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9 06:01 (금)
깊은 산 낭떠러지를 찾아 간 것은 으름 때문이었다
상태바
깊은 산 낭떠러지를 찾아 간 것은 으름 때문이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1.23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쓰레기는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다. 쓰고 남은 것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것은 지구가 감당할 수준을 벗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정된 공간에서 무한정한 저장공간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은 한적한 시골이 쓰레기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몸살이라는 표현은 아주 점잖은 표현이고 아예 중병에 걸려서 죽기 일보 직전이다.

그곳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다. 그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은 계속해서 쓰레기가 쌓일 것이다. 덤프트럭의 행렬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아서 좋을 일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골에서 살지 않고 도시에서 살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도시에는 쓰레기 장이 생기지 않을 것이기에.

아무리 쓰레기가 넘쳐도 아파트를 헐고 그 자리에 쓰레기장을 세울 수는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인적이 드문 시골이 쓰레기장의 최적지로 선택됐다.

한적한 곳일수록 입지조건으로는 제격이다. 우리 고향도 쓰레기장이 장악했다.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땅은 거대한 쓰레기 산으로 뒤덮였다. 깊은 골짜기는 메꿔졌다.

나는 그 골짜기를 기억한다. 어릴 적에 그곳은 아주 깊고 깊은 낭떠러지가 있어 누군가 떨어져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앞 동네 누가 나무하다 떨어졌다거나 나물 캐다가 그렇게 됐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래서 그곳을 생각하면 언제나 죽음이 먼저 떠올랐다. 반면에 아주 신비롭다는 이중 감정도 있었다. 형과 함께 그곳에 가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당시 반항기에 접어들었던 형은 3살 터울의 나에게 으름을 따먹으로 가자고 했다. 때는 아직 겨울이 오기 전이었다. 붉은색으로 갈아입은 산은 먹을게 있었다.

항상 군것질에 목말랐던 나는 언젠가 먹어 본 적이 있는 으름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했다. 산에는 ‘호랭이’보다 작은 ‘개호지’가 산다고 부모님은 절대 산에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는 소문처럼 개호지에 물려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경고는 으름의 맛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위험보다는 맛에 더 혹했다. 형이 나를 끌고 산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또래들과 어울렸던 곳이다.

나무꾼들이 낸 길을 따라 소로로 접어들었고 언덕을 올랐고 능선을 지나 작은 산의 정상에 올랐다. 여러 번 와 본 곳이어서 눈에 익었다. 내려다보니 집들이 몇 가구씩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아주 작았다.

어떤 집에서는 이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죽을 끊이는 모양이었다. 한눈을 판 사이 형이 보이지 않았다. 앞쪽에서 나무가 움직였다.

나는 벌떡 일어나 뒤돌아서 급히 가는 형을 따라갔다. 저 멀리에 더 큰 산이 보였고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었다. 길의 한쪽은 바다로 향해 있었다.

그 길은 가팔랐다. 바다는 비어 있었다. 나무 사이로 드러난 갯벌이 보였다. 해는 중천을 지나 서쪽으로 약간 기울었고 그 해를 받아 갯골에 비치는 잔물결이 거울처럼 산 쪽으로 빛을 반사했다.

나는 나무들을 헤치고 형을 놓칠세라 바짝 긴장하면서 따라붙었다. 잘못 잡아 가시나무에 찔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파할 새가 없었다. 형은 무엇에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으름 따 먹으러 가자는 말 이후 아무 말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물어보려다 그만두었다.

하지만 더는 말하지 않을 수 없어 그곳이 멀었는지, 으름은 어디 있는지 큰 소리로 떠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잠깐 뒤돌아본 형은 화난 얼굴이었다. 하지만 곧 누그러뜨렸다.

그러다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돌에 걸터앉았다. 이마에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바람은 세지 않았으나 움직임을 멈추자 춥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름 실껏 먹게 해줄게.

그 대신 엄마한테는 비밀이다. 형이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