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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최후의 증인(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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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최후의 증인(1980)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2.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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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어떤 외국의 흑백영화는, 예를 들면 1963년에 나온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8½> 같은 영화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내용은 둘째 치고라고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아야 영화의 주제에 접근할 수 있다. 정신집중이 마치 학력고사 문제 풀 듯해야 한다. 그래도 파악이 어려워 두세 번 돌려 봐야 한다면 그런 영화를 끝까지 보기는 쉽지 않다.

이두용 감독의 <최후의 증인> 역시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바짝 정신 차려야 한다. 주인공이나 조연이 많지는 않으나 실타래가 풀어지기보다는 얽히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따금 ‘멘붕’을 겪을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감독 스스로가 ‘어두운 영화’라고 못 박고 있으니 내심 불안하기 그지없다. 실제로 화면도 어둡고 내용도 산뜻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정의를 해친 자가 정의를 부르짖던 1980년대를 언급하면서 지난날의 어둠과 진실을 파헤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나팔바지와 함께 장발이 유행했던 그 당시를 떠올려 보자. 필자도 오 형사만큼 긴 머리를 태극기처럼 휘날리면서 서울의 봄을 만끽했던 기억이 있다. 담배와 술, 특히 술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춰 ‘떼창’을 부르던 시절이 아련하다.)

특히 한국전쟁을 관통하는 근현대사에 무관심한 관객이라면 진실에 접근하기까지 혼란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후반부는 매우 친절하다.

초반의 불친절을 만회라고 하듯이 자세한 설명이 따라붙었으니 앞부분을 건너뛰었다 해도 뒤에 가서는 이해가 된다. 그러니 중도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보자. 이 영화는 그래야 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서문이 길었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문창서 오 형사(하명중)가 살인사건의 적임자로 낙점된다. 서 내 유일한 대학졸업자라는 것이 표면적이 이유다. 수사에 필요한 돈과 권총은 서장이 직접 전달했으니 특별히 의뢰하고 싶은 사람으로 신임도 받고 있다.

그가 단신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그 전에 신문은 김중엽 변호사와 양조장 주인 양달수(이대근)의 피살사건을 사회면에 크게 보도한다. 누구요, 소리와 함께 일격에 사망에 이르는 순간은 매우 빠르고 섬뜩하다.

형사는 양달수의 피살현장인 저수지 근처를 배회한다. 살인자가 사건 현장을 다시 찾는 것처럼 무슨 단서가 없나 해서다. 그리고 주변 인물 탐문에 나서면서 양달수가 주민들에게 인심을 잃었다는 것을 안다. 비참한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과 함께.

그러다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는 사실에 접근한다. (탐문결과 새로운 지명이 나오면 그곳으로 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회상에 잠기는 오 형사의 고뇌는 하명중의 연기와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변호사와 양달수의 죽음이 둘이 아니라 서로 연관돼 있음을 직감한다.

찢어진 수첩에서 발견한 김 변호사의 전화번호. (친절하게 미리 밝히자면 김 변호사는 1950년 황바우 공판의 담당검사 였다. 그는 바우를 살리려는 손지혜(정윤희)를 겁탈하고 무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준엄한 법의 심판 운운하면서 사형을 언도한다.)

때는 해방공간. 지리산에 빨치산들이 아직 남아 있다. 빨치산 총사령관은 직감적으로 패배가 다가왔음을 느낀다. 죽는 거야 두렵지 않지만 데려온 딸 지혜가 걸린다. 그는 지주였던 관계로 숨겨뒀던 재산이 있는 지도를 유격대장에 준다. 그리고 딸을 맡아 줄 것을 신신 당부한다.

▲ 아기를 업은 손지혜(정윤희)를 바라보는 청년대장(양달수)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손지혜를 차지 하기 위해 양달수는 검사와 짜고 지혜의 남편 황바우(최불암)를 살인범으로 몰았다.

그즈음은 평양에서는 지리산 상황도 알지 못하면서 총공격을 명령한다. 사령관은 거부한다. 부하들은 그를 총살 대신 격살한다. 지혜는 임신한 상태다. 부하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계집 맛이나 보자면서 지혜를 윤간한다.

유격대장은 눈을 부릅뜨나 칼을 목에 들이대는 공비들을 막아낼 수 없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황바우(최불암)는 아가씨가 불쌍하다며 울부 짓는다. (그는 한동주와 함께 끌려온 민간인이다.)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빨치산들은 궤멸 직전이다. 유격대장은 청년대장 양달수(이대근)에게 생명 보장을 담보로 자수를 제의한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다리를 놓았다. 그러나 자수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지 않는다.

전투가 벌어지고 지혜와 황바우 등 4명만 살고 나머지는 모두 죽는다. ( 황바우가 불길 속에서 지혜를 안고 탈출하는 장면은 <벙어리 삼룡이>이에서 삼룡이가 아씨를 안고 지붕 위로 올라가는 장면과 겹쳐진다. 상관 관계가 전혀 없는데도 불길과 아씨 때문에 이런 연상이 됐다.)

