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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서양미술사>(1950)-글로 보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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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서양미술사>(1950)-글로 보는 그림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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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원화로 보는 것이 맞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 때는 도판으로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당연히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를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 아니보는 것보다는 106배나 좋다.

<곰브리치 세계사>( 이 책에 대해서도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모든 이야기는 옛날 옛적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책의 첫 문구는 예외로 하고)의 저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 나오는 첫 도판은 1620년경에 그린 루벤스의 ‘아들 리콜라스의 초상’이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어린 아들을 스케치하면서 루벤스는 아들이 자랑스럽고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랐을 것이다.

루벤스는 또 딸 클라라도 그렸다. ‘아이의 얼굴’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그름을 나는 운 좋게도 도판이 아닌 실제로 본적이 있다. 원화로 말이다. 그때의 기분을 나는 고갱의 일대기인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의 감상평을 다루면서 이렇게 적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살아 있는 눈동자, 울다가 금방 그치고 해맑게 웃으며 엄마를 부를 것만 같은 앙증스런 입술, 젖을 많이 먹어 살이 단단히 오른 터질 것 같은 불그레한 볼살. 사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이 같은 정교함과 묵직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국립중앙박물관 한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루벤스와 세기의 거장들’이라는 전시회의 메인 그림인 루벤스의 큰 딸 클라라 세레나 초상화 앞에 서면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한다.

과연 천재구나 하고 되 내면서 가까이서, 조금 떨어져서, 더 멀리 떨어져서, 시시각각 달리 보이는 그림에 빠져들어 간다. 대가의 그림은 문외한이라도 이런 감상에 젖게 만든다.”

<서양미술사>를 다루면서 이런 개인적 소회를 먼저 끄집어내는 것은 미술의 역사를 통해 미술을 보는 안목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기 위함이다. 미술의 역사는 모든 미술의 역사가 아니라 보아서 가치 있는 미술만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그림 전문가에게 하는 가장 흔한 질문은 어떤 그림이 좋은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천편일률적이다.

“자기 눈에 들면 좋은 그림이다.”

옳은 말이지만 무책임한 답변이다. 자기 눈은 그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 정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객관적이지도 옳지도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괜찮은 답은 안목 있는 검증된 전문가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실력을 겸비한 비평가가 무릎을 쳐야 좋은 그림으로 낙점받을 수 있다.( 여기서 비평가의 수준을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이 원고는 수천 페이지로도 부족할 것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도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 기준이 좋은 그림의 절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미술입문서이며 좋은 그림을 판별하는 감식안을 얻기 위한 필부들의 필독서라고 부를 수 있다.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거쳐야 하는데 감식안뿐만 아니라 문장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명문이라 문학청년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한마디로 글로 읽는 그림이라고나 할까. 클라라의 도판을 옆에 놓고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클라라가 자꾸 나를 쳐다본다.

숱이 많은 금발의 머리를 뒤로 단정하게 끈으로 묶고 광채를 받고있는 넓은 이마 아래로 살아 있는 눈이 말을 건네 온다. (우리 아빠는요, 세상에서 젤루 유명한 루벤스요 라고)

이 책에는 모두 413개의 도판이 실려 있는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리자라는 이름의 한 피렌체 부인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들어있다. 1520년 그려진 이 그림은 아마도 세계의 모든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그림 가운데 첫 번째로 꼽을 만하다.

곰브리치는 모나리자의 지나친 명성은 작품을 위해서 반드시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림엽서나 광고 등에서 숱하게 봐 왔지만 다 잊어버리고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볼 필요가 있다고 쓰고 있다.

그 이유는 그림 속의 인물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우리 눈앞에서 변하여 볼 때마다 달리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를 조롱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녀의 미소 속에 어떤 슬픔이 깃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모나리자’ 이전에도 1300년경의 조토나 1400년 초의 원근법 창시자 마사초 그리고 15세기 말에 활약한 보티첼리 등 미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숱한 존재들은 이 책의 앞장에 배치됐다. ( 여기서는 빼놓았으나 독자들은 이 부분도 세심하게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그래야 천재 3인방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로 넘어가는데 수월하다.)

간혹 글을 읽다가 작가의 설명이 과연 그런지 그런 감정이 나에게도 파도처럼 밀려오는지 아닌지 도판을 확인하다 보면 작가와 내 생각이 당연히 다를 수 있다. ( 다른 것 역시 적을 필요가 없다. 그와 나의 수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수많은 참고문헌과 직접 현장을 찾아 원화를 수도 없이 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들은 그와 어찌 견줄 수 있을까.)

곰브리치에 따르면 위 세 사람의 위대한 시대가 가면 빛과 색채의 시대다.( 이 시기를 넘어 뛰기 전에 그들이 누워서 성당의 천장에 그린 그림들의 위대함을 도판으로나마 확인해 보자. 미켈란젤로는 얼마나 기세가 있었던지 자신을 원하면 교황이 직접 찾아 오라고 했다고 한다. 머리로 일하던 시인만 존경받고 손으로 일하던 미술가들을 천대하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가고 있었다.)

