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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치과학의 아버지 포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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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치과학의 아버지 포샤르
  • 의약뉴스 이한기 기자
  • 승인 2019.12.1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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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의사인 피에르 포샤르(Pierre Fauchard)는 근대 치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치과학을 처음으로 과학적으로 기술한 서적을 발간한 선구자로 알려졌다.

포샤르는 1678년에 생 드니 드 가스틴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5세의 나이로 프랑스 왕립 해군에 입대했다. 이곳에서 그는 군의관인 알렉상드르 포틀르레를 만났는데 포틀르레는 치아 및 구강 질환을 전문으로 다루고 있었다.

포샤르는 해군에 있는 동안 바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선원들이 구강 증상을 유발하는 괴혈병에 시달린다는 것을 알게 됐으며 포틀르레의 제자인 의무병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포샤르는 해군을 떠난 이후에는 프랑스 앙제에 정착했으며 앙제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됐다. 이곳에서 그는 과학적인 구강 및 악안면 수술에 관한 선구적인 업적을 이뤄내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치과의사(Chirurgien Dentiste, surgical dentist)로 불렀는데, 당시 관행은 치아를 치료하지 않고 부패한 치아를 발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드문 용어였다.

▲ 해군 출신의 포사르는 근대 치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포샤르는 당시의 원시적인 수술기구들로 인한 제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고도의 기술을 갖춘 외과의사로 여겨졌다. 

그는 치과용 기구를 발명했으며 수술에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시계 제작자, 보석상, 이발사 등의 도구들도 사용했다. 

그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치과용 충전재를 이용해 충치를 치료했다.

포샤르는 설탕과 타타르산 같은 물질이 충치를 유발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치료하지 않을 경우 충치가 종양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치과 보철물 분야를 개척하고 상실된 치아를 대체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이론에는 인공 치아를 와이어와 실을 통해 건강한 치아에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것과 치아 교정기에 대한 개념이 포함됐다.

포샤르는 1718년에 프랑스 파리로 이사했고 파리도서관에 치과학을 주제로 하는 글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에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그는 1723년에 집필을 마치고 1728년까지 편집해 《Le Chirurgien Dentiste》라는 이름으로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그의 책에는 수술기구들을 묘사한 42개의 삽화가 포함됐다.

그는 충치가 치아 벌레에 의해 발생한다는 이론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설탕이 충치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설탕을 덜 먹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치과용 충전재에 대해 다루고 납, 주석, 금과 같은 아말감을 제안했으며, 환자가 앉아 있어야 하는 자세와 치과용 의자 조명에 대한 개념도 소개했다. 그는 돌팔이 의사들의 사기와 환자 착취에 대해 비판했다.

포샤르의 책에는 당시에 치과의학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이론들이 상당수 포함됐으며, 그의 업적은 치과의학의 수많은 발전에 대한 기틀을 마련했다. 포샤르는 1761년에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진 출처 :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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