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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지하촌>(1936)-칠성이와 큰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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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지하촌>(1936)-칠성이와 큰년이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2.02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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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마무리되는 작품이 있다. 그런 작품은 실제로 주인공이 행복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그러기를 바라는 독자의 마음을 작가가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

일부러 끝을 밝게 그려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라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현실과는 정반대로 작품을 마치면 왠지 허탈한 기분, 속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부러 비극을 꾸며낼 필요는 없으나 그렇다고 왜곡할 필요도 없다.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강경애의 <지하촌>은 화풍으로 치면 세밀화다. 작은 붓으로 솜털을 그려낸 것이다.

읽는 내내 가난해도 어찌 이처럼 가난할 수 있으랴, 한탄이 절로 난다. 아프리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웃 나라도 아닌 바로 우리나라 일이니 쓴맛을 제대로 보고 난 후의 기분은 말이 아니다.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건너 뛰었다.)

가난에도 종류가 있다면 이런 가난은 맨 밑바닥이다. ‘설마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은 가정이 아니라 실제상황이다. 이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비한 재난 예비훈련이 아니다. 실제 공습 상황이다.

주인공은 칠성이니 칠성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자. 이름만 봐도 왠지 ‘칠성스러운’ 칠성이는 온전한 몸이 아니다.( 칠성이는 성이 없다. 아버지는 작품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도 천한 신분인 모양이다.)

걷는 것은 물론 손을 제대로 쓸 수 없다. 그러니 일도 할 수 없고 오직 할 수 있는 것은 동냥뿐이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데 찢어지게 가난한 동네에서 무슨 동냥이 가능할까.

그러나 숫자가 적어서 그렇지 부자는 어느 동네나 있기 마련이다. 과자 부스러기, 사탕 하나 얻기 위해 칠성이는 오늘도 다 떨어진 동냥 주머니를 달고 거리로 나선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동냥아치( 나 어릴 때도 동냥아치는 있었다. 그 동냥아치를 생각하면서 칠성이를 떠올렸다.)를 개구쟁이들이 그냥 놔 둘리 없다.

가로막고 쇠똥으로 얼굴에 똥칠한다. 그래도 달릴 힘이 없고 잡아챌 손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칠성이는 고대로 당하고 만다. 더구나 쇠똥은 말라 비틀어진 것이 아니라 방금 싼 것이라 냄새도 냄새지만 옷 착 달라붙는다.

▲ 손발이 성치 않은 칠성이는 눈이 먼 옆집 큰년이를 사랑한다. 동생들에게는 안줘도 그녀가 원한다면 동냥한 과자나 사탕은 물론 옷감까지도 선뜻 줄 용의가 있다. 식민지 시대 지독히도 가난했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강경애는 가슴 쓰리도록 세밀하게 그려냈다.
▲ 손발이 성치 않은 칠성이는 눈이 먼 옆집 큰년이를 사랑한다. 동생들에게는 안줘도 그녀가 원한다면 동냥한 과자나 사탕은 물론 옷감까지도 선뜻 줄 용의가 있다. 식민지 시대 지독히도 가난했던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강경애는 가슴 쓰리도록 세밀하게 그려냈다.

그 심정 칠성이만 알 것이다. (괜히 이해 한 척하기 없기) 그런 기분으로 동냥을 마친 칠성이가 돌아온다.

칠성이 동생 칠운이가 여동생 영애( 영애라는 이름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얼마나 세련됐나. 칠성이와는 딴판이라 무슨 좋은 징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볼 수 있다. )를 돌본다.

군침을 흘리는 칠운이와 과자 달라고, 사탕 달라고 손을 뻗어 보는 영애. 그러나 칠성이는 전혀 그럴 기미가 없다.

옆집 큰년이라면 모를까.( 큰년이 이름 또한 기억할 만하다.) 큰년이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니 그러지 않더라도 큰년이에게는 동냥한 것 전부를 다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그런데 칠성이에게 큰년이는 마음이 있을까. 큰년이가 앞을 보지 못한다 해도 칠성이에게는 과분해 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칠성이가 사탕도 주고 그녀에게 줄 옷감도 마련했지만 내게 시집 오련? 하는 칠성이의 질문에 그녀의 대답은 내가 아니, 아버지가 알지, 라고 간단하게 무시한다.( 이 대답은 참으로 현명하다. 칠성이의 성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도 핑계로 아버지를 등장시킨 큰 년이는 매우 현명한 여자로 보인다.)

이쯤 해서 가난 이야기를 해보자. 서두에서 길게 이야기한 가난이 어느 정도인지.

