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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6 06:02 (금)
일주일 후 쯤 붕대를 풀어도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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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쯤 붕대를 풀어도 좋다고 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5.08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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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으로 봐서는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것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독사에 물렸으면 당연히 부어오르거나 신경의 일부 마비가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라고 판단했던 의사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자 그런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배운 지식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의사가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시골 의사에 대한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노련했으며 더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고 바로 칼을 집어 들었다.

독사에 물린 환자는 처음 대했으며 독사 치료 경험을 보거나 들은 적도 없었음에도 그는 이번에는 고개를 한쪽으로 미는 대신 손을 얼굴 쪽으로 가져가면서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것은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한다기보다는 어떻게 찢어야 좋을지 칼을 아래로 내리면서 가늠해 보기 위한 행동이었다.

역시 교본은 훌륭했다. 그대로 실천하면 됐다. 그림은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십자로 째고 소독하면 끝나는 일이다. 그가 칼을 아래로 내렸다. 그 짧은 순간에, 의사가 내 몸의 내부로 칼을 집어 넣기 전에 나는 급하게 소독만 해달라고 부탁했다.

굳이 찢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이어서 나는 항생제나 일주일 정도 치 처방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사는 내렸던 칼을 바로 세웠다. 나는 그가 내 의견에 동조해 주기를 바랐다.

일단 찢고 나면 회복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적어도 일주일 이상은 목욕도 하지 못하고 움직이는데 장애가 올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소독만 하고 항생제만 먹는다면 당장 오늘 저녁부터 샤워하고 씻는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더구나 나는 독사의 독이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왔다고 해도 미미해 신체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신경독이 퍼지기 시작했다면 독사에 물린지 벌써 두 시간이 넘었기 때문에 몸에 어떤 변화가 와야 한다. 그러나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시야는 여전히 정상이었고 청각이나 감각에 의미 있는 차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독사가 물었으나 독을 뿜지 않고 이빨 자국만 낸 것으로 여겼다. 달리 생각할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의사는 열십자를 고집했고 나는 혹시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렇게 하자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독이 퍼지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되면 늦는다는 의사의 말은 협박이라기보다는 환자를 위하는 진심의 마음이었다.

그 진심을 나는 순박한 그의 얼굴에서 보았고 적어도 돈벌이 때문에 칼을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의사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칼은 다시 아래로 향했다. 나는 그 장면을 고개를 들고 지켜봤다.

아프지도 않고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마취 주사를 놓은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아프지 않은 것은 이상했다. 단지 칼이 가로로 한 번 세로로 한 번 왔다 갔다 할 때 주사 맞는 것 같은 짧은 통증이 약하게 왔을 뿐이다.

의사는 짼 부위에 소독약을 바르고 이내 꿰맸다. 익숙했다. 시골 의사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이 과정은 10분이 넘지 않았다. 붕대를 감고 나는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집으로 왔다. 날씨는 더웠고 땀이 났으나 물을 대지 말라는 주위를 받았으므로 샤워나 목욕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증상이 없으면 의사는 일주일 후쯤 붕대를 벗어도 좋다고 했고 실밥을 빼기 위해 다시 병원을 방문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녹는 실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옆에 있던 간호사가 설명해 주었다. 그즈음 나는 독사가 얄밉기도 했다. 독을 쏘지도 않은 주제에 칠점사가 웬말이냐, 하고 하소연하고 싶었다. 앰뷸런스 까지 불렀는데 망신살이 뻗친 것 같아 무안했다.

적어도 우리나라 최고의 맹독을 가진 칠점사라면 몸에 막 날을 벼린 시퍼런 독의 흔적은 남겼어야 했다. 그러자 무시하는 마음이 생겼다. 칠점사도 별 것 아니군. 더 물라고 떼어내지 않고 기다려 볼 것 그랬나? 하는 뒤늦은 후회도 생겼다.

독사에 물리고도 아무렇지 않은 내 몸의 변화에 나는 독사를 나무랐다. 그러다가 문득 나에게 독사 독에 대한 항체가 생겼는지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여러 번 독사에 물린 땅꾼은 웬만한 독사의 독에 면역이 생긴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독사에 물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화사나 물뱀에게 물린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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