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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노란털이 뺨을 스치고 얼굴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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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의 노란털이 뺨을 스치고 얼굴을 찔렀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4.20 11: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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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한 샛길에서 나는 호랑이 등에 타고 있었다. 잡을 곳이 마땅치 않아 귀를 잡았는데 알다시피 호랑이 귀는 작아서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가끔 놓치는 수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허리가 뒤로 꺾이면서 호랑이 등에서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호랑이 귀 대신 목 부분을 두 팔로 감싸면서 땅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목을 잡기 위해서는 몸을 등에 바짝 밀착시켜야 했다. 그랬더니 호랑이가 뿜어대는 숨소리는 물론 입에서 나는 냄새까지도 고스란히 맡을 수가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호랑이 숨소리는 크지 않았고 냄새도 고약하지 않았다.

호랑이는 그렇게 사람이 다니는 샛길을 이용해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산의 중턱에 이르자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덩달아 나도 뒤를 보았는데 산 아래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고 그 들 너머로 바다의 지평선이 보였다.

호랑이는 큼 큼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다가 뒷발로 땅을 치기도 했으며 나중에는 오줌을 찍 갈기기도 했다. 오줌을 갈겼다는 것은 냄새로 알기전에 찍 찍하는 소리로 눈치챘다.

이러한 행동은 고양이과 동물인 호랑이의 영역 표시라는 것을 꿈을 깬 후 나중에 '동물의 왕국'을 통해서 알게 됐다. 오줌의 일부는 내 바지를 적시기도 했는데 나는 축축한 느낌이 들기보다는 방수복을 입고 등산을 하는 것처럼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호랑이는 뒷발질을 몇 번 더 한 후 다시 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등 뒤에 나를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호랑이는 그런 것을 게의치 않았고 그래서 나도 그냥 호랑이 등에 계속 매달렸다.

내가 호랑이 등에 있으면서도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길을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길은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녔기 때문에 익숙했고 훤했다. 물론 깊은 숲속이었으나 하도 많이 다녀 굽은 소나무가 있는 지점에서 절까지의 거리와 시간까지 정확히 잴 수 있었다.

그 나무를 지나면 길이 오른쪽으로 30 미터쯤 구부러져 있고 그런 다음 다시 곧은 길로 가는데 그 길을 따라 역시 30 미터를 더 가면 오른쪽으로 앉아서 쉴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나타났다.

호랑이는 아직 산정에 오르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가는 길이 험하지도 않았고 딱히 거기 올라가서 급히 해결해야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호랑이는 새끼도 아니고 어미도 아닌 세 살 정도의 청년기 수놈이었다. 그는 아직 발정기의 정점에 이르지 않았으나 그 부근을 지나고 있었기 때문에 암놈을 찾아 나서고 싶어했다.

그런 낌새를 나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나 그렇다고 알고 있었다. 호랑이가 떠나면 나는 더이상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절에 가거나 산의 정상으로 오르지 못할 것이고 그런 것이 나를 슬프게 할지 아니면 무덤덤한 상태로 이끌기 확신하지 못했다.

다만 나는 호랑이가 움직일 때마다 등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따라 내 몸도 움직인다는 사실만 알 뿐이었다. 등이 바닥에 깔린 호피처럼 안락한 것은 아니었다. 부드럽지도 않았다.

어떤 때는 털이 얼굴을 찌르거나 뺨을 눌러대 고개를 들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호랑이도 잠시 멈칫했으나 이내 가던 길을 갔으므로 나는 다시 고개를 등에 기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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