불어 어렵게 배를 탔다.

김해 땅에서 낙동강 하구를 건너 부산 학교에 다니는 건우의 내막을 알았으니 가끔 잡문을 쓰기도 하는 나는 동정이 아니 갈 수 없다. 집안 형편은 짐작한 대로다. 초라한 초가가 선생님을 맞는다. 어머니와 늙은 할아버지는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산다.

▲ 낙동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건우 가족의 슬픈 역사는 남겨둔채. 땅의 주인은 일본 동척에서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지역 유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상 대대로 땅을 부쳐온 건우네의 설곳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 낙동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르고 있다. 건우 가족의 슬픈 역사는 남겨둔채. 땅의 주인은 일본 동척에서 국회의원으로 그리고 지역 유지로 바뀌었을 뿐이다. 조상 대대로 땅을 부쳐온 건우네의 설곳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땅은 건우네 땅이 아니다. 수 세기에 걸쳐 모래톱이 쌓여 생긴 땅을 수 대에 걸쳐 지어 왔으나 땅 주인은 정작 다른 사람이다. 이 대목에서 인디언이 생각난다.

그들 역시 태초 이래로 그 땅에서 살았으나 힘센 사람들에게 쫓겨나지 않았던가. 때는 잔혹했던 일본 제국주의 시대.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이 주인 행사를 했다. 그러니 말 안 해도 소작농은 겨우 입에 풀칠하기 바쁘다. 패망한 일제가 쫓겨나자 새로운 주인이 나타났다.

국회의원인가 하는 사람이 와서 ‘내 땅이다’ 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건우네 식구는 다시 땅에서 밀려났다. 그러더니 어떤 때는 유력가가 나타나 자기네 땅이라고 우겼다.

이런 내막을 쓰면서 건우는 울분에 떨었을 것이고 그 끔찍한 저주의 기록은 비수로 선생의 가슴을 찔러 들어왔을 것이다. 환경조사표를 들고 선생은 옆에 사람이 있어 더 묻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없고 33살의 어머니는 농업, 62살의 할아버지는 어업, 재산 정도는 하. 이 정도라면 15살 소년에게 물어도 좋을 만한 가정 형편은 아니었다.

큰물이 불었다. 건우가 바로 지각한 날이다. 사람들은 물길을 텄다. 한꺼번에 둑이 터지면 큰일이다. 조마이섬에 사는 사람의 생명이 위태롭다. 이 과정에서 다툼이 일었다.

물에 잠기면 그 틈을 타서 토지를 수용하려던 유력가는 욕설을 하면서 둑을 트는 건우 할아버지의 괭이를 빼앗아 물속으로 집어 던졌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갈밭새 영감이 “이 개 같은 놈아, 사람의 목숨이 중하냐, 네 놈들의 욕심이 중하냐?” 하고는 그 자를 들어 몰 속에 태질을 해 버렸다. 살인 혐의로 할아버지는 끌려갔다. 이후 군대가 정지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도 건우네는 토지를 소유할 수 없게 됐다. 토지는 힘 있는 사람의 손에서 다시 힘 있는 사람의 손으로 옮겨갔다. 정작 그곳에서 농사 짓고 일구는 사람들과 토지는 상관이 없었다. 나라 뺏긴 일제 시대나 나라 찾은 내 나라나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어떤 때는 일제 강점기가 더 좋아 보이기도 한다. 해방 후 정부가 보인 행태가 어땠으면 이랬을까.

이 과정은 오랜 과거가 아닌 바로 눈앞에서 오늘날의 일로 생생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작가는 20년 전의 일로 서술하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외진 모래톱에서 벌어진 기막힌 일을 그대로 묻어 둘 수 없어 건우를 통해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이다.

여기서 건우네의 불우한 이야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앞서 건우 아버지가 사변 때 사망한 사실은 언급했다. 삼촌도 있었는데 그는 삼치잡이 배를 타고 원양으로 나갔다가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서 고기밥이 됐다. 그러니 건우네 식구는 갈밭새 영감이 어부 생활로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다.

선생님은 두 번째로 건우네를 방문한다. 그때 함께 옥살이를 했던 윤춘삼씨를 만난다.

건우의 작문이 그 집 내역을 알려 주는 단초를 제공했다면 ‘송아지 빨갱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윤춘삼씨가 ‘따끈한 정종’이 있는 주막에서 풀어 놓는 이야기는 살아서 펄펄 뛴다.

그 자리에는 건우 할아버지도 함께했다. 을사늑약이 일어난 1905년 일제는 조선토지사업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조선의 토지를 주인에게서 강제로 빼앗았다. 땅 주인은 동척에게로 넘어갔고 이어 ‘불하’하는 교묘한 방식으로 일인의 차지가 됐다.

건우 할아버지가 이 대목에서 경상도 말로 울분을 토한다.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 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는되는기요?”

언론에도 불만을 털어놓는다. 썪어 빠진 글 만 쓴다고.

“ 와 그 신문 같은 데도 그런 기 수타 난다 카데요. 남은 보릿고개를 못 냉기서 솔가지에 모가지들을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 물이 파아랗니 푸르니 어쩌니......하는 것들 말임더.”

9월 새 학기 들어서도 건우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는데 남의 일처럼 지나가는 일로 흘리거나 아득한 옛날 이야기처럼 세상 속에 버려둘 수 없었다. 소설을 쓴 배경이다. 그 날 건우의 일기장에는 어떤 글이 적혔을지 선생은 궁금해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것 아니냐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하나도 부조리하지 않다. 건우 할아버지가 저항할 일도 아니고 건우 엄마가 한탄할 것도 아니다. 건우가 일기장에 분로를 토할 일도 아니다. 그러니 작가의 언어는 투박하고 거칠다.

낙동강은 오늘도 말없이 흐를 뿐이다.

: 요산 김정한은 1936년 <사하촌>을 발표 한후 <옥심이>,<항진기> 등의 작품을 내면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민중을 선동한다는 이유로 요주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 됐다.

이후 작품 서두에서 이 십 년 동안 붓을 꺾었다는 표현이 나오듯이 실제로도 이 작품이 나올 때까지 그 기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모래톱 이야기>는 문단 복귀작인 셈이다.

복귀 후 김정한은 <축생도>.<수라도>, <인생단지> 등을 발표했고 그 때마다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대개 지나간 역사의 일을 다루지만 그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현재도 고통스럽게 지속하는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낙동강 유역 농경민의 삶과 이들의 언어를 살려내 한국 문학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작품 속의 한 토막을 옮겨 보자.

“... 조국의 사랑이라곤 받아 본 일이 없어 헐벗고 배우지 못한 그들의 아들들이 먼저 조국을 수호해야 할 책임을 지고 훈련을 받고 총을 메고 군인이 되어 갔다는 것....”

그리고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

“이 땅이 이곳 사람들의 땅이 아니랬지? 멀쩡한 남의 농토까지 함께 매립허가를 얻은 어떤 유력자의 것이라고 하잖았어? 그러나 두고 봐. 언젠가는 너희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 거야... 나라 땅, 남의 땅을 함부로 먹다니! 그건 땅을 먹는 게 아니라, 바로 시한폭탄을 먹는 거나 다름없다. 제 생전이 아니면 자손 대에 가서라도 터지고 말거든!..”

과연 이런 희망의 말은 단지 희망이 아닌 현실인지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질문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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