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6975 2077203
최종편집 2024-04-18 16:31 (목)
321. 투캅스 (1993)
상태바
321. 투캅스 (1993)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12.14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포스터의 헤드 카피는 어디까지 믿어도 좋을까. 이런 의문이 드는 당신이라면 강우석 감독의 ‘웃다 죽어도 좋다’는 <투캅스>에 대해서는 그것을 제기하기 어렵다. 성질 좀 있고 까다롭다는 관객들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로 배꼽 빠지는 이 영화는 그러나 단순히 코미디만은 아니다.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데 그것이 ‘웃음 코드’와 섞여들어 후광이 더 오래간다.

경찰과 유흥업소의 비리는 역사가 아주 깊다. 착한 일반인들이 생각하면 경찰과 업소나 비리는 언뜻 어울리기 어렵다. 그러나 실상은 그런 것들과 아주 친근하게 엮여 있다.

언제나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는 것을 착한 사람들도 알아야 하고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알려준다. 그러니 경찰의 비리가 난무해도 시비 걸 생각 말고 화면에 몰두하는 것이 우선이다.

조형사(안성기)가 흉악범 같지 않고 인상 좋은 것은 애들도 다 안다. 인상이 그러니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역에 그 말고 다른 이를 찾기 어렵다. 그는 실제로 7평 사글세에 사는 청빈한 국가공무원 경찰의 표상이다. 정말로 그럴까.

속을 한 꺼풀만 뒤집어 보면 그는 사글세는커녕 정원 딸린 호화주택(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나오는 부잣집에 견줄만하다.)에 사는 개차반 형사다. 그에게 국민 세금으로 월급 주는 것은 미슐랭의 별 네 개짜리 음식을 먹었더라도 곧 토할 만큼 역겹다.

강형사(박중훈)가 그런 조형사와 한패가 된 것은 전임 형사가 막 해 먹다가 비리로 퇴출된 직후다. 민중의 지팡이면서 공권력의 중심인 경찰에게 한패라는 표현은 점잖지 못하다. 그러나 화면이 진행되면서 이런 표현조차 너그럽다는 것을 관객들은 수긍하게 된다.

중앙경찰학교 수석 출신인 강형사는 그야말로 에프엠 경찰이다. 그는 뼛속 깊이 경찰의 혼이 배어 있다. 그런 그에게 길거리 노점상에게 노래 테이프를 갈취하고( 벼룩의 낯짝만도 못한 인간이다.) 약점이 있는 유지를 불러내 비싼 식사와 술을 공짜로 얻어먹으며 빠찡코에서 돈을 뜯어내는 조형사는 생 양아치에 다름 아니다.

강형사가 시비를 걸고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부끄러운 짓 그만 두라고 수시로 충고해도 듣지 않는다. 의협심 강한 그가 드디어 일을 벌인다. 아무리 선배라고 해도 용서하기 힘들다.

고발장을 작성한다. 그러나 호락호락 넘어갈 조형사가 아니다. 그즈음 강형사는 전과자를 취조하면서 고문경찰의 누명을 쓴다. 조형사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그때 조형사가 시치미를 떼면서 고발과 고문을 눈감아 주는 빅 딜을 제시하고 강형사는 그런 조형사가 만만한 놈이 아니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 안성기와 박중훈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만들어 내는 기상천외한 비리경찰의 활약상은 보는 내내 웃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씁씁한 기분이 들게 한다.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삥뜯는’ 조형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자만이 자신을 탓할 자격이 있다고 비리를 철학으로 바꾸는 노련한 사기꾼. 여전히 갈취하고 빼돌리고 숨겨둔 여자와 분탕질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교회에 감사헌금을 내고 아멘 몇 번만 외치면 죄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종교가 번성하는 이유다.)

반면 강형사는 경찰의 임무에 정신이 없다. 제대로 된 경찰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래, 그렇게 경찰 질이 소원이라면 해주마! 하고 조형사가 나선다. 불법의 이름으로 많은 서민을 잡아 들여 강형사를 골탕 먹인다. 이쯤 되면 강형사도 손들 법한데 아직 그는 속세의 때가 덜 묻은 경찰 학교 수석 졸업생이다.

