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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7-11 17:33 (토)
332. 킹콩(1933)-미녀가 죽인 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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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킹콩(1933)-미녀가 죽인 야수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21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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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 제도의 외딴 섬. (생긴 것이 해골 모양이다. 그래서 스컬 섬.)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원주민과 괴수가 살고 있다. 괴수의 이름은 콩.

원주민들이 모여서 춤을 추고 있다. 횃불을 들고 북을 치고 창을 하늘로 올리면서 노래를 부른다. 묶인 처녀는 괴수에게 줄 신붓감이다.

일단의 사람들이 조용히 다가선다. 모선에서 내린 그들은 보트를 이용해 접근한다. 이들은 촬영차 온 칼 덴험( 로버트 암스트롱) 감독과 주인공 댄 대로우( 페이 레이) 등 제작팀이다.

원주민은 금빛 머리를 한 댄을 본 후 그녀를 사고 싶어 한다. 당연히 거부하는 제작팀. 원주민은 야음을 틈타 납치한다. 콩에게 줄 선물로 이만한 것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음날 제작팀은 없어진 댄을 찾아 나선다. ( 이 과정은 아주 일사분란하다. 잘 훈련된 군인들의 행동처럼)

여기까지가 메리언 C 쿠퍼, 어니스트 B, 쇼드 새크 공동 감독이 만든 <킹 콩>의 전반부다. (음악만 나오는 오버튜어(서곡)가 무려 4분이 넘는다. 서두르지 말고 화면을 기다리면 과연 나온다. 기다린 보람은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는다)

먼저 댄을 찾기 전에 댄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주인공으로 발탁됐는지 잠깐 보자. 댄은 과일을 훔치다 행상에게 들켰다. 그녀를 구원해 준 것이 칼 덴험 감독이다.(구하는 기준은 당연히 얼굴이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런 뉘앙스다.)

출항 시간에 쫓겨(장마가 오기 전에 섬에 도착해야 한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수배 중이던 주인공은 이렇게 낙점됐다. 그녀는 대본은커녕 무엇을 촬영하는지도 모르고 뉴욕을 떠난다. 그런데 주인공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친다.( 아, 물론 다 짜진 각본대로 움직였겠지만)

아직 콩은 등장하지 않고 있다.( 킹이라는 이름은 콩앞에 감독이 붙였다.) 제작팀은 불안하다. 콩이 원주민에게는 신령 같은 존재이며 짐승도 인간도 아니지만 절대적으로 강한 괴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댄을 찾아 나선 제작팀이 총이나 화약으로 완전무장한 것은 당연한 이치. (한편 제물로 던져진 댄은 거대한 몸집에 날카로운 이빨과 번뜩이는 눈을 가진 콩과 마주친다. 그녀는 연습한 대로, 보지 않고도 본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실제로 보고 그렇게 한다. 이 장면 매우 실감난다. 그래서 배우의 사전 리허설은 매우 중요하다.)

▲ 아지트로 여자를 데려온 콩이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 아지트로 여자를 데려온 콩이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추격전이 시작되자마자 제작팀은 집채만 한 거대한 발자국에 기겁한다. 그때 천산갑처럼 등에 뾰족한 가시를 박은 녀석이 등장한다. 석기시대의 동물이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산 채로 한 마리 데려가고 싶은 욕망이 앞선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폭약과 총을 쏘아 어렵게 제압한다.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번에는 호수가 가로 막는다. 새벽 강가에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괴수가 나타나기 좋은 환경이다. 아직은 콩이 나올 때가 아니다.( 주인공은 항상 늦게 나온다. 비록 괴수일지라도)

대신 목이 긴 공룡이 등장한다. (네스호의 괴물은 여기서 착안한 듯 하다) 공룡은 추격대의 뗏목을 집어삼키고 나무 위로 도망친 사람을 한 입에 삼킨다. ( 이 때 효과음은 놀랍도록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드디어 멀리서 콩의 모습이 보인다. 왼손에 공기돌처럼 들려 있는 댄이 허공을 향해 발버둥 친다. 인간과 콩의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지기 전에 콩은 그 예의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두 손으로 가슴을 번갈아 가면서 꽝 꽝치는.

