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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판 항생제 개발자, 게르하르트 도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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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판 항생제 개발자, 게르하르트 도마크
  • 의약뉴스 이한기 기자
  • 승인 2020.02.08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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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5년 독일 브란덴부르크 라고우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병리학자 겸 미생물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세균 감염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최초의 항생제이자 최초로 상용화된 항생제인 설파제 프론토실(Prontosil)의 항균효과를 발견했다.(사진출처:노벨상위원회-https://www.nobelprize.org/)
▲ 1895년 독일 브란덴부르크 라고우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병리학자 겸 미생물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세균 감염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최초의 항생제이자 최초로 상용화된 항생제인 설파제 프론토실(Prontosil)의 항균효과를 발견했다.(사진출처:노벨상위원회-https://www.nobelprize.org/)

독일 병리학자 겸 미생물학자인 게르하르트 도마크는 세균 감염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최초의 항생제이자 최초로 상용화된 항생제인 설파제 프론토실(Prontosil)의 항균효과를 발견했다. 그는 이 업적으로 1939년에 노벨 생리ㆍ의학상 수상자가 됐다.

도마크는 1895년에 독일 브란덴부르크 라고우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독일 킬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는데 1914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공부를 중단했다가 종전 이후 공부를 재개해 1921년에 의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독일 그라이프스발트대학교에서 감염병을 연구했으며 병리해부학 강사가 됐다.

도마크는 1925년부터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나중에 이곳에서 교수가 됐다. 그는 1927년에 바이엘을 포함해 염료 및 기타 정밀화학 제품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로 구성된 독일 피르벤 이익공동체로 영입됐으며 실험병리학·세균학 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됐다. 피르벤 이익공동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해체됐으며 도마크가 일했던 부서는 바이엘에 포함됐다.

이곳에서 도마크는 세균학자 폴 에를리히의 이론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염료들을 다양한 감염에 시험했다. 이 염료들은 화학자 요세프 클라러(Josef Klarer)와 프리츠 미츠시(Fritz Mietzsch)에 의해 합성됐다.

도마크는 1932년에 쥐에 대한 동물실험을 통해 붉은 염료 프론토실이 연쇄상구균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연쇄상구균 감염을 앓는 딸에게 프론토실을 투여했으며 이후 그녀는 완전히 회복했다. 프론토실에 임상 결과는 1935년에 처음 발표됐으며, 프로토실은 1908년에 합성된 설파닐아미드의 파생물로 밝혀졌다.

도마크는 1939년에 프론토실의 항균효과 발견을 통해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로 발표됐다. 하지만 독일 나치 정권의 강압으로 인해 게슈타포에 체포돼 수상을 거부해야만 했다. 도마크는 1947년에 노벨상 메달을 받을 수 있었지만 상금을 받지는 못했다.

도마크의 발견 이후 많은 국가들에서 다양한 설파닐아미드 파생물이 만들어졌다. 다만 설파제는 1940년대 중반 페니실린의 등장과 다른 효과적인 항생제의 개발로 인해 연구자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졌다. 도마크는 설파제에 대한 연구 외에도 결핵과 암에 대한 화학요법에 대해 활발히 연구했다.

도마크는 1964년에 심장질환으로 인해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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