황바우는 지혜와 살림을 차린다. 당시 지리산은 민간인 통제 구역이었고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양달수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혜를 보는 달수의 표정이 심상찮다. 아기를 업은 지혜에게 달수가 음흉한 시선을 날린다. 달수가 흑심을 품으면서 사건은 심각하게 전개된다.

순박한 바우는 어느 날 갑자기 경찰에 끌려간다. 교전 당시 한동주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동주의 동생이 살인자로 그를 고발했다.(이 모든 것은 청년대장 달수와 검사가 서로 짜고 한 일이다. 한동주의 동생은 이후 오 형사에게 호되게 당한다. 지역 토호인 그는 형사계장과 친하다. 그 지역 경찰이 봐달라고 했음에도 오 형사는 그러지 않고 곤죽으로 만든다. 정의감 있는 형사 한 명의 활약은 비리 경찰 100명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

곧 온다던 바우는 앞서 말한 대로다. 김중엽 검사와 청년대장 양달수가 ‘어둠의 핵심’이다. 지혜는 이제 달수와 함께 산다. 달수는 문창에 터를 잡고 양조장 사업을 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도 있다. (그 딸은 사건 이후 자살하는 것으로 잠깐 언급된다.)

화면이 바뀌면 오 형사는 죽었다던 동주가 엄연히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 동주의 무덤 속에는 동주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시신이 대신 들어있다. 그는 그 사실을 말한 댓가로 죽었다.) 재심을 통해 황바우는 무죄가 될 수 있을까.

살아 있는 한동주는 검사복을 벗고 변호사 생활을 하는 김중엽과 양달수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고 있다. 변호사와 양달수는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는데 이를 눈치챈 동주가 두 사람에 앞서 손을 쓴다. 바로 청부살인.

그럼 누가 변호사와 달수의 살인자인가. 우선 황바우는 아니다. 손지혜도 아니다. 그런데 지혜가 산속에서 유격대장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은 앞서 밝혔다. 사건은 20년 후에 일어났으니 뱃속의 아이는 이제 청년이 됐을 터. 그가 살인자라면 이런 어마어마한 사연을 어떻게 알았을까. 누가 지혜의 아들 태영에게 그 비밀을 누설했을까.

오 형사는 사건을 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게 됐다. 그런데 그는 동주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무덤으로 향하던 중 그를 살해하려던 자들을 권총으로 죽였다. 오 형사는 살인범으로 체포 위기에 있다. 한강 변에서 황바위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건은 완전히 종결됐다.

오 형사는 같이 가자는 경찰의 말에 잠깐만 하고 시간을 번 후 갈대밭으로 향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입안에 넣는다. 갈대숲에서 철새들이 날아간다. 놀란 겨울 철새가 황량한 겨울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를 사랑했던 선생님(한혜숙)을 남겨 둔 채로. ( 그녀는 ‘증’을 보여 달라며 급히 집어넣는 오 형사의 손동작에 웃음 코드를 날린다. 경찰 같지 않아서 라거나 미남이시군요, 라고 노골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장면은 선생님이 약방의 감초처럼 없어서는 안 될 주연급 조연임을 말해준다. 그 선생님이 풍금을 타면서 ‘나의 고향’을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장면은 고복수의 ‘타향살이’를 부르는 실루엣 손지혜와 비교된다.)

국가: 한국

감독: 이두용

출연: 이대근, 정윤희, 최불암

평점:

 

: 러닝타임이 무려 154분이다. 그런데 지루할 새가 없다. 최근 개봉해 1000만을 향해 달려가는 <백두산>을 보는 듯 하다. 화면은 빠르게 전개되고 사건의 윤곽이 드러날 때쯤이면 영화가 끝난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몰입감이 대단하다.

지적한 대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용 파악은 물론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다. 크게 보면 이 사건은 분단의 비극이다. 그게 없었다면 양달수나 검사나 황바우나 손지혜가 어이없는 인생 곡절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태영이 어린 나이에 연쇄 살인을 하고 정신병원에 있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친절하게도 영화의 내용을 자세히, 시시콜콜하게 언급하는 것은 이런 줄거리를 미리 알고 영화를 보면 머리에서 덜 쥐가 나기 때문이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다면 영화의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스포일러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라고 해서 한 두 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찾아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이두용 감독은 이 영화로 한국 영화 백 년 역사상 최고의 한국 영화를 만들어 냈다. 꼬집기 좋아하는 어떤 평론가도 이 영화의 우수성에 흠집을 내는 시도를 하기 어렵다. 그만큼 누구나 ‘한국 영화의 전설’ 이라고 격찬을 하게 되는 것은 영화의 밀도가 매우 치밀하면서 바라보는 방향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의 정윤희의 매력이 최고조로 발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덤으로 밝혀두고 싶다. 한편 이 영화는 우역 곡절도 많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1시간가량 잘려서 상영되기도 했다. 2002년에 가서야 온전한 필름으로 상영됐다고 하니 유튜브에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지금은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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