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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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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1934)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20.01.12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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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보는 작가인 박태원의 분신...식민지 인텔리 지식인의 비애와 좌절을 그림
서울 중심을 걸으며 일상을 담담히 기록...이상, 정지용,김기림 등 상상하는 재미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광화문 일대는 그러기에 맞춤한 장소다. 미세먼지가 없거나 차량이 뜸한 주말 이른 아침에 산책 겸 일대를 한번 둘러 보면 서울에 대한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언제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스쳐 가는 풍경이 아니라 한발 한 발 내 힘으로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나아갈 때 느끼는 경치가 같을 수가 없다. 눈에 들어오는 시선이 사뭇 달라 처음 오는 도시처럼 반갑다.

광화문에서 시작했다고 치면 우선 서울역 쪽으로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을 지나 시청 쪽으로 몸을 돌리면 서울시의회가 나오고 여기가 유럽인지 잠시 착각에 빠질 만한 황갈색의 멋진 성공회 건물을 만나고 덕수궁 돌담을 거친다.

시청광장을 뒤돌아보면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에 멈췄던 걸음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대문에서 화염에 무너진 그 날의 슬픔을 기억하고 문 사이로 보이는 시장터와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우후죽순처럼 치솟는 마천루와 서울역사 건물. 그 좁은 골목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1930년대 빈민의 터, 그 아픈 흔적이 남아 있다.

욕을 하면서도 일제가 지어놓은 서울역 건물의 아름다운 외관에 잠시 경탄하면서 역사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대포알처럼 귓전을 때리는, 광장을 점령한 군복 입은 어르신들의 시국 성토. 아니 들은 척하면서 무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선다.

여기는 딴 세상이다. 온갖 전시회가 열린다. 그곳의 어느 한구석. -여기서부터는 상상 -> 다방에는 담배연기 자욱하다. 이미 온 사람과 어디론가 가려고 준비하는 사람들이 어수선하다.

나는 눈을 두리번거리며 날개 꺾여 갈 곳 없는 이상을 찾는다. 줄무늬 넥타이를 멋지게 맨 그가 박태원을 만나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 호소한다.

그의 충혈된 눈빛이 철망에 갇혀 길 잃은 전방의 노루처럼 형형하다. 태원은 질문에 대답 대신 정지용 선생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이태준 선생은 아직 안 왔나? 하고 딴청을 부린다.

문학과 인생이 대합실 바닥에서 울려 퍼질 즈음 나는 식민지 민족을 설움을 이야기하던 독립투사들의 울분을 뒤로하고 문을 나설 채비를 한다.

그때 부지런한 김기림이 오늘은 웬일인지 지각을 해서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서다 박태원과 눈이 마주치자 손짓으로 미안함을 표시한다. 그들의 대화가 궁금했으나 햇볕이 그리운 나는 밖으로 나온다.

남산 언덕을 지나 을지로 쪽으로 내려온 나는 다시 종로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전차를 타고 청량리로 나가 숲의 신선한 공기를 쐬고 싶다.

그러나 나는 그러기를 포기하고 다시 광화문 쪽으로 방향을 튼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은 쉬어도 좋은 휴일이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그리고 물끄러미 지나는 행인들을 구경한다. 딱히 갈 곳이 없는 나는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그때 누군가 너의 걷기 여행은 여기서 끝내고 박태원의 하루를 적어야 한다고 귓속말로 알려준다. 정신을 차린 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박태원이 이 작품을 쓴 것은 그가 늘 걸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걷기 않았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전차를 이용한 것은 언젠가 만났던 여자에 대한 감상을 적기 위한 것일 뿐. 그는 언제나 길 위에서 걷는 사람이었다. 잭 케루악처럼.

▲ 23살 이상은 21살 연인 기생 금홍을 제비다방 마담으로 앉혔다. 건축에도 소실이 있었던 그는 다방을 직접설계했다. 그곳에는 문우인 박태원은 물론 정지용 등이 무시로 드나 들었고 화가인 구본웅도 단골이었다. 그러나 운영은 시원치 않아 개업 2년 만인 1935년 문을 닫았다. ( 작품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구보가 들른 다방이 제비다방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 23살 이상은 21살 연인 기생 금홍을 제비다방 마담으로 앉혔다. 건축에도 소실이 있었던 그는 다방을 직접설계했다. 그곳에는 문우인 박태원은 물론 정지용 등이 무시로 드나 들었고 화가인 구본웅도 단골이었다. 그러나 운영은 시원치 않아 개업 2년 만인 1935년 문을 닫았다. ( 작품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구보가 들른 다방이 제비다방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길을 걷기 위해 방을 나서면서 그는 예의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는다.

