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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금수회의록>(1908)- 질타 당하는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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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금수회의록>(1908)- 질타 당하는 인간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09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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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날짐승을 말한다. 수는 길짐승이니 합하면 세상의 모든 짐승이 되겠다. 사람이 아닌 짐승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의인화된 동물들이 무슨 급한 용건이 있길래 대명천지에 모여들었을까.

우선 서언을 살펴보면 대충 이해가 간다. 작가 안국선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인지 반성도 하고 수상한 세월을 한탄하기 위해서다.

봄에 꽃피고 가을에 잎 떨어지는 우주 이치는 변하지 않는데 사람의 일은 어찌 고금이 다른지 애달프고 불쌍해서 탄식하고 통곡한다.

그가 왜 이런 상태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안국선은 인문이 결딴 난 것을 가장 애통해한다. 도덕과 의리가 없고 염치와 절개도 없고 옳고 그름이 없고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으니 이는 천리에 어기어진 금수만도 못한 세상이다.

짐승만도 못한 무도 패덕한 인간 세상을 금수회의소에 모인 금수들이 공격한다니 그들이 하는 발언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금수의 발언에 앞서 작가는 사람 된 자의 책임과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하고 인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하라고 의제를 정한다.

만약 조사해서 악한 행위에 대한 회개가 없으면( 기독교 용어인 회개가 나온다. 작품을 쓸 당시 안국선은 철저한 예수교 신자였다. 하느님의 영광이니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가 숱하게 나온다. 이는 의도적인 것으로 기독교를 전파할 목적이 분명히 하다. 의도가 분명하니 매우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의 이름을 빼앗고 이등마귀라고 하느님께 상주하겠다고 못 박는다.

▲ 금수만도 못한 인간은 도처에 널려있다. 안국선은 개화기 때 이미 이런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길짐승과 날짐승을 등장시켜 인간이하의 인간들을 꾸짖고 있다. 지금 읽어도 가슴이 서늘해 지는 대목이 많은 것은 여전히 인간이 짐승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금수만도 못한 인간은 도처에 널려있다. 안국선은 개화기 때 이미 이런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길짐승과 날짐승을 등장시켜 인간이하의 인간들을 꾸짖고 있다. 지금 읽어도 가슴이 서늘해 지는 대목이 많은 것은 여전히 인간이 짐승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까마귀가 제일 먼저 연단에 오른다. 까마귀 하면 반포지효가 떠오른다. 역시나 까마귀는 그것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효도는 일백 행실의 근원이며 천하를 다스리는데 사람들이 불효한다는 것.

까마귀만도 못한 족속이 바로 인간이다. (뜨끔한 사람 많을 것이다.) 다음으로 등장한 여우는 호가호위를 말한다. 속은 호랑이가 잘못이지 속인 여우는 잘못이 없으니 간사하다거나 요망한 것은 사람이니 여우와 명칭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 외세를 빌려 벼슬을 하고 대포와 총칼로 남의 나라를 위협해 속국이나 보호국을 만드는 것은 불한당이 칼로 남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과 같다고 엄포를 놓는다.

개구리 하면 정와어해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그것을 의식한 개구리는 출입이라고는 미나리 논밖에 가본 일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사람들은 외국 형편도 알지 못하고 천하대세도 살피지 못하고 공연히 아는체하고 나라는 다 망해 썩는데 갑갑한 말만 한다고 호통을 친다.

사람이 벼슬자리에 오르면 붕당을 세워 권리 다툼을 하고 뇌물 받기와 나랏돈 도적질하기, 인민 고혈 빨기나 하니 벼슬하는 관인들은 거반 다 감옥감이라는 것. (놀라운 정세판단이다.)

벌은 구밀복검을 말한다. 사람보다 낫다고 미리 감치 언설을 푼 벌은 그 이유로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밥이 되고 남의 재산, 토지를 빼앗고 남의 나라 위협하고 흉측하고 악독한 것이 사람이라는 것.

입으로 꿀같이 말을 달게 하나 배에는 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이 사람이니 사람 중에 사람스러운 것이 몇이나 있느냐고 호통을 친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이 대목에서 물개박수.)

다음은 게가 등장한다. 게는 포박자라는 사람을 먼저 꾸짖는다. 게가 창자가 없다는 말에 대한 반박인데 그렇다면 사람 중에 창자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반문한다.

의복을 입어 겉은 번드르르 하지만 그 속은 똥밖에 없고 좋은 칼로 창자를 갈라보면 구린내만 물씬 풍긴다는 것. 신문에서 나무라고 사회에서 시비하고 백성이 원망하고 외국 사람이 욕해도 모른 체하니 창자 없는 정부라고 성토한다.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데 사람은 부당한 데로 들어가니 무장공자는 자신들이 아니고 사람 아니냐고 따진다.

파리는 영영지극으로 호랑이는 가정맹어호로 원앙은 쌍거쌍래로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한다.

읽다 보니 웃음이 나오다가도 옳은 말이니 대꾸할 거리가 없어 부끄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사방천지에 부지기수로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귀하거나 신령스러운게 아니고 제일 어리석고 제일 더럽고 제일 괴악한 것이 인간이다. 회장은 이런 말로 못을 박고 폐회를 선언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수 씨는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시니 악한 일을 아무리 많이 해도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 길이 있다는 것.

이것으로 사람에 대한 기대를 해도 된다는 것. 과연 그럴까. 결론에 대한 수긍은 독자 개인에게 맡길 수밖에.

: 안국선은 사람을 금수만도 못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 모르고( 불효를 풍자)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도 모르고(사대주의와 정치 파쟁 풍자) 여우보다도 간사하고( 외세를 빌어 동포를 핍박하고 남의 나라를 뺏는 일제를 풍자) 호랑이보다도 포학하고( 탐관오리와 흉포한 인간을 풍자)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않고(표리부동한 인간을 풍자) 파리 같이 동포를 사랑할 줄도 모르고(이익만 추구하는 비정한 인간을 풍자) 창자 없는 일은 게보다도 심하고( 사람의 부도덕을 풍자) 부정한 일은 원앙새가 부끄럽다고 (부부간의 윤리를 풍자) 인간을 질타하고 있다.

짐승의 연설에 사람을 위한 변명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데 이는 짐승이 도리어 사람보다 위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금수회의록은 이처럼 짐승을 통한 개화기 시대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있다. 미학적 완성도를 따지기보다는 당시 시대상을 거침없이 보여줬다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단편소설의 초기적 (신소설) 소설 이상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기도 안성에서 1878년 태어난 안국선은 일본 유학 후 귀국해 정치학, 경제학을 강의했으며 이상재 등과 교류하면서 독립에도 관여했다.

일제에 적발돼 참형을 선도 받고 진도로 유배됐으며 그곳에서 부인 이씨와 결혼했다. 감옥에서 선교사 아펜젤러를 만나 사상적으로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 깊이 감회됐다.

이 작품 곳곳에 예수의 사상이 언급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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