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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5 15:41 (목)
329. 42번가(1933)-춤과 연기의 하모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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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42번가(1933)-춤과 연기의 하모니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3.0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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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영화는 <리틀 시저>로 유명세를 탄 머빈 르로이 감독이 하기로 했다. 그런데 건강상의 이유로 하차했고 로이드 베이컨이 바통을 이었다.

그는 받은 바통을 확실히 제 것으로 만들었다. <42번가>를 히트시켜 뮤지컬 영화의 원조로 만들었다.

때는 대공황 시대. ( 그때나 지금이나 경기는 대개 어렵다.) 세상은 온통 불경기로 시끄럽고 무대 감독은 파산 직전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다. ‘귀여운 숙녀’의 연출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성공해서 돈을 벌기 위한 욕심 때문이다.

그렇게 결정하자 일은 속도가 붙는다. 시간이 없다. 배우부터 불어 모아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오디션을.

젊은 여성들이, 좀 심하게 표현하면 구름떼처럼 몰려온다.

일렬로 선 후보들은 미니스커트를 들어 올리고 긴 다리를 보여주면서 낙점을 받기 위해 안간힘이다. (여기서도 가진 자의 찬스가 있다. 관계자의 특별부탁이면 무사통과다. 이만큼 찬스의 역사는 깊고도 질기다. 연극이 시작되면 표를 몇 장 달라는 부탁도 빠지지 않는다.)

주인공은 도로시(베베 데니얼스),나머지 조연들도 착착 구성완료. 이제 남은 것은 연습뿐.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은 늘 부족하다. 천지개벽이 있어도 5주 뒤에는 무대에 올려야 한다. 감당 못 할 사람은 미리 빠지라는 엄포가 삼엄하다. 뮤지컬 배우이니만큼 노래는 물론 춤에도 일가견이 있어야 한다.

▲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쇼걸들의 화려한 몸놀림이 장관이다. 스토리가 없어도 댄서의 춤장면만으로도 이 영화의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과연 뮤지컬 영화의 원조답게 짜임새까지 갖췄으니 안 보면 당신만 손해인 고전이다.
▲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쇼걸들의 화려한 몸놀림이 장관이다. 스토리가 없어도 댄서의 춤장면만으로도 이 영화의 볼거리는 차고 넘친다. 과연 뮤지컬 영화의 원조답게 짜임새까지 갖췄으니 안 보면 당신만 손해인 고전이다.

주연은 여기에 대사까지 완벽하게 섭렵해야 한다.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연극의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도로시가 경쟁자 없이 바로 주인공을 꿰찬 것은 검증된 실력이 뒷받침됐다.

여기에 플러스알파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녀에게 흑심을 품은 늙은 후원자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밀었기 때문이다.

애인 삼아 주는 조건으로 후원자는 감독에게 도로시를 추천했고 이것저것 형편을 따질 겨를이 없던 감독은 쉽게 수락했다.

연습은 맹렬히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도로시에게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옛 애인을 도로시는 못 잊는다. (남자도 마찬가지.)

그녀와 특별한 사이를 원하는 후원자가 안다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무려 7만 달러나 들여 제작비를 후원하고 그 대가로 주연 여배우와 연인 관계를 맺기로 했는데 돌연 남자가 나타나면 김 새기 마련이다.

돈이면 뭐든지 다 하는 세상에서 욕망 덩어리인 그를 위해 나머지 사람들이 부화뇌동한다. 갱에게 접근해 그 남자를 혼낸다.

도로시의 양다리는 정리됐다. 이제 무대에 올라 뉴욕 시민들의 눈과 귀를 쏙 빼놓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문제가 없으면 그게 이상하다. 그즈음 도로시는 핑계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돈이고 뭐고 다 싫다고 늙은 제작자를 보기 좋게 걷어찬다. 장난감이나 팔라고 모욕을 주면서 이별의 마침표를 확실히 찍는다. 날 거절하면 그녀의 신상에 좋지 않다는 협박도 통하지 않는다. 역겨운 놈이라고 따귀를 때린다. 그것도 한쪽이 아닌 양쪽 다. 놀라운 역전이다. 모욕을 당한 제작자는 감독에게 쇼에서 도로시를 빼라고 협박한다.)