“일찌거니 들어오거라.”

도대체 재는 어디를 매일 그렇게 쏴 다니나. 바느질하던 어머니는 복장이 터져서 한 마디 더 보탰다.

여기서 잠깐. 밖으로 나가는 아들의 행색과 신상 일부를 털어보자. 겉으로 드러나는 차림이 전부는 아니어도 그의 일부를 보여 줄 것이기에.

26살 나이답지 않게 기둥 못에 걸린 단장(지팡이)을 떼어 들었다. ( 아마 당시는 그것이 멋을 내는 도구였던 듯싶다. 다른 손에는 공책을 들었다.)

구두를 신었다.( 아주 가난한 신세는 아니다.)

책을 읽는다.( 동경에서 공부까지 하고 왔다. 인텔리다.)

그 나이에 직업이 없다.( 굳이 말한다면 원고지에 글을 써서 고료를 받는 소설가 그러나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룸펜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 더 어울린다.)

아내도 없다.( 여자를 만나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다. 이건 내 나름의 표현이고 그가 왜 장가를 들려고 하지 않는지 따져 묻는 어머니에게 한 말은 ‘돈 한 푼 없이 어떻게 기집을 먹여 살리느냐?’ 이다. )

그러니 몸에서는 사내 냄새만 날 뿐이다.( 당연하다. 아내(여자)가 없으니 기름과 분 냄새가 묻었을 리 없다.)

생김새에 대한 표현은 없다.(호젓한 얼굴이라는 표현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미추나 몸매를 확인할 수는 없다.)

가족관계는 어머니와 형이 있다.( 형수라는 표현이 나온다.)

건강 상태는? ( 병원과 간호사와 약 이름 ‘삼비스이’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혹은 격렬한 두통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신경 쇠약증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시력도 나쁘다. 그래서 24도짜리 안경을 쓰고 있다. 듣는 귀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지금으로 치면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

박태원 아니 소설가 구보의 신상털이는 이 정도에서 끝내자. 그것보다는 그가 나서서 하는 일이 더 궁금하지 않는가. 그 호기심은 곧 풀린다.

친절하게도 그가 어딘가로 가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두 촬영되기 때문이다.( 촬영이라고 한 것은 묘사가 그런 수준이기 때문이다.)

집을 나선 구보는 일단 천변길( 지금의 청계천)을 따라 광교로 향한다. 다리 밑까지 온 그는 어디로 갈까 생각하기 위해 잠시 멈춰선다.

집을 나서서 여기까지 왔으나 목적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정처 없이 떠나온 것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인생은 나그네 길로 시작하는 최희준이 1965년에 발표한 ‘하숙생’의 노래를 듣느라고 잠시 쓰기를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내친김에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까지 들었다. 제목과 가사에 영어가 나오는 것은 그가 미 8군에서 가수 생활을 한 때문인가, 생각해 본다. 그는 2018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그러나 무작정 서 있을 수만은 없다. 우두커니 서 있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종로 네거리로 들어선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어떤 시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공교롭게도 왼발이 그쪽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한 다음에는 화신상회로 들어가서 아이를 안고 있는 행복한 부부를 만난다.

구보는 나의 행복은 어디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동대문행 전차가 왔고 또 이유 없이 차에 오르고 거기서 혼자 남은 자의 외로움과 애달픔을 느낀다.

한때 고독을 사랑했던 그는 지금은 고독과 자연이 있는 장충단이나 청량리 혹은 성북동으로 가지 않는다. 더 고독할 것이기에. 경성 운동장에서는 축구도 야구도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언젠가 한 번 만난 적 있었던 그 색시가 차에 오른다. 그는 아는 체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녀가 혹은 자신이 서로에 어떤 느낌이 있는지 혼자 속으로 헤아리는데 여자는 양산을 쓰고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다.

아차 하고 후회했으나 이미 늦었다. 17살 때 벗의 누이에게 연정을 품었으나 대책을 강구하기도 떠난 그녀처럼. 구보가 그토록 찾던 행복은 여자와 함께 영영 떠난 것인가.

