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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3-01 16:01 (금)
두 줄기의 선명한 핏자국- 부인할 수 없는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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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줄기의 선명한 핏자국- 부인할 수 없는 흔적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4.07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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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노려볼 때 내 눈은 빛났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빛나는 빛과는 다른 빛이었다.

살기를 띤 빛이 어찌 애정 가득한 눈과 비교될 수 있을까. 눈에 힘을 주고 녀석을 노려봤다. 지지 않고 녀석도 맞대응했다.

한발 더 나아가 혀까지 날름거렸다. 하는 짓이 밉살스러웠다. 눈꼴 사나워 더는 봐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단박에 짓이겨 버리고 말리라 나는 분노를 손에 모았다.

그런 기분은 지체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다리에 작은 통증이 밀려 왔다. 독이 퍼지고 있었다. 이러다 산중에서 객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몰려 왔다.

나는 녀석을 죽여야 한다. 그것이 먼저였다. 그러나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려치려는 순간 나는 멈칫했다. 왜 그런지 나는 주저했다. 녀석을 먹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아도 그럴 마음이 없었다.

순식간에 그런 감정이 들었다. 녀석을 먹어야만 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도 믿기 어려웠다. 나는 녀석을 살려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들었던 곡괭이도 내려놓았다. 대신 돌 부스러기 같은 것을 녀석에게 던졌다. 해칠 의사가 없으니 가던 길을 계속 가라는 신호였다.

녀석은 몸에 던진 것을 맞더니 한 번 혀를 더 내밀고는 꼬리를 풀었다. 그 전에 고개를 앞으로 당겼다가 뻗으면서 위협적인 행동을 했으나 이내 그만두었다.

뭉쳤던 몸이 풀리자 녀석의 긴 모양이 생생히 드러났다. 생각보다 녀석은 길었다. 1 미터는 될 듯 싶었다. 굵은 몸에 비해 꼬리는 너무 짧았다.

나와 정반대의 길로 뱀은 사라졌다. 눈앞에서 완전히 사라져서 꼬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기다렸다. 불과 몇 초 걸리지 않았으나 긴 시간이었다.

갈색과 회색, 검은 줄이 쳐진 녀석이 사라지자 나는 다시 다리로 눈길을 모았다. 뱀은 살려준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았다. 떠날 때 뒤돌아 보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길렀던 늑대를 숲에 풀어 줄 때 주인을 향해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순간에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시혜를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을 바랐기 때문이기보다는 그와의 대결이 종료된 것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었다.

나는 바지를 걷어 올렸다. 물린 자국이 선명했다. 무릎과 발목 사이의 중간쯤 정강이에 두 개의 흔적이 있었다. 그 뚫린 흔적을 따라 흘러 내려오다 굳은 피가 발목 직전에서 멈췄다.

두 개의 이빨 자국을 확인한 나는 물렸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렇게 한 것은 독사에 물렸을 때 정신 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어른들의 말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그 말은 호랑이에게 물렸을 때로 바꿔도 무방하지만 지금 그런 것을 따질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피를 그대로 두고 나는 배낭끈을 잘랐다.

그리고 누구나 아는 상식대로 물린 부위의 위쪽을 묶었다. 허벅지 안쪽을 조이자 나는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됐다.

내소사 안마당까지 내려가는데 30분이면 가능할 것이다. 올라오는 데는 한 시간 정도 걸렸으나 내리막길이고 급하게 서두른다면 가능하다 싶었다.

그곳에 가면 병원에 연락할 수 있는 방책이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위험한 순간을 피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무엇보다도 정강이의 뚫린 구멍 주변이 심하게 부풀어 오르지 않았다는데 안심했다.

강한 독이 미쳐 뿜어져 나오기 전에 칠점사가 이빨을 푼 것이 분명했다. 독을 깊이 박아 넣지 않고 피부 주변에만 약하게 뿌린 것에 대한 이유를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뿌리쳤기 때문인지 녀석이 일부러 그렇게 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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