늦은 밤까지 조서 작성에 여념이 없다. 조형사가 보기에 저런 놈은 처음이다. 그래서 더 센 작전을 펴기로 한다. 바로 미인계다. 술집여자 수원(지수원)을 이용한다. 결국 강형사는 무너진다. 고자 아닌 아침마다 텐트를 세우는 강쇠를 입증한 것이다.

한 번 무너진 물은 둑을 타고 흐르다 아예 댐까지 무너뜨린다. 극에서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청렴했던 강형사가 무너지자 그의 부패는 조형사를 능가하고도 남는다.

남들은 수년이 걸려야 타락하는데 그는 경찰 입문 고작 6개월 만에 지저분한 경찰의 1순위에 오른다. 한 인간이 변하는데 그 기간은 결코 길지 않다는 것이 강형사가 증명한다.

노점상에서 삥뜯고 유지 불러내서 공짜 술 먹고 이권에 개입하고 빠징코에서 돈을 쓸어 담는다. 그것도 모자라 마약으로 크게 한탕 하려고 한다. 그에게 제복과 권총과 공권력은 사회가 아닌 개인의 영달을 위한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다.

누가 이 사람에게 총질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또 다른 공권력이 아닌 바로 범죄자의 장총이다.

국가: 한국

감독: 강우석

출연: 안성기, 박중훈, 지수원

평점:

 

: 두 명의 경찰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뻘 짓’에 관객은 웃다가 울다가 가슴을 친다. 경찰이란 원래 이런 직업인가? ‘짭새’의 현실을 비웃으며 비분 강개하다가 다른 한 눈은 부러움의 시선이 당신에게 있는가.

나도 경찰이 돼서 강형사처럼 마구잡이로 돈벌이에 나서고,여색질에 빠져 볼까 이런 생각이 들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영화를 볼 자격이 충분하다. 가재는 게편이니까.

반면 저런 비리 경찰은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쥔다면 조금은 불편할 수 있다.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로 충모루 스타의 입지를 완전히 굳혔다. 이후 강우석 사단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2000년대 중반까지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영화가 경찰의 비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자 경찰이 반발했다. 그래서 영화는 실재와는 다르다는 자막을 넣기도 했다. ( 지금도 대다수 경찰은 이런 것과는 달리 묵묵히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 일부 극소수가 비리 경찰로 찍히는데 전체 경찰이 욕먹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의 표절작이라는 평가도 그의 유명세를 지울 수 없었다. (내용은 물론 포스터도 두 형사가 권총을 들고 있는 장면이 유사하다.)

그러면 어때? 우리 배우가 우리 말을 하고 우리나라 장면인데? 하고 너그럽게 이해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 ( 멀티플렉스 관이 나오기 전의 단관 영화로는 100만을 돌파한 <서편제>에 이은 두 번째로 많은 86만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후 감독은 <공공의 적>(2202) 최초의 천만 영화 <실미도>(2003)를 잇따라 내놓으며 존재의 무거움을 증명했다. 하지만 임권택 이후로 많은 장편 영화를 남겼으나 수준 이하도 무수히 많아 아쉬움을 남기도 있다. )

한편 안성기, 박중훈 뿐만 아니라 조연으로 참여한 숱한 연기자들이 영화의 품격을 한층 높였다. 심양홍, 양택조, 최종원, 윤문식, 임대호, 임일우 등이 그들이다. 신참 형사로 김보성이 등장하는데 그는 속편의 주인공을 맡았다.

참고로 영화가 나온 이해는 김영삼의 문민정부 시절로 그동안 금기시됐던 소재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 익었다. 대사 중에 ‘실명제 인데 용케도 구했구먼’ 이라는 대사는 금융실명제를 빗댄 말이다. ( 여기서 용케 구한 것은 마약이다.)

한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테너와 김수희의 '애모'는 영화와 음악이 왜 궁합이 맞아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