한강교로 방향 판을 바꿔 단 전차는 어느새 현재의 을지로 6가 부근인 훈련원을 지났다. 조선은행 앞에서 내린( 역시 이유없이)구보는 다방에 들러 홍차를 마신다.

몇 시나 됐을까. 십팔금 팔뚝시계는 커녕 회중시계 하나 없는 그로서는 그것이 궁금하다.

구보는 다방의 등의자에 기대고 담배를 태우고 레코드를 들으면서 거의 다 젊은이들인 손님들이 활기보다는 광선이 부족하고 우울과 고달픔, 피로에 지쳐있는 인생을 본다. 구보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을 터.

얼마의 돈이 있어야 완전한 행복에 이를까, 자기의 최대의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떠나온 동경을 그리워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벗을 만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히고 다시 거리를 걷는데 한 낮의 여름 태양은 그의 신경쇠약을 더욱 부채질한다.

남대문에는 서너 명의 지게꾼이 맥없이 앉아 있고 활력을 기대했던 서울역 대합실에서는 피하고 싶은 고독과 마주선다. (추레하나)황금을 가진 사내와 (골은 비었으나)예쁜 여자.

대합실을 나온 구보는 단장으로 구두코를 딱하고 한 번 친 후 다시 포도로 나선다. 그가 서야 할 곳은 바로 이곳 거리라는 듯이.

그러다 다시 다방에 들어가고 강아지를 보고 영어로 ‘캄 히어’라고 불러보고 마침내 시인이며 사회부 기자인 벗을 만나서 먹기 위해 부지런히 육체를 놀려야 하는 현실을 직시한다.

홍염의 작가 최서혜, 앙드레 지드, 율리시즈를 논하다 짐승의 소리에 가까운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구보의 오늘 하루는 뭐, 이런 식이다. 조선호텔, 광화문 언저리에서 한 개의 가여운 사내, 자신의 분신을 마음에 안고서. 그런 구보가의 인생이 나와 닮지는 않았을까, 각자 생각해 보자.

: 구보와 같은 행동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행해지고 있다. 딱히 갈 곳이 없어 사방을 돌아다니다 지치면 다방에 들르고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와 허접한 이야기를 나누고 여자를 만나고 헤어지고 전차를 타고 목적지 없이 헤매다 아무 데서나 내린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고독과 갈증과 해소되지 못한 갈망 때문이다. 돈과 행복과 시간과 직업과 자아와 가치관은 언제나 방황하는 인간을 만든다.

박태원은 직업이 소설가인 자신의 분신인 구보를 통해 일제 강점기 시대, 한 젊은 엘리트의 방황과 좌절과 외로움을 그려내고 있다.

서울 거리를 정처 없이 나 홀로 걸으며 만나고 부딪치고 보고 듣는 일상을 담담히 그려내는데 지금 읽어 보아도 구보의 애타는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를 구박하고 윽박지르기보다는 26살 유학파 지식인의 갈 곳 없는 방황이 가슴을 울린다.

그는 무엇을 하기 위해 용솟음치기보다는 그저 좌절하고 쓰러지고 주저앉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는가. 생산하기보다는 소모하는 인생. 새벽 두 시 종로 네거리에서 이제는 거리가 아닌 집으로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이렇게 중얼 거린다.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결혼도 해야지, 그리고 고독을 주절대기보다는 참말로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해 창작에 전념해야지. 비가 오는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 구보는 내일부터는 내 집에 있겠다고 다짐한다. ( 그 다짐은 제대로 실현됐다. 이후 구보는 좋은 소설을 여러 편 남겼다.)

1909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태원은 이광수에게 문학적 감명을 받았으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현실 인식에 눈을 떠 작품에 그것을 반영했다.

이상, 김유정, 김기림, 정지용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활발히 했으며 이 시기 문학적으로 더욱 성숙한 길을 걸었다.

<천변풍경> 등 6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한국전쟁 와중에 월북했다.

한편 구보가 들른 다방은 제비다방이 아니었을까. 제비다방은 23세의 청년 이상이 21살의 기생 금홍을 만나 사랑을 했던 곳이다.

이상은 금홍을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운영했던 제비다방의 마담으로 앉혔다. 이곳에는 박태원, 김유정 등의 소설가와 화가 구본웅이 단골로 찾아 왔다.

그러나 장사는 신통치 않아서 개업한 지 2년 만인 1935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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