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0-05-30 06:32 (토)
339. 그림자들(1959)- 멋대로 사는 인생
상태바
339. 그림자들(1959)- 멋대로 사는 인생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5.13 16: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허한 말들이 많다. 어제 안 했으나 오늘 했으나 마찬가지다. 내일 해도 되고 모레 안 해도 아무 일 없다. 아예 입을 봉하고 있어도 문제가 없다. 말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져서 그것을 굳이 주워 담을 필요가 없다.

한 마디로 이런 쓰잘머리 없는 말의 향연이 펼쳐진다면 듣는 사람은 기분이 어떨까. 그러나 존 카사베츠 감독의 <그림자들>의 등장인물들은 그런 것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네가 떠들면 나도 떠들어 대면 그만이다. 그러니 상대편 기분을 살필 필요가 없다. 어떤 짜임새나 연속된 줄거리를 기대한다면 미리 감치 포기하는 것이 낫다.

여기서 무슨 같잖은 이야기를 하면 어느새 장면이 바뀌어 저기서도 같잖은 것으로 응수하는 정도라고나 할까. 화내지 않아도 될 장면에서 목소리가 커지고 주먹질이 없어야 하는데 한 번 시작 하면 끝장을 본다. 이유 없는 반항이 난무하니 도대체 예측불허다.

애들도 아니고 해도 너무 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애들이 맞다. 사춘기를 막 지난 청춘들이 뒤섞여 제멋대로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한마디로 네 멋대로 사는 젊은이들의 수작질이 난무한다.

이런 분위기의 뉴욕 맨해튼 어느 곳에 삼 남매가 살고 있다. 형은 확실한 흑인이고 둘째는 백인 같고 셋째는 백인이 틀림없다. 형 휴니는 클럽에서 골빈 여자( 오해 마시라, 영화 표현에 따르면)들이 춤추는 가운데 노래를 부르는 삼류 재즈 가수다. 그러함에도 예술을 꺼내고 자존심을 내세우는데 보아서 우습다. 그런데 표정은 진지 그 자체다. 그러니 웃지 않아도 우스울수밖에.

동생 배니는 두 명의 백인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여자와 술로 하루, 하루를 지샌다. 막내 랠리나는 백인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진짜 하얀 피부를 자랑한다. 랠리나를 좋아하는 백인 남자가 있다.

남자는 그녀의 오빠가 흑인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검은 피부의 사나이가 자신 앞에 있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약속이 있다며 급히 떠나려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런 것 무시하고 랠리나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 사랑은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뭐 하나 딱 부러지게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

조각이 있는 공원을 달리고 다시 술집으로 가고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지껄이다 보면 어느덧 입이 아프고 혀가 얼얼하다. 그쯤이면 다른 장면으로 옮겨 가니 그들은 잠시 입을 쉬고 다음 ‘썰’을 위해 입술을 적시기만 하면 된다. 이 정도 대사라면 딱히 외울 필요가 없겠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 대면 그 뿐이다.( 실제로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에이런 자막을 넣는다. ‘이 영화는 즉흥 연출됐다’)

▲ 흑인 오빠 앞에서 당황하는 남자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급하게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랑을 고백을 하는데 둘의 사랑은 이어질지 끊어 질지 애매모호 하다.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웃고 떠드는 일상이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일까.
▲ 흑인 오빠 앞에서 당황하는 남자 친구는 약속이 있다며 급하게 자리를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랑을 고백을 하는데 둘의 사랑은 이어질지 끊어 질지 애매모호 하다. 사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웃고 떠드는 일상이 더 가치가 있기 때문일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렇게 연출됐다고 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먼지처럼 부유하는 인생들의 이야기가 정제되지 않고 산만하게 끝까지 가는 것은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이것을 뒷심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여기저기 짜깁기하거나 코딱지 같은 버려야 할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 반대 의견도 있겠지만) 기존의 영화 방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러니 영화판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어떤 이들은 60년대는 이 영화의 도래와 함께 시작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기존 시스템을 완전히 수용하기보다는 제대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주류 대중 영화에 식상했던 이들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오기를 갈망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영화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말하자면 독립영화의 선구자라고나 할까. 보면 볼수록 끌리는 이상한 매력은 무기력에 빠진 일상을 탈출하려는 시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천박하고 가볍고 해서는 안 될 도덕적 일탈은 하늘을 찌른다.

그러나 젊은 남자가 자동차를 피해 급히 거리로 나설 때는 왠지 짠한 느낌이 든다. 거기다 재즈는 처연하다. 이 짓거리 그만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왠지 내일이면 다시 건달들과 모여서 웃고 떠들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일 것 같다. 관객들은 그가 개과천선해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올 것을 믿지만.

국가: 미국

감독: 존 카사베츠

출연: 벤 카루더스, 랠리아 고도니

평점:

: 영화가 시작되면 클럽의 내부는 광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 젊은 남녀들이 뒤엉켜 정신없이 흔들어 대는데 이들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바짝 붙어 있다.

밀 접촉자들은 싫어하기보다는 되레 그것을 즐긴다. 음악은 귀를 때리고 환호 소리는 우렁차고 실내는 담배 연기로 자욱하다.

엊그제 이태원 클럽도 이런 장면이었으리라.(여기서 잡혀가던 코로나 19가 대거 발생했다. 방역 당국은 물론 시민들도 경악했다. 참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나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런가 하면 그들을 이해하자는 의견도 있다)

젊은이들은 자신만의 특권을 장롱 속에 넣어두지 않고 마음대로 쓰고 있다. 신났다. 3명의 남자는 여자들 헌팅에 나섰다. 호구조사는 기본이다. 그저 그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화들이 오가다가 서로 접촉하는데 진도가 상당히 빠르다.

아파트에 가자고 하고 거기 가서 뭘 하느냐고 묻고 다 알면서 그런다고 눈웃음 짓는다.

대화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늘 이런 식이다. 그러니 앞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표현은 과한 것이 아니다. 영화를 배우려는 사람이나 감독이나 배우가 되려고 한다면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거쳐야 할 영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