감독은 난감하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제작자는 사실대로 말한다. 그녀가 날 쫓았다. (이 대목은 아쉽다. 노련한 제작자는 이런 식으로 이유를 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연기가 부족하다거나 노래와 춤이 형편없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세련되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도로시의 해고가 없으면 내일 밤 쇼도 없다는 것이 늙은 제작자의 명령이다. 그까짓 7만 달러 날려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 명령은 따를 필요가 없어졌다. 도로시가 발목을 삐어 저절로 낙마했기 때문이다.

즉시 대타를 골라야 하는데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영화에서는 쉽게 해결된다. 페기(루비 키일러)가 등장한다. 고작 코러스 멤버에 불과한 그녀에게 행운이 왔다.

그러나 하루 전에 주인공 역을 소화해야 한다. ( 정확히는 5시간 전. 감독은 극단 경험이 없는 신인 배우 페기를 몰아붙인다. 수년간 이런 기회 노렸는데 한번 해봐라. 겁먹지 말라고 다그친다. 대사가 시원치 않자 기습키스를 한다. 감정을 살려야 하는데 경험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며. 감정 이입된 그녀는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한다.)

그녀는 해냈다. 마치 대타로 나와 홈런을 친 로이드 베이컨 감독처럼. 무대에 올라갈 때는 무명이었던 그녀는 내려올 때는 이미 스타가 돼 있었다.

국가: 미국

감독: 로이드 베이컨

출연: 베베 대니엘즈, 루비 키일러, 조지 브렌트

평점:

: 앞서 이 영화를 뮤지컬의 원조라고 칭한 바 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오늘날 뮤지컬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 과연 교과서답다.

모범 답안을 만들었으니 후배 감독들은 참고하면 된다.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갖은 우여곡절은 한 편의 뮤지컬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댄서와 쇼걸들이 마치 정글의 개미 떼처럼 우글거린다. 제멋대로인 그들은 신병을 군인으로 만드는 조교처럼 오로지 감독의 손에 길러진다.

순진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도 영리한 감독은 많은 여배우를 완벽하게 장악해 무대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제작자를 다독이고 배우들을 재촉하고 표정, 동작 하나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갔다.

‘다리를 쭉 펴고 고개를 들고 당당히 나가라. 총 리허설은 소풍이 아니다’ 감독의 용인술에 배우들은 하나로 뭉쳤다.

현란한 몸동작으로 관객들은 혼이 쏙 빠졌다. ( 그런데 연극이 끝난 후 감독은 관객들이 하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감독이 쇼의 영광은 다 차지했다. 페기가 아니었다면 쇼 자체가 불가능했는데도. 모자를 눌러 쓰고 담배를 물고 있던 감독의 그때 그 심정은 어땠을까.)

어쨌든 다 벗은 듯한 차림으로 배우들이 긴 다리를 앞으로 쭉쭉 뻗거나 위로 들어 올릴 때 카메라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

관객들은 마치 객석의 맨 앞자리에 앉은 것처럼 그 광경을 바로 눈앞에서 생생히 지켜볼 수 있다. 특히 높은 곳에서 아래로 카메라가 향할 때는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된다. ( 주인공 자리를 넘긴 깁스에 목발을 한 도로시가 페기에게 질투 대신 용기를 주는 줄거리도 괜찮다. 도로시는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결혼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뉴욕 시민들은 대공황으로 지쳤으나 이 뮤지컬 한편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생기를 얻었다. 화려한 탭댄스, 현란한 몸놀림이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한다.

빠르고 경쾌한 음악에 맞춰 수시로 변하는 수십 개의 얼굴과 그보다 많은 다리들이 겹쳐지면서 절정으로 치닫는 화면연출 역시 그렇다.

움직이는 무대에서 ‘뉴욕 중심가의 길 하나, 타임스퀘어 가는 길. 월스트리트와도 가깝다. 멜로디가 끊이지 않는 곳, 섹시하고 대담한 요즘 아가씨, 시간 되면 함께 가자. 노동자와 엘리트가 평등한 곳. 42번가로.’

건물 모형을 들고 건물의 꼭대기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은 놀랍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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