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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깊은 산 속 절벽을 향해 기어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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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깊은 산 속 절벽을 향해 기어 오르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25 1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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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내소사의 가을은 호젓했다. 입구에서부터 걸어가는 길은 강원도 월정사의 길 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바람은 소소하게 불었고 간혹 붉은 빛의 단풍이 흐느적거리며 떨어졌다. 운치라면 이런 것일 것이다.

길가에 어떤 나무들이 포진 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메타세콰이어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색이 온통 노란 은행나무도 아니다. 그렇다면 소나무인가, 하여튼 어떤 아름드리 나무들이 주위에서 호위병처럼 둘러서서 가는 나그네의 뒷모습을 배웅했다.

걸어가는 길이 이러니 마음이 어땠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충분히 좋은 조건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가면서 그 길로 앰블런스를 타고 병원에 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면서 가는 앰블런스 안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지금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등에 맸던 배낭이 조금 묵직했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그 속에는 끊여 먹을 도구가 잔뜩 들어 있었다.

그러나 라면을 냄비에 넣지는 못했다. 입구에서 취사 금지라는 안내판을 읽었기 때문인데 사실을 말하자면 그 안내판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자는 심사도 아니었다. 그 때만 해도 그러는 것에 대한 반항심이 제법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아니었다.

어린 딸과 함께 갔었는데 그 아이가 취사금지가 뭐냐고 물었고 나는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것은 아버지 된 자의 도리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기가 호기심에 물어 보는 것을 어른이 대답해야 한다는 친절함 때문이기도 했다.

설명을 들은 아이는 울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울었다. 나보다 먼저 아기가 포기했던 것이다. 먼 거리를 걸으면서 종알거렸던 것은 산 속 깊은 곳에서 먹는 맛있는 라면의 유혹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이럴 줄 알았다고 해도 취사금지에 대한 장황을 설명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이가 울자 나는 슬퍼졌다.

어린아이의 울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고 누군가 쓰지 않았던가. 이때 필요한 것이 어르고 달래는 것인데 나는 사실 그런 것에는 익숙하지 못했고 익숙하지 못한 것은 곧 들통이 나고 만다.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훌쩍 거리면서 라면이 먹고 싶다고 어린애이니 당연히 어린애처럼 들볶았다.

내려가서 먹자는 쉬운 말이 그 때는 왜 생각나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이는 포기했다가 다시 먹기의 유혹에 빠졌다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취사금지를 어기면서까지 아이의 청을 들어 줄 수는 없었고 어르고 달래는 것도 실패했으므로 내소사의 우람한 건물이 한 눈에 보이는 절 마당 까지 무등을 태우는 것으로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목을 구부리고 먼 길을 그렇게 하고 나서 마침내 아이를 내려놓았을 때 나는 목에 쥐가 나고 있음을 알았다.

축구를 하다 종아리가 굳어진 적이 있었다. 굳어진 종아리는 온 몸을 굳게 했고 곧 숨이 끊어 질 것 같은 고통이 왔다.

그 때 누군가가 다리를 들고 뒤로 당기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온전한 두 다리로 걷지 못했을 것이다.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아무리 노마크 찬스가 와도 나는 큰 힘을 단 번에 주는 것을 단념해 ‘허당’ 이라는 별명을 누군가로부터 듣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목을 주무르기 위해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늘은 파랗고 실바람은 불어왔다. 나무꾼의 이마를 시원하게 해주었던 바로 그 바람이었다.

그 와중에도 하늘이 보였고 이마를 씻어 주는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꼈으니 목의 쥐는 다리에 쥐에 비해 강도가 센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주무름과 몇 번의 꺾음으로 해서 나는 목의 쥐를 풀었다. 대충 절 구경을 끝내고 아이는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산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것은 내소사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였다. 중병에 걸린 둘째형의 기사회생을 위해 나는 내소사 깊은 곳에서 어떤 신비의 약초를 캐야 했다.

그것만이 죽음이 문턱에 서 있는 형의 육체를 건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현대의학은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로 치료를 포기한 상태였다.

죽기만을 기다릴 수 없어 나는 깊은 산속으로 약초 바구니를 메고 자꾸 들어갔다. 산속에는 바람이 불지 않았다.

가을이라고는 했지만 바람 없는 산을 등산로도 아닌 길로 접어들어 헤매고 있으니 땀이 금세 옷을 적셨다. 아직 찾던 약초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절벽을 향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어떤 힘이 나를 그렇게 했는지 지금이라면 안 될 것이다에 투표를 할 것이다. 그만큼 산은 험했고 구십도 직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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