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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3 19:44 (화)
330. 드라큘라(1931)-가늘고 긴 손의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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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0. 드라큘라(1931)-가늘고 긴 손의 향연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08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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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백작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뱀파이어가 됐는지 토드 브라우닝 감독은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가 영화를 볼 때 드라큘라는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를 빠는 흡혈귀로 설정돼 있다. 따라서 그 이전의 드라큘라가 누구에게 왜 죽었는지 어떻게 드라큘라가 됐는지 알 수 없다.

먼저 백작의 생김새부터 살펴보자. 드라큘라의 특징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라 외관상 인간과 흡사하다. 모양만으로는 그가 사람인지 드라큘라인지 구분해 낼 수 없다.

더구나 흑백이라서 정확한 묘사는 불가하다. 그러나 대략적인 특징은 알 수 있다. 우선 얼굴의 표정이다. 거의 없다. 무표정이면서 냉정한 쪽에 가깝다.

흔히 말하는 납빛 얼굴이다. 머리는 올백으로 뒤로 넘겼으며 포마드를 발랐는지 머리에 착 달라붙어 아무리 심한 바람이 불어도 한 올 날리지 않는다.

고정된 머리카락은 그가 냉혈한임을 증명해 주는 일종의 코드다. 화면을 정지해 놓고 가만히 노려보면 마치 살아 있는 시체를 보는 듯하다.( 드라큘라 역의 벨라 루고시가 그만큼 연기를 잘했다는 뜻이다.)

뒤돌아서면 언제 와 있는지 모르게 그 자리에 서 있는 단정한 사람. 그가 낮에는 관속에서 잠을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 활동을 하는 드라큘라 백작이 되겠다.

이때 그의 눈은 움직인다. 자신의 정체를 숨길 때는 눈알 굴리지 않고 조용히 그러나 밤에 슬그머니 방안에 들어와 손을 뻗고 상대의 목을 물려고 다가갈 때는 일렁인다. 야수의 마음으로 살아 있는 자의 목을 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도 그의 눈이 빛을 뿜고 있으면 십중팔구 먹잇감이 코앞에 있다. 그럴 때면 마치 그가 내 앞에 서서 긴 손가락을 뻗고 있는 것 같아 소름이 확 끼친다.

얼굴과 눈빛 말고는 다른 것은 다 말짱하다. 옷도 깔끔하고 나비넥타이도 무난해 영국 신사로 손색이 없다. 외모도 그렇지만 입으로 뱉는 말도 허튼 것이 하나도 없다.

절도가 있고 유모와 논리도 있다. 그런데 감정은 살아 있지 않다. 지극히 사무적이고 딱딱하다. 그런데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어떤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것은 살아 있는 인간과는 다른 죽어 있는자의 자만의 자만심 때문일 것이다.

▲ 드라큘라 백작이 가늘고 긴 손을 뻗으며 다가가고 있다. 피 냄새를 맡은 그가 정해진 대상의 목에 두 개의 이빨자국을 내기 위해서다. 불사의 인간이 되고 싶다면 그에게 빨기좋게 목을 내밀면 된다.
▲ 드라큘라 백작이 가늘고 긴 손을 뻗으며 다가가고 있다. 피 냄새를 맡은 그가 정해진 대상의 목에 두 개의 이빨자국을 내기 위해서다. 불사의 인간이 되고 싶다면 그에게 빨기좋게 목을 내밀면 된다.

드라큘라를 대략 살펴봤으니 이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멋진 4마리 말이 끄는 마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어디론가 가고 있다. 비포장도로라 마차는 심하게 흔들리고 승객 중 한 여자는 쓰러질 듯하다.

어떤 오지랖 넓은 남자가 마부에서 좀 천천히 가자고 주문하자 다른 남자가 성을 내면서 해지기 전에 여관에 도착해야 한다고 발끈한다. 마을에 도착했으나 이 남자는 내리지 않고 드라큘라 백작이 사는 성으로 가자고 한다.

