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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29 00:50 (금)
108. <올리버 트위스트>(1837)- 인간의 선에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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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올리버 트위스트>(1837)- 인간의 선에 기대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4.13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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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이야기를 새삼 꺼낼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책뿐 아니라 극이나 영화로도 여러 차례 나와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오늘 소개한 찰스 디킨스의 < 올리버 트위스트>가 여기에 해당한다.

부족한 것이 용기인데 그것을 낼 때는 작심해야 하고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것은 오늘날에도 숱한 올리버의 후예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그의 고향인 런던이나 이웃 도시인 파리나 로마나 마드리드나 한결같이 변하지 않고 있다. 과거의 올리버와 현재의 올리버를 비교하는 것은 작품을 읽는 내내 즐거움이나 괴로움 혹은 그 이상의 것들을 상상하게 한다.

경험으로 치면 한 3년 전쯤 앞서 언급한 유럽의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날 하루에 무려 세 차례나 나는 소매치기의 위협에 떨어야 했다.

어른 서너 명이 몰려다녔는데도 어린 올리버들은 가차 없고 노련했고 빨랐다.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그들의 눈에 허점이 보였는지 어떤 다리 위에서 작은 여자애의 손이 불쑥 바지 속으로 들어왔다.

호기심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한참 만에 이상을 느껴서 보니 손은 여전히 바지 주머니 속에 있었다. 여자애는 지갑을 꺼내지 못하고 꺼내기 위해 여전히 실랑이하고 있었다. 얼결에 큰 소리로 주머니 속의 손을 쫓아냈다.

놀란 가슴을 진정하면서 다음 일정을 시도했다. 버스 정류장 앞이라 다른 행인들도 북적이지는 않았어도 서너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주머니 속의 손과 비슷한 얼굴, 비슷한 나이 또래의 소녀와 소년들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무슨 종이 쪼가리를 내밀면서 앞으로 다가왔다.

빠른 말로 뭐라고 떠들기 시작했는데 아차 하는 순간 바지 부근에서 아까와는 다른 또 다른 손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이번에도 지갑은 빠지지 않았고 그는 빼기 위해 노력하다가 포기하고 돌아섰는데 달아나지는 않았다. ( 올리버가 들켰을 때는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 그러다가 총을 맞고 부상하는 것을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뒷걸음질 치면서 눈과 눈이 마주쳤는데 수치스러움보다는 매우 당당했다. 얼마나 뻔뻔스러운지 당할 뻔했던 경험보다는 그들의 태도가 혀를 휘두르게 만들었다.

두 번의 경험은 움직일 때마다 손을 바지와 윗주머니와 가로로 맨 가방을 만지는 것으로 대응했다. 저녁에는 더 단단히 무장했는데 어느 순간 뒷골이 띵했다. 돌아보니 바로 뒤에서 서너 명이 주춤거렸다. 그들은 이후에도 가는 곳마다 10분 이상을 따라 왔다.

기회를 노렸으나 우리는 빈틈을 주지 않았고 그들은 고개를 들고 떠났다. ( 지금 순간도 그때를 생각하면 오금 저린다. 그들은 그들도 먹고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것이 문화라면 그들의 문화는 한마디로 볼일 없다.)

서문이 긴 것을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올리버가 소매치기 일당에 속했던 적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행동을 했으며 그의 패거리들이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10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올리버의 후예들은 여전히 런던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하급관리에 관한 내용이다. 굳이 관리 앞에 하급을 넣은 것은 그들의 역할은 직책에 비해 결코 낮지 않고 매우 크고 위중하기 때문이다.

▲ 고아나 극빈자들을 위한 수용소의 구빈원은 아이들에게 철저한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다. 굶주림 때문에 국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고 심한 학대를 당하고 악의 소굴에 빠졌던 올리버는 그러나 타고한 선함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유지해 마침내 착한 사람의 양아들로 들어간다.
▲ 고아나 극빈자들을 위한 수용소의 구빈원은 아이들에게 철저한 식량 배급제를 실시했다. 굶주림 때문에 국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고 심한 학대를 당하고 악의 소굴에 빠졌던 올리버는 그러나 타고한 선함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유지해 마침내 착한 사람의 양아들로 들어간다.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 백성이 맨 먼저 상대하는 말단 관리는 벼슬을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쓰지 않고 괴롭히는데 사용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우리가 동사무소 시절이라고 불렀던 그 당시 일을 기억해 보자. 한두 번은 불쾌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만하거나 일 처리에 늑장을 부리거나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무시당했던 기억 말이다.

하급관리 범블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구빈원의 극빈자들을 보살피는 역할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막중한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그러기보다는 가난한 자의 가슴에 온기 대신 못을 박고 있다. 잘 먹이고 잘 입히는 대신 덜 먹이고 넝마를 보급해 그들 스스로 범죄의 소굴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물론 범블의 태도는 그를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제지는커녕 부추키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반드시 하급관리의 문제만으로 국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태도를 용서할 수는 없다.

