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9 11:48 (금)
그 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상태바
그 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4.17 09: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달려가면서 나는 다리가 어떤 상태로 변하는지 신경을 집중했다.

독사의 독에 대한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것 중에서 가장 최악의 것을 연상하면서 나는 그것이 내 몸에 어떻게 퍼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독이 스펀지처럼 퍼지면서 내 몸이 굳어지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은 비참했다. 어느 부위에서부터 그렇게 되는지 나는 뛰어 내리면서도 그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등산화 끈으로 묶은 허벅지의 조임에서 오는 통증과 독사의 독이 스며든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했다.

그것들을 과연 나는 명확히 구분할 수 있을까. 몇 번 나는 미끄러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직감적으로 팔과 무릎 등이 긁히거나 그 보다 더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멈출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식은땀과 더위와 달려 내려오면서 오는 온몸의 열기 등이 합쳐져서 땀으로 범벅이 됐으나 나는 쉬지 않았다.

그런 가상한 노력의 결과는 올라올 때 스쳐 지나쳤던 내소사 암자부근 까지 오는데 시간을 단축했다.

그곳에서 나는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큰 형을 만났다. 호기심이 많은 큰 형은 산세도 살피고 내가 올라간 산의 모양을 확인하기 위해 그 쪽으로 왔던 것이다.

큰 소리로 부르고 나서 나는 잠시 묶었던 허벅지 부근의 바지를 내려 살펴보았다. 피가 죽어 검은색을 띄지 않았으나 너무 세게 묶었는지 줄은 살 속 깊이 파고들어 보기에 심하다 싶은 피부 변조가 일어났다.

자초지종 이랄 것도 없이 나는 칠점사에 물렸다는 것을 알렸고 부축을 받으면서 내소사로 내려왔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자력으로 내려 올 수 있었으나 웬일인지 그러고 싶었다.

전쟁터의 부상병처럼 보이고 싶었던 마음은 아마도 어떤 전쟁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총상을 입고 동료에 의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기억이 있다. 전우애는 그런 것이다, 고 맞장구 쳤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그런 기억은 소환됐고 인간은 누가 보아서 나쁘기 보다는 좋은 쪽으로 언제나 행동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급한 상태인데도 나의 상황을 다른 사람이 동정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 것은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 얼마나 후회했는지,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맷집이 허약한 상태였는지 깨닫는 계기가 됐다.

어쨌든 나는 살아서 절 당으로 들어섰다. 친절한 스님의 안내로 절간의 빈 방에 나는 잠시 누워 있었다. 일종의 대기 상태였다.

다리를 들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잠시 망설였다. 영 판단이 서지 않아서 엉거주춤 무릎을 세웠다.

심장보다 낮은 쪽인지 위쪽인지 그때까지 허둥댔다. 누워 있으니 고요했다. 한 두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사라졌다.

관광객들이 절 구경을 마치고 하산하거나 등산로를 따라 산 쪽으로 사라졌다. 아니면 약초를 깨기 위해 나처럼 무작정 위로 올라가는 사람인지도 몰랐다.

절 방에 누워 있으니 옛날 일이, 지금처럼 누워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는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학교 입학 전이니 아마도 그 당시 내 나이에서 25년쯤은 빼야 맞을 것이다.

그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의 중턱에 이름도 알 수 없는 절이 하나 있었다. 이름이 절이지 실상은 어떤 사람이 그냥 지어놓고 절과 중 행세를 하는 곳이었다.

조계종이니 무슨 종이니 하는 소속 법당이 아니었다. 무당처럼 용한 곳이라고 판단해 집을 짓고 중 행세를 했고 사람들은 그 절의 중이 신통한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여자가 머리를 박박 깎고 혼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호기심 때문에 특히 더 그 절의 중에 관심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어머니였는데 어머니는 탁발하러 왔던 중에 이끌려 그 절에 한 번 갔다 와서는 간혹 우리 식구들을 그리로 초청했다.

거기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어떤 마을을 지나야 했고 그 마을의 마지막 집을 지나서 샛길로 난 길을 걸어가야 했는데 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겨우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길을 지나면서 숱한 동물들을 목격했다.

낮이었는데도 토끼나 노루 같은 것은 물론 호랑이 새끼라고 불렀던 개호지 같은 것들도 분명하지는 않지만 보았다고 느꼈다. 그것은 간혹 만화책이나 잡지에서 보았던 호랑이를 연상 시켰다.

그 호랑이 등에는 언제나 하얀 수염의 신선이 타고 있었는데 절에 갔다 오고 나서 언제가 한 번 꿈에 그 호랑이와 신선이 나타난 적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 꿈을 기억하고 있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