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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지팡이로 감을 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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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지팡이로 감을 따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17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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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속에서 내가 깬 것은 할머니의 지팡이 때문이었다. 지팡이는 짧지 않고 길었는데 나는 그것으로 감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다.

늘 배가 고팠으므로 한 대여섯 개를 마구 먹었다. 그러다가 목이 말라 안마당으로 달려가 바가지로 급하게 몇 모금 물을 마셨다. 그렇게 하면 체한다는 어머니의 말은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목을 진정시키고 나는 대문 밖으로 나와 다시 지팡이를 들었다. 마당 한구석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봄이면 하얀 꽃잎이 무수히 땅에 떨어졌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마당 전체가 하얀 꽃으로 덮일 지경이었다. 꽃을 밟지 않고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 그만큼 감나무는 겁나게 컸다.

나는 떨어진 그것을 주워 먹기도 했다. 꽃이 겹쳐 흙 묻지 않은 것으로 골라 먹었는데 그 맛은 지금 기억하면 달았다. 풀잎 특유의 날 것과 씹을 때 나는 단맛은 군것질거리가 부족한 어린 시절에 좋은 먹잇감이었다.

지금도 나는 감꽃이 피면 그것을 하나씩 따먹는 습관이 있다. 군것질이나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음미하기 위해서였다. 음미라는 고상한 말을 쓰는 것은 허겁지겁 먹지 않고 천천히 때로는 눈을 감고 맛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 맛이 어디 갈 것인가. 세월은 흘렀어도 감꽃이 주는 달짝지근하면서도 비릿한 맛은 여전했다. 그 꽃을 몇 개 따서 감꽃 차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참고로 감꽃 차나 감잎차에는 비타민 C가 많이 들어있다. 그래서 겨울철에 자주 먹으면 감기 예방에 좋다.)

잠속에서 나는 감꽃을 먹지 않았다. 대롱대롱 매달린 감이 천지인데 꽃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홍시는 붉었고 지금 당장 따지 않으면 저절로 땅에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나는 떨어지는 감을 지팡이로 받아서 먹기도 했다. 감이 떨어질 때 꽃들도 우수수 떨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둘은 결코 한 자리에 올 수 없다.

꽃이 지고 한 참이 지나야 감이 달리고 달린 감은 몇 달 후에 홍시가 되는 이치를 그 나이라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먹는 것이 급했다.

꽃 대신 열매를 따는데 집중했다. 지팡이는 감 따는 장대미 끝에 달린 그물망이 없는데도 신기하게 잘도 따졌다. 나는 몇 개를 거푸 따먹다가 뒤통수에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으로 먹던 감을 뱉고 말았다. 꿈속이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누가 내 머리를 때렸는데 뒤돌아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할머니의 실체는 보지 못했다. 그렇다고 할머니가 화를 낸 것은 아니었다. 웃는 모습도 보이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무표정하게 내 뒤통수를 갈겼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고 잠을 설쳤기 때문에 누가 깨우기 전에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얼마 후에 할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모른다.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했겠지만 아무런 기억이 없다. 다만 나는 상여를 따라가던 신작로 길의 형형색색의 만장은 떠오른다.

상여를 맨 사람들과 그 뒤를 짚으로 꼰 줄을 머리에 두르고 지팡이 집고 곡을 하던 모습을. 나도 그 무리 속에 있었다. 지팡이 들고 어른들처럼 허리를 숙였다.

모시옷을 입은 식구들의 뒤를 따르면서 나는 울지 않았다. 우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당연히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였다.

그런데 나는 우는 대신 휘날리는 만장과 형형색색의 상여 구경에 한 눈을 팔았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발자국에 맞춰 부르는 상여꾼들이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흥겨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슬프지도 않았다. 그들은 그저 부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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