올리버가 소매치기의 소굴에서 적극 동조하지 않고 끝까지 선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범블도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 아이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탁아소 운영비 착복에만 관심이 있는 맨 부인도 눈여겨보자. 범블과 맨 부인 중 누가 더 악당인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의 그런 시설들은 차별 없고 공정하며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지 묻는 시간도 가져보자.)

시간을 지체했으니 바로 본론으로 가자. 소매치기의 두목은 페이킨이고 그와 함께 동업하는 싸익스는 그와 견줄 만큼 나쁜 놈이다. 낸시나 꾀돌이, 찰리 베이츠 등은 잔챙이다.

잔챙이는 빼고 두목급의 활약상 대신 최후를 먼저 읽자. 싸익스는 탈출하기 위한 줄에 목이 걸려 죽는다. 도망치다 장렬히 산화하는 것이 아니고 죗값을 받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그에게 헌신했던 착한 낸시를 무자비하게 살해했으니 선을 믿었던 마음씨 착한 찰스 디킨스의 손에 아니 걸려들 수 없다. 그를 죽이면서 디킨스는 분노하는 독자들의 끊는 가슴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데 성공했다.

페이킨은 법의 심판에 따라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가 죽기 전에 과거를 회상하고 참회했는지 아니면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 요란한 흥분을 보였는지는 마지막에 자세히 나와 있다.

소인배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크게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악당의 최후가 왔으니 책은 나아 가지 않고 끝난다.

마무리 전에 올리버를 뒤돌아보자. 그가 깨끗한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풍족하게 먹기 전에 그의 삶이 어땠는지 말이다.

앞서 범블은 천사가 아닌 악마로 묘사했다. 그 밑에 있었으니 올리버의 비참함은 말해 무엇하랴. 구빈원을 나와 장의사의 도제로 팔려나간 올리버는 그곳의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런던으로 탈출한다.

좋은 신사를 만나서 구제되는가 싶었는데 다시 페이킨 일당의 손에 잡히고 부상을 당하고 다시 좋은 신사의 품에 안긴다. 신분도 밝혀졌는데 좋은 신사의 친구가 바로 아버지였다. 그를 낳고 바로 죽은 어머니 역시 비천한 신분이 아니었다.

뿌리도 찾고 좋은 신사의 양아들로 들어간 올리버 트위스트. 영국인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선을 행하고 싶어 했다. 과연 잰틀맨의 나라답다.

: 하급관리 범블의 아내는 이미 결혼한 여자인데 그래서인지 신혼 신참인 범블을 쥐 잡듯이 한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면 절대 굽히지 않는 범블은 아내 앞에서 고양이 앞의 쥐 신세인데 아마도 범블은 영국 최초의 기처가( 부인 앞에서 기어 다니는 남편) 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둘의 대화 아니 범블 부인의 현란한 언어 구사력과 폭력적인 응대는 앞장의 구빈원 생활만큼 박진감이 넘쳐 흐른다. 아이들 앞에서 호령하던 범블이 부인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모습은 인간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좋은 신사와 좋은 숙녀( 이들은 천사와 다름없다. 도무지 흠잡을 곳이 없는 사랑의 전형이다. 이런 사람만 있다면 인류는 과연 행복의 나라로 갈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의 등장으로 김이 샐 때쯤이면 앞과 뒤에서 맹활약했던 이들 부부의 생활을 되돌아 보자.

찰스 디킨스는 이 책을 25살 때 썼고 그 이후로 일약 최고의 작가 반열에 올라 셰익스피어와 같은 명성을 누렸다.

그의 서문 일부는 이렇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런던 주민들 가운데 가장 범죄적이고 타락한 집단에서 선택됐다. 싸익스는 도둑놈이고 페이긴은 장물아비이며 소년들은 소매치기이고 여자애는 창녀다.”, “가장 혐오스러운 악에서도 가장 순순한 선에 대한 교훈을 끌어낼 수 있고 ...이런 믿음으로 필자는 어린 올리버를 통해 선의 원리가 온갖 역경을 딛고 살아남아 마침내 승리하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참고로 영국은 1795년 이후 시행돼 오던 구빈법을 책이 나오기 몇 년 전에 새로 개정했는데 벤담과 맬서스 같은 공리주의자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구제 대상인 빈민을 줄이고 노동력을 최대로 끌어내 빈민구제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려는 공리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다.

그러나 신구민법은 사회비용 절감, 어린이와 노약자의 처우 개선 같은 긍정적 취지는 살리지 못하고 빈민의 출산을 막기 위해 부부를 분리 수용하고 최저 수준의 급식과 가혹한 노동을 의무적으로 강요했다. 행정관리들은 여전히 부패해 구빈원은 오히려 전보다 더 열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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