손으로 성호를 그리면서 마을 사람들은 말린다. 오늘은 전야제로 악마들의 밤이니 내일 아침 해 뜨면 가라고 잡지만 남자는 기어코 말을 달린다. 그 성에는 뱀파이어가 살고 산 사람의 피를 먹는다는 말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부동산을 사고파는 사업상의 일이 무서움을 뒤로 하고 그가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가는 길은 음산하다. 늑대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박쥐들이 날아다니고 쥐들이 분주하다.

장면이 바뀌면 짙은 안개 사이로 희미하게 관이 보이고 못 빠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뚜껑이 열리고 손가락이 뱀처럼 스스로 밀려 나온다.

마침내 도착한 성의 내부는 화려하다. 거미줄 쳐진 벽과는 사뭇 다르다. 부동산 업자 렌필드(드와이트 프라이)는 그 성이 마음에 든다, 드랴큘라 역시 거래 조건이 나쁘지 않은 표정이다.

그때 계약서 종이에 손을 벤 렌필드. 손가락에 붉은 피가 배어 나오자 그것을 바라보는 드라큘라의 날카로운 눈빛. 위기일발. 순간 목에 건 십자가 목걸이가 출렁거린다. 위기 모면. 그다음부터는 조금 짜임새가 떨어진다.

여자가 나오고 미나( 헬렌 첸들러)의 남자와 남자의 아버지, 드라큘라 퇴치 교수 등이 서로 얽히고설킨다. 폭풍우가 일고 난파 직전의 배와 사투를 벌이는 선원들과 관속에서 나와 주인님을 외치는 흡혈귀, 정신병자, 파리, 거미, 박쥐 등이 어지럽다. 한마디로 중구난방이다.

여기서 드라큘라 백작은 여자 일부의 목에서 피를 빨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다음 희생자를 노린다. 교수는 드라큘라 백작의 실체를 눈치채고 제거할 방법을 연구한다. 목에 두 개의 동일한 상처를 확인하고 확신이 든 것이다.

투구꽃을 이용해 쫓아내고 십자가를 들이댄다. 하지만 미나 까지 당했다. 그에게 감염됐다. 드라큘라는 그녀의 혈관에 자신의 피를 심어 놓는데 성공했다. 앞으로 그녀는 수 백년간 드라큘라처럼 목숨을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약혼자와 아버지 그리고 교수는 드라큘라가 잠든 관을 찾아 지하 계단으로 내려간다. 대개는 박쥐의 모습이나 늑대로 변하는 드라큘라를 찾아서.

모든 것은 분명해졌다. 드라큘라는 해질녘 까지만 힘을 유지하고 살아 있는 자의 피를 먹지 못하면 끝내 부활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가 낮 동안에 잠을 자는 관을 찾아내야 한다. 안식을 취하기에 충분한 양의 흙에 묻혀 있는 관을.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마침내 드라큘라가 잠든 관을 찾아내서 그가 괴력을 발휘해 인간들을 파괴하기 전에 말뚝을 심장 깊숙이 박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드라큘라의 마지막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지르는 비명 소리만이 그가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국가: 미국

감독: 토드 브라우닝

출연: 벨라 루고시, 헨렌 첸들러, 드와이트 프라이

평점:

팁: 드라큘라 역의 벨라 루고시의 연기가 일품이다. 이후 나온 드라큘라 영화는 이 배우의 스타일을 모방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뻣뻣하게 움직이며 로봇처럼 대꾸하는 말솜씨는 드라큘라와 인간을 가르는 중요한 잣대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그가 죽는 과정은 드라큘라가 그동안 보여줬던 활약상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관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 나자빠진다. 결말이 너무 허약하다.

비록 잠자고 있는 동안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말이다.

이런 저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토드 브라우닝 감독은 공포영화의 아래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뱀파이어 영화의 원조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흰 조명 때문에 더욱 살기를 보이는 드라큘라 백작의 쏘는 듯한 눈길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다면 언젠가 당신은 그의 후예가 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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