콩과의 싸움은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거대한 도마뱀, 어마어마한 크기의 육식동물이 차례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콩은 추격대와 싸우기 전에 이들을 먼저 때려눕힌다. 상대의 공격은 페인팅으로 가볍게 피하고 강력한 원 투 스트레이트를 날리는 콩. (전성기의 마이크 타이슨을 보는 것 같다) 통나무 쓰러지듯 놈들이 쓰러진다.

그는 여자를 데리고 은신처로 간다. 앞은 절벽이고 수평선은 끝이 없다. 죽이는 전망에서 콩은 <록키>의 실베스타 스텔론이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을 올라 두 주먹을 쥐고 하늘을 질러 대듯이 양손으로 가슴을 치며 대적할 자 덤비라고 울부 짓는다.( 멋진 장면이다)

추격전이 인간의 승리로 끝난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그리고 뉴욕으로 잡혀 온 콩이 쇠사슬을 끊고 여자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데려가는 것도 알 것이다. 빌딩의 꼭대기에서 두 개의 날개가 나란히 겹쳐진 네 대의 복엽기와 사투를 벌이는 장면도 보아서 알 것이다. 콩이 기관총 세례를 받고 죽는 것도.

콩은 미녀를 벌레처럼 밟아 죽이지 않는다. 콩이 죽을 때 관객들은 그가 어서 죽기를 바라기보다 괴수에게 동점심을 보인다.

그것은 괴수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적대자에서 연민자로 바뀌는 순간이다. B급 영화가 아닌 A급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에 흐뭇한 기운이 감돌아 고해성사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국적: 미국

감독: 메리언 C 쿠퍼, 어니스트 B, 쇼드 새크

출연: 페이 레이, 로버트 암스트롱

평점:

: 서곡 다음에는 고대 아라비아의 속담이 자막으로 처리된다.

“예언자가 말하기를 잔인한 손은 얼어붙었고 그날 이후 야수는 얼이 빠진 자처럼 되었다.”

과연 속담은 맞아 떨어졌다. 야수는 사랑에 얼이 빠졌다. 사랑해서는 안될 사랑은 인간이든 괴수든 끝이 좋지 않다.

괴수가 죽을 때 사람들은 복엽기가 괴수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녀가 야수를 죽인 것이라고 해야 맞다. 감독이 말하지 않아도 미녀 때문에 괴수는 깊은 숲속 정글에서 살지 못하고 뉴욕의 마천루에서 떨어져 죽었다.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었는데 미녀를 떠날 수 없었던 괴수의 최후는 비참하기보다는 애절하다.

마천루를 성큼성큼 걸어 올라가는 장면은 지금 봐도 신기하기 그지 없다.( 암벽 등반의 일인자 김자인 선수처럼 잘도 타고 오른다)

호텔에서 자고 있는 여자가 자신이 원하던 그녀가 아닌 것을 알고 아래로 그냥 집어 던질 때 그를 비난하지 못하는 것은 그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성이 없는 야수이기 때문이다.

앤의 아름다움에 매혹돼 사랑의 포로가 된 괴수는 앤을 다치게 하느니 차라리 자기가 죽는 편을 택했다. 편대 비행을 하면서 기총사격을 하는 비행기는 그저 귀찮고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자신이 알던 세계에서 신이었던 그는 문명을 접하는 순간 그저 포토에 불과했다. 자기 세상의 왕은 그렇게 갔다.

이후 숱한 아류작들이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무장한 채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1933년에 나온 몬스터 영화의 원조인 이 영화를 능가하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사분란하고 능수능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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