일단 칠운이나 영애는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하다. 먹을 것이라고는 밥알 몇 알에 거칠게 간 도토리가 전부다. 도토리를 먹으면 바로 토해 내는데 노란 국물 같은 것이 몇 방울 올라올 뿐이다.

속이 비었으니 나올 것도 없다. 나올 것이 없어도 똥을 싸야 하는데 똥은 피똥이다. 파리는 얼마나 많은지 왕파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파리는 영애의 입속을 부지런히 들락 날락 한다.

먹지 못해서 생기는 피부병은 몸은 물론 머리도 온통 종기투성이다. 그곳에서는 진물이 쉬지 않고 나온다.

진물에는 쥐가죽( 여기서 쥐는 고양이의 밥인 그 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매개체인 박쥐는 아니다.) 이 제격이라 영애는 쥐가죽을 쓰고 있다. 가려워서 그 어린 것이 쥐가죽을 두른 머리를 긁고 있다. 목불인견이다. 불타는 지옥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내년이면 풍년이 들어 흰쌀밥을 배터지게 먹을 가망은 시쳇말로 1도 없다. 그러니 희망이 없는 죽은 세상이다. 더구나 비까지 와서 큰년이네 밭은 물론 동네 밭을 다 쓸고 갔다. 비참에 비참을 더하는 꼴이다.

어머니 입에서 이런 삶 살아서 무엇하나, 하는 한탄이 나올만 하다.

그래서 그런지 영애는 살지 못하고 죽었다. (쥐가죽을 영애의 머리에서 벗기자 쌀벌레 같은 벌레들이 머리를 파먹고 있었다. 머리는 온통 피투성이다. 영애라는 예쁜 이름도 강경애 작가 앞에서는 무력하다. )

여기서 기쁜 소식 하나 기다려 봄 직하다. 비록 몸은 부실하고 가진 것은 없어도 사랑 하나는 있는 칠성이게 큰년이가 시집 왔을까 하는 그런 소식.

그러나 큰년이는 선을 본 다른 남자에게 시집갔다. 비가 쓸고 간 나쁜 소식이 있기 하루 전에. 자신을 사랑하는 칠성이 대신 얼굴도 못 본 남자에게 시집간 큰년이를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면 이 작품에서 행복한 사람은 오직 큰년이 뿐이다.)

작가 강경애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결말을 냈을까.

흐릿한 흑백사진 속의 작가 강경애 얼굴을 멀건이처럼 바라본다. 이런 대단한 비극을 쓴 작가는 그러나 말이 없고 표정도 없고 그저 먼 산 불구경하듯 평온한 모습이다.

: 나 어릴 적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전해져 왔다. 그런 이야기는 하도 전설 같아서 중년이 된 지금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일하다 밭에서 애를 낳고 그 애를 그대로 둔 채로 마저 일을 끝내고 저녁때 데려왔다는 이웃 동네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전하는 할머니는 하도 표정이 진지해 도저히 믿지 않을 수 없어 거짓말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런 내 믿음을 강경애가 한 번 더 확인시켜 줬다.

큰년이 어머니가 반죽음 상태로 누군가에 업혀 오는 모습이 그려지고 이어서 어머니가 큰년이 어머니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을 칠성이가 듣는 대목에서 나는 내가 거짓말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막 낳은 아기가 나무 그늘에서 울지 않고 새근새근 자다가 어머니 품에 안겨 집으로 돌아오는 상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 그래서 기뻤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아기는 상상 속의 아기가 아니었다.

칠성이 모는 살지도 못할 것이 왜 태어났느냐고 혀를 끌끌 찼다. 이어서 나오는 표현을 보면 죽은 아기의 눈과 귀에는 흙이 잔뜩 들어갔다. 살기 위해 밭고랑을 얼마나 기어 다녔을까, 그 아기를 생각하면 죽기를 잘했다, 는 말이 악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문 한 탓이어서 강경애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일제 시대 여성 작가가 있었고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이 일하다 낳은 아기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이다.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았다. 오늘날 강경애 작가는 새롭게 주목받아 마땅하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강경애는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했다. <어머니와 딸>, <제일선>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1923년 그의 재질을 높이 평가한 국보 별명을 갖고 있는 양주동과 동거했다.( 그러나 곧 헤어졌다.)

가난은 늘 그녀를 따라 다녔다. 병도 있었고 중앙 문단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용정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고 간도와 장연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는 식민지 조선의 빈궁 문제를 피하지 않았다. 최하층의 극한적 가난에 처한 인간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대로 그렸다. 그가 1930년대 한국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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