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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씨와 하늘에 대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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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씨와 하늘에 대한 추억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10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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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보는 하늘은 좋았다. 그래서 나는 등이 조금 시려 왔으나 그 상태를 한동안 유지했다. 추운 것은 금방 지나갈 것이다. 일어서면서 뚝, 하고 한 번 털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누구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 눈에 오랫동안 간직한 것은 마음 한구석에서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무를 것이기 때문이다.

눈을 크게 떠보기도 하고 작게 오므려 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구름은 눈 사이를 유유히 떠다녔다. 움직임이 자유자재였고 그것은 하늘을 나는 종달새와 다름없었다. 하늘은 변화무쌍했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알지 못했다. 잠시 감고 있다가 뜨면 구름의 모양은 어느새 달라져 있었다. 컸다가 작아지기도 했고 작은 것들이 뭉쳐 커다란 것이 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아예 없어져 온통 파란색 천지가 되기도 했다.

구름은 변신술의 귀재였다. 그러나 그 변화는 빠르지 않고 느렸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신체 기관 중 눈에 감사함을 느꼈다. 정말로 소중한 것은 눈이었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친구의 다리를 보면서 내 두 다리에 감사하지는 않았다. 달리지를 못해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친구가 안 돼 보이기는 했지만 멀쩡한 두 다리가 고맙지는 않았다.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있는 눈에는 그런 감정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따뜻한 호빵을 먹을 때처럼 부자 같은 마음이 들었는지. 아마도 눈이 없으면 호빵을 먹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그당시 먹는 것만큼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먹는 것과 눈이 어떻게 연관됐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외국의 어떤 사람이 눈이 멀었다. 그가 먼눈으로 일반인들도 하기 어려운 큰 성취를 이뤄냈다. 그 때문에 눈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나는 그 이야기를 선생님에게 들었을 때 한 개인의 성취감보다는 먼눈의 그가 애처로웠다.

성취가 없어도 두 눈이 살아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여건을 이겨낸 것은 그의 성취였다. 나는 위인전에서 느끼는 늘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하는 공식에 싫증을 느꼈다.

등이 더 차가워졌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자세가 싫지 않았다. 비록 등은 차지만 배가 불렀으므로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무거나 먹고 배가 부른 것이 아니었다. 단 것을 그것도 내 입에 딱 맞는 으름으로 배를 채웠을 때 느끼는 포만감은 정말 대단했다.

지금도 두 손으로 으름을 움켜쥐고 우악스럽게 먹어대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으름의 씨는 매우 검었다. 그 씨는 나중에 고스란히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그것이 나올 때 힘이 들었지만 그 힘든 것 때문에 으름 먹기를 주저하겠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마치 등이 차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과 푸른 하늘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형은 저만치 가고 있었다. 나는 그러나 서두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알고 있었다.

산은 깊고 컸으나 사람이 다닌 발자국만 따라가면 됐다. 산정까지는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똑바로 올라가면 됐다. 그래서 부르는 형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구름이 되어 가는 모양을 좀 더 지켜봤다.

그러면서 나는 신체에서 눈이 어떤 기관인지, 그것이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았다. 당장 한 발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지팡이를 집고 땅을 두드리며 동네를 아주 천천히 돌던 할머니는 전혀 앞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런 할머니의 길잡이 대신 나는 실수해서 넘어지는 할머니는 향해 웃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것은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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