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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독 짓는 늙은이〉(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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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독 짓는 늙은이〉(1950)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2.31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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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이 유행하기 전에는 독이 새지 않는 무엇을 담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물론 지금도 장을 담을 때면 그렇다.

마실 물이나 추수한 콩 등은 박을 사용하기도 했는데 박은 너무 약해서 쉽게 부서졌다. 그래서 박이 깨졌을 때는 아쉽기는 해도 그렇게까지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독은 달랐다. 독이 깨졌을 때는 어린 마음에도 무언가 큰 것이 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고 가슴 한쪽이 금이 가는 듯했다.

한 번은 요강만 한 작고 귀여운 독을 옮기다가 그만 그것을 땅에 떨어트려 깨트렸는데 그때의 그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혼나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무언가 소중한 것과 이별 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서운하고 애통했다. 그 무렵은 아마도 내가 막 일곱 살 된 당손이 나이 때쯤이었을 것이다.

내 개인적 넋두리가 송 영감보다 먼저 나온 것은 작은 독 하나 깨진 것이 그 정도인데 여기저기서 '뚜왕, 뚜왕' 하고 터져 나오는 독 소리를 듣는 송 영감의 심정은 어느 정도 일지 가늠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독을 사는 사람이 아니고 독을 짓는 사람이니 독은 자식은 아니어도 그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것임에는 틀림없다고 봐야 한다.

가마의 독이 깨지는 것은 솜씨 없는 독 쟁이의 결과물이다. 불의 세기 조절에 실패했거나 독 안에 산소공급이 제대로 안 됐거나 정성이 부족했거나 뭐 다른 이런저런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젊을 적 송 영감은 아마도 근방에서는 독 짓는 사람 중 손꼽는 독쟁이였을 것이다. 이런 추측은 그가 독을 짓는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는지 알기 때문이다.

장인이 자기 일에 정성을 기울이면 그것은 물건이 아닌 작품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통 시원치 않다.

늙기도 늙었거니와 정신 줄을 아예 놓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가 어린 당손을 남겨 두고 아들뻘 되는 조수 놈하고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는가. (있으니 작품에 나왔겠지만 부인은 용서받지 못한 죄를 저질렀다. 송영감이 첫머리에 “이년! 이 백 번 쥑에두 쌀 년!” 이라고 걸한 욕지기를 하는 것도 봐도 그렇다. 송영감이 아주 늙은이로 나오고 당손이가 7살인 것을 보면 영감과 부인은 나이 차가 많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작품의 어느 곳에서도 부인의 나이나 용모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

괘씸한 마음에 송 영감은 그렇지 않아도 병든 몸이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 지고 있다. 곧 죽을 목숨이다. 설상가상으로 독마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보지 않아도 터지는 독은 모두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조수 놈이 만든 것은 하나도 깨지지 않고 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놈이 만든 것을 죄다 부수고 싶다. 조수 놈한테 진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는 남자 대 남자로서 자존심마저 구겼다.

끓어오르는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삽을 들고 달려가리라. 그리고 조수 놈이 만든 독을 가차 없이 깨부수리라. 그런데 송 영감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먹고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어렵다. 독을 살려서 생계 밑천을 해야 한다.

죽는 거야 두렵지 않다. 자신 한 몸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 없다. 그런데 어린 당손이 눈에 밟힌다. 바로 그때 마음씨 좋은 방물장수가 등장한다. 이름도 예쁜 앵두나무집에 사는 할머니다. 평소에도 할머니는 두 부자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그날도 그녀는 마땅한 곳이 있으니 당손이를 줘 버리자고 한다. 처음에 송영감은 그런 말 하려면 오지 말라고 고함을 치지만 다른 대안이 없다.

▲ 늙고 병든 송영감이 독을 짓고 있다. 그 옆에서 어린 당손이 아버지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그는 이제 겨우 7살 이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지전 몇 장에 팔려간 당손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멋진 독쟁이가 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 늙고 병든 송영감이 독을 짓고 있다. 그 옆에서 어린 당손이 아버지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그는 이제 겨우 7살 이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안다. 지전 몇 장에 팔려간 당손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멋진 독쟁이가 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당손이가 떠났다. 영감은 여기서 두 가지 선택지를 받아 들 수 있다. 하나는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을 찾고 가마를 쉬지 않고 돌려 돈을 벌어서 당손이를 찾아오고 도망간 아내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것, 저것 다 팽개치고 거지 떼처럼 가마 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겨울을 따뜻하게 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마와 함께 자신의 몸도 태우기 위해.

각자 송영감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작품의 구도상 보기 좋다고 여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자. 국어 시간만 꼭 이런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송영감이 무릎을 꿇은 것은 노인의 패배이며 젊은이의 승리인가.

우리는 일상에서 가끔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송영감이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니 한 번 선택을 해보자. 이 해가 가기 전에. ( 그러고 보니 2019년도 딱 하루 남았다.)

: 돈 몇 푼에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경우는 고전에서 흔하게 등장하고 있다. 전영택의 <화수분>에서도 수분이 딸을 부잣집에 보내고서 꺼이, 꺼이 통곡하는 장면이 나온다.

애를 지전 몇 개에 팔려 보내는 것은 돈을 벌려는 욕심 때문이 아니라 애만이라도 살아서 더 좋은 세상을 보라는 부모의 간절한 뜻이었을 게다.

팔려간 당손이는 아마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잘 살았을 것이다. 아니면 아버지의 대를 이어 어디선가 지금도 가마를 돌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마를 굽기 전 단정히 무릎을 꿇고 신께 기도하는 하는 것을 잊지 않은 채.

작가 황순원은 <소나기>로 잘 알려져 있다. 단편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썼고 나중에는 장편도 여럿 남겼다. <독 짓는 늙은이>는 50년에 발표됐으나 실제로는 44년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를 피해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 가운데는 써 놓고 나중에 발표한 작품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그는 올 곳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의 혼란한 와중에도, 독재 시대에도 작가의 품위를 손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후배 작가들의 표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카인의 후예>도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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