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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0 06:03 (토)
머리는 삼각형 몸통은 굵고 길이는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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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삼각형 몸통은 굵고 길이는 짧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30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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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을 우회하는 길도 마뜩찮았다. 앞에는 거대한 바위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전문가용 등산장비가 없이는 앞으로 나가는 것이 한 발자국도 불가능했다.

다시 내려가야 하는가.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것은 깊은 산 속의 나무와 바위들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어딘가 있을 약초를 두리번거리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쉽게 눈에 띌 리가 없다. 하산하기로 결심한 나는 몸을 뒤로 돌렸다. 당연히 보여야 할 아래쪽 경치는 거의 없었다. 숲의 중심 자리에 든 것이다.

아직 잎은 덜 떨어졌고 시야는 가려졌다. 무턱대고 올라온 것은 어떤 용기 때문이었을까, 이런 우문을 던지면서 자만심을 자책했다.

그것은 두 세 번의 지리산과 서너 번의 설악산 종주 경험때문일 것이다. 그런 산을 돌고 돌았기에 내소사의 뒷산 정도는 너무 우습게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위로 오르기만 한 결과는 바로 내려가야 한다는 뉘우침으로 나타났다. 나는 메고 온 등산용 배낭에 아무것도 채우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할 겨를도 없이 하산을 서둘렀다.

하산하다 우회로를 찾자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하산 길도 만만하지 않았다. 올라갈 때는 몰랐으나 내려갈 때는 흙이 쉽게 부서지고 무너져 내렸다.

몇 번의 엉덩방아를 찧는 수모를 당했다.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세 번째 넘어지고 나서 흐르는 이마의 땀을 닦을 수밖에 없었다. 안경으로 떨어지는 땀방울이 앞을 가릴 정도가 됐기 때문이다.

서둘러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안경을 벗어 들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 주변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고 바람한 점 없었다.

조금 쌀쌀한 가운데 출발했으나 산 속에 있으니 후덥지근했다.

그 순간 모기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떤 놈은 드러난 살 대신에 옷 위로 침을 박았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치고 옷을 털어도 역부족이었다.

침으로 찌르지않고 쪼는 녀석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노란색 면바지의 아래쪽은 그야말로 모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마치 검은 점을 박은 패션의 일종인 것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발걸음을 서둘러 아래로 향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옆에 놓았던 배낭을 집어 들었다.

모기와 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것을 깨닫은 것은 오래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나는 일어섰다. 배낭을 추스르고 아래로 몸을 틀었다.

그 때 무언가 따끔한 것의 느낌을 다리 아래쪽에 받았다. 그것은 모기의 침과는 다른 엄청난 것이었다. 날카로운 송곳 두 개가 순식간에 찍고 달아나는 느낌이었다.

나는 순간 뱀에 물렸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나는 한두 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충격에 대한 기억이 지금 생생히 살아나고 있다.

이곳은 깊은 산속이다. 밭가에서 물렸던 화사와는 다른 종류의 뱀이라는 것을 바로 인식했다. 그렇다면 이는 너무나도 큰일이다. 가을 독사의 독은 약이 오를 대로 올라 황소를 죽일 정도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기 들었다.

그래서 겁이 덜컥 났다. 소름 돋는 소리가 오독 오독 하고 들렸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주변을 살피면서 날 문 녀석이 화사이기를 바랐다.

꽃뱀이라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움직이지 않고 주변을 살폈을 때 나는 그런 기대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챘다.

그것은 독사였다. 머리는 삼각형으로 둔탁했으며 몸통은 굵었고 길이는 짧았다. 살모사인가 했더니 아니었다. 그것은 칠점사였다.

물리고 나서 일곱 발자국 가기 전에 죽는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맹독을 가진 녀석이었다. 놈이 꼬리를 말고 나를 노려보면서 혀를 날름댔다.

나는 옆에 있는 약초 캐는 곡괭이를 지체 없이 들었다. 회초리 같은 것이 없어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잘 조준하면 물리지 않고 녀석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뱀을 여러 번 그런 식으로 죽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오른 손에 그것을 들고 가만히 녀석과 눈을 마주치면서 앞으로 한 발 다가갔다.

녀석을 죽이고 죽인 녀석을 먹으면 독의 기운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식의 말을 나는 곧잘 믿었다. 잡아서 생으로 먹지는 못해도 불 질러 먹을 수는 있다. 불 지른 녀석을 나는 먹은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못할 것이 없다. 나를 해치지도 않은 녀석을 그렇게 하기도 했는데 내가 해치려고도 하지 않았는데 나를 공격한 놈을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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