이탈리아 미술의 중심지이며 피렌체와 버금가는 자부심 넘치는 번영의 도시 베네치아가 등장한다.( 지금 베네치아는 심하게 표현하면 죽음의 도시로 변해 있다. 코로나 19의 악명은 도시를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서 전염병이 사라지기를)

▲ 글을 읽다가 도판을 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따분할 때 도판을 들여다 보면서 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따라가 보자. 글과 그림은 따로 놀리 않고 하나로 뭉쳐 있다.
▲ 글을 읽다가 도판을 보는 재미가 여간 아니다. 따분할 때 도판을 들여다 보면서 위대한 화가의 일생을 따라가 보자. 글과 그림은 따로 놀리 않고 하나로 뭉쳐 있다.

건축에서도 놀랄만한 업적이 이어졌다. 헬레니즘을 지나 르네상스시대는 말 그대로 복구와 재생, 부활의 시대였다.

천재 3인방에 이어 화가 조르조네, 티치아노가 명성을 얻었고 권력자들은 이들에게 앞다퉈 초상화를 부탁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독일의 뒤러, 네덜란드 얀 벤 에이크가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어떤 분야든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매너리즘 시대가 왔다. 젊은 미술가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과거의 그림을 속된 말로 베끼기에 바빴다.

이후 푸생, 루벤스, 반다이크, 벨라스케스 등의 거장들이 뒤를 이었다. 네덜란드의 위대한 화가 렘블란트, ‘강아지를 안고 있는 볼스양’( 루벤스의 클라라만큼이나 귀엽다.)을 그린 레이놀즈, 영국의 게인즈 버러 시대를 지나면 18세기 말의 미술이다.

이 시기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과 맞닿아 있다. 시대의 거울인 것이 미술인 것을 감안하면 미술에도 일대 혁명이 일어났을 법 하다. 이성의 시대이니만큼 이른바 ‘양식’ 에 대한 관념의 변화가 싹 텄다.

고딕양식에 변화가 있었고 혁명정부의 공식화가 다비드가 등장했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다. 클로드 로랭을 거친 후 미술은 이제 끝없는 변혁기에 들어선다.

비평가들은 예술과 기술의 차이에 주목했다. 그리는 자와 사려는 자의 간격은 벌어졌다. 그러함에도 밀레, 쿠르베, 들라쿠르아, 마네와 그 추종자들, 모네 등이 파리 화랑가를 배회했다.

그리다 만듯한, 마무리가 덜 됐다고 비난을 받았던 인상파들이 전면에 나섰다.( 마네가 그린 ‘배에서 그림 그리는 모네’가 대표적이다. 이에대한 판단은 램블란트의 “작품이 완성된 때는 미술가가 그의 목적을 달성한 때” 라는 말로 대신한다.)

이들은 고딕이나 바로크 혹은 매너리즘을 의미하는 경멸조 단어의 희생양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인상파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이런 것을 생각하면 비평가들의 비평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면 비평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곰브리치는 이들을 비판하면서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을 비웃지만 말고 그것을 사놓았더라면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비꼬았다)

이후 전개된 모더니즘은 프랑스의 위대한 조각가 로댕을 탄생시켰고 이후 세잔, 쇠라, 고갱, 반 고흐 등이 잇따라 나왔다.

빈센트 반 고흐는 화가의 사명감, 투쟁과 승리, 절망과 고독, 타인과 사귀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 등을 그림 속에 녹여 내려 했다고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썼다. ( 그의 이런 기록 들은 화가가 단순한 그림쟁이가 아니라 한 폭의 그림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고통과 번민 속에 사로잡히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글은 그림의 가치를 한 단계 높여 준다.)

20세기 들면서 실험적 미술이라고 불리는 현대 미술이 등장한다. 샤갈, 마티스, 피카소 등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오늘날에도 미술은 숱한 발전과 복고와 변천을 거듭한다. 미술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이유이다.

: 곰브리치는 서문에서 미술에 대한 취향은 음식과 술과는 다르다고 밝혔다.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 미묘한 것을 발견하는 문제 뿐 아니라 진지하고 중요한 문제이므로 최소한 우리는 거장들의 미술에 대해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들은 고통을 받고 심혈을 기울였으므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 이런 기준을 마음속에 새겨 둔다면 적어도 미술작품 앞에서 형편없다는 말은 하지 않게 될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기준미달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유화가 취향에 맞고 추상화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후자를 깎아내리는 어설픈 행동을 해서도 안 된다. 곰브리치는 선사시대, 이집트 미술에서부터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과 작가들을 다뤘다.

그가 빼놓은 작가도 있을 것이고 작품은 더 많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언급한 작가와 작품에 한 번 더 눈길을 줘보자. 413개의 도판 가운데 어떤 것이 제일 마음에 드는지 골라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묘미일 것이다.

성경에 빠진 사람이라면 중세 암흑기라 해도 그것을 해석한 그림에 마음이 쏠릴 것이고 자연주의자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더 호감이 갈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림 같은 그림’에 더 끌린다면 그 또한 그의 취향이니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참고로 르누아르는 그림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 장 르누아르는 화가의 길 대신 영화로 나서 <게임의 규칙> 등을 만들었다. 그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명성을 누렸다.)

단순한 호기심과 재미로 나는 1810년경 청각을 상실한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발코니의 마하들’을 골랐다.

발코니 앞쪽의 두 명의 여자와 검은 형상의 두 명의 남자관계가 궁금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마치 코로나 19로 직격탄을 맞은 베네치아 사람들이 발코니에 모여서 희망과 근심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는 착각이 순간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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