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는 호랑이 등에서 떨어진 적도 있다. 그때는 물론 바로 꿈이 깼다. 어디 다친 데 없나 하고 살펴보다 꿈이라는 사실에 적이 안도했다.
호랑이의 위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떨어졌는데도 상처하나 나지 않은 것에 대한 다행스러움이었다.
그 후로도 나는 간혹 호랑이 꿈을 꾸었다. 원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왜 호랑이가 꿈에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어떤 때는 온몸이 흰 백호를 따라다닌 적도 있었다.
녀석은 나를 등에 태우지 않았고 내가 타려고 하면 달려가서 탈 수가 없었다. 늘 미련이 남는 상태에서 꿈에서 깨어났고 그날은 하루종일 미지근한 기분이었다. 그럴때면 한 번이라도 꿈속에서 꼭 백호의 등에 타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다짐은 오래지 않아 실현됐다.
다짐 때문이 아니라 백호에게 새끼가 생겼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백호는 두 마리 새끼와 함께 나타났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달려갔다. 그랬더니 백호는 전처럼 도망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는 알았다. 새끼는 어렸고 달리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달리기보다는 성큼 성큼 걷던 백호는 금방 나에게 따라잡혔다. 체념이라도 한 듯이 백호는 앉아서 등을 내게 내미는 시늉을 했고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그 등에 올라탔다.
이미 다른 호랑이를 여러 번 타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말주인처럼 능숙하게 올라 탔던 것이다. 올라탔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냥 다리를 걸쳐 놓은 것에 불과했다.
나는 그 무렵 키가 훌쩍 컸고 네발의 짐승은 아무리 허리가 높아도 나의 가슴을 넘지 못했다. 올라탄 것을 알아챈 백호는 앞으로 걸었다.
내가 뒤돌아 보니 새끼들도 따라왔다. 두 마리 새끼는 자기들이 타야 할 곳에 사람이 탄 것을 알아보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시샘하거나 울기라도 해서 엄마 등을 차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백호 새끼에게 나는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당연한 듯이 백호 털은 노란 호랑이와 어떻게 다른지 만져 보면서 여유를 부렸다.
얼마쯤 가다가 백호는 갑자기 제자리 높이 뛰기라도 하는 것 처럼 힘껏 뛰었는데 그 때 나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나무에 훌쩍 올라갔다. 움직이는 반동 때문이었다.
나무 위에서 나는 백호가 새끼들을 데리고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아찔한 높이였기 때문에 나는 곧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도 잊고 겁을 먹었다.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곧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는 심하게 흔들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현실이 아닌 꿈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선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꿈이라는 것을 알자 떨어져도 다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 판단에 따라 나는 높은 나무에서 아래를 향해 몸을 날렸다.
곧 땅에 도착할 거라는 확신이 섰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땅에 몸이 닿지 않고 계속 허공에 떠있었다. 내리려고 해도 잘 되지 않았고 발버둥 치면서 내려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 꿈에서 깨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보다는 꿈에서 깨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깨려고 노력했는데 처음에는 금방 깰 것 같았으나 아무리 해도 쉽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그런 광경을 숲속에 있는 백호가 보고 있었다. 백호가 보고 있었다는 것은 사방은 어두운데 녀석이 들어갔던 곳에서 두 줄기의 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발버둥 치는데도 백호는 나와서 도와주지 않고 한동안 빛만 내쏘고 있었다. 나는 화를 크게 냈고 백호에게 따졌다. 왜 나를 내려 주지 않느냐고 내려 줄 책임은 네게 있다고 호통을 쳤다.
백호가 나무에 나를 던져 놓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호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밖으로 쏘는 빛은 점점 약해지고 나는 백호가 영영 숲속에서 나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 나는 땅으로 떨어졌다. 땅으로 떨어져서 보니 옆에 장끼 털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다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서 나는 잠이 깼고 한동안 백호는 꿈에서 나타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