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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 2019.11.23 토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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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사랑손님과 어머니>(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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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10.21  11: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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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구경하러 다녔던 적이 있다. 철길이며 기적소리며 시커먼 연기며 커다란 차체가 그저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 와중에도 상행선과 하행선 열차를 구별해 냈다.

서울로 올라가고 장항으로 내려가는 기차는, 같지만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서울행 기차는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하행선의 기차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면서 역으로 들어와도 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열차를 보러 가는 것은 멀리 떠나는 것이었으며 먼 곳은 서울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너무 멀어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웠다. 그래서 선뜻 기차에 오르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어린 시절은 늘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는 사람이 없어도 차창을 향해 손을 마구 흔들어 댔던 그 시절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말이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해줬다. 옥희와 옥희 엄마도 떠나는 기차를 보면서 아저씨와 작별을 했다.

떠났던 아저씨가 다시 돌아올지는 모른다. 그래서 반가운 재회를 나눌지 그 누가 알랴. 그러나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에서 그들은 살아서는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다. 소설이 영원한 작별로 끝을 맺었기 때문이다.


* 옥희의 행복은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옥희네 사랑방에 어느 날 손님이 들었다. 큰 외삼촌과 아빠의 어릴 적 친구다. 아빠는 옥희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그러니까 결혼한 지 일 년 만에 죽었다. 스물넷 엄마는 청상과부가 됐다. 여섯 살 옥희는 과부가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나 마을 사람들이 과부 딸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자기 엄마가 과부인 것만은 확실히 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엄마와 단둘이 사는 옥희네 사랑에 손님이 든 것은 일대 사건이다. 엄마는 손님을 위해 밥을 하고 중학생 외삼촌은 그것을 사랑방 아저씨에게 가져가고 옥희는 놀러 간다.

이름도 없이 아저씨로 불리는 손님은 근처 학교의 선생님으로 발령이 나서 마침 비어있는 옥희네 사랑에 들었다. 변변한 하숙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큰 외삼촌이 일부러 옥희네에 들라고 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살림에 보탬보다는 동생(옥희 엄마)과 친구 간에 어떤 정분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모른다고 한 것은 책에는 이런 것을 암시할 만한 어떤 대목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너무 젊은 옥희 엄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선생님은 그 집에서 밥을 먹는 식구가 됐다. 옥희는 틈만 나면 사랑으로 놀러가고 사랑방 손님 역시 그런 옥희를 좋아한다. 아저씨 무릎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 과자도 얻어먹으니 옥희에게는 너무 좋은 사랑 아저씨다.

어느 날 밥을 먹다 아저씨는 옥희에게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물었고 삶은 달걀이라고 대답하자 마침 상에 있던 그것을 옥희에게 주는 친절한 아저씨.

그런데 삶은 달걀은 옥희 말고도 아저씨도 좋아한다는 것을 안 옥희는 너무 좋아 이 사실을 엄마에게 알렸다. 떠들지 말라면서 조심을 시키던 엄마였지만 다음부터 엄마는 더 많은 달걀을 사게 됐다.

어느 토요일 오후 아저씨와 옥희는 뒷동산으로 놀러갔다. 기차 가는 것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날 옥희는 처음으로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요일에는 예배당에 갔고 그곳에 뒤늦게 온 아저씨를 만났다. 옥희는 이즈음 아저씨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거나 엄마에게 아저씨 이야기를 하면 둘 다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는 것을 알았으나 그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다만 화가 나서 그리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번은 벽장에서 잠이 들어 집안에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엄마는 물론 근처 사는 외할머니와 외삼촌이 찾으러 다녔다.

미안한 생각이 든 옥희는 엄마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유치원 꽃병에 있는 꽃을 사랑방 아저씨가 준 것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엄마에게 건넸다. 꽃 냄새를 맡고 있던 어머니가 아저씨가 준 것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그 남자가 나에게 꽃을. 어머니의 얼굴이 아저씨 이야기만 하면 빨개지던 것보다 훨씬 더 빨개진 것은 당연지사. 겨우 한다는 소리가 “옥희야, 그런 걸 받아 오믄 안 돼.”

꽃은 사랑하는 전하는 사랑의 고백이 아니더냐. 그날 밤 어머니는 잠을 잘 잤을까. 아니면 뜬눈으로 밤을 샜을까.

꽃을 받아 왔다고 화를 낸 어머니는 그 꽃을 팽개치지 않고 꽃병에 꽂아 놓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한 번도 뚜껑을 열지 않았던 풍금 위에 올려놓았다. 여러 날이 지나고 시든 꽃을 엄마는 또 버리지 않고 찬송가 갈피에 꽂았다. 이때 엄마는 몸이 아닌 마음으로 손님을 받아들였을까.

그런 공상을 할 때 안방에서 나는 풍금 소리. 어머니가 풍금을 타고 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옥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흰옷 입은 어머니가 방안을 가득 채운 은은한 달빛을 받고 몸을 까닥거리고 있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 노래도 부른다.

어머나, 세상에. 옥희는 천사가 따로 없다고 탄성을 질렀다. 그런데 풍금을 마친 엄마는 나를 보자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새하얀 두 뺨 위로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지는데 옥희도 덩달아 훌쩍거릴 수밖에. 울음을 그치고 한다는 소리는 고작 “옥희야, 난 너 하나문 그뿐이다.”

어떤 날은 아저씨가 하얀 봉투 하나를 서랍에서 꺼내 엄마를 갖다 주라고 했다. 지난달 밥값이라면서. 그런데 봉투 속에는 지전 몇 장인 밥값 말고도 네모로 접은 하얀 종이가 있었다. 러브레터.

어머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입술이 바르르 떨린 것은 바로 그 순간. 그날 밤 엄마는 잠을 자지 못하고 수없이 두 손을 비비고 기도만 했다.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했을까. 아니면 그것을 달게 받게 해달라고 했을까.

그날 옥희가 느낀 어머니의 입술은 불에 달군 돌이 볼에 와 닿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옷을 정리하던 어머니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옥희도 줄줄 외는 주기도문을 외우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다.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풍금을 타다가 찬송가를 부르다가 소리 없이 울다가 감정이 제멋대로인 것을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어머니는 이 순간 또다시 유혹을 받느냐, 거부하느냐의 갈림길에 선 모양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심이 섰다.

나의 행복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욕을 먹지 않기로. 옥희 어머니는 화냥년이라고 욕을 하는 것을 사랑보다도 더 무서워했다. 손가락질받는 옥희. 화냥년의 딸이라 시집도 좋은 데로 가지 못하는 옥희를 어머니는 걱정하고 있다.

그날 밤 어머니는 머리를 새로 빗겨 주고 댕기도 새 댕기로 매주고 바지와 저고리, 치마 모두를 새것으로 꺼내 입혀 주었다. 무슨 중대한 결심을 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나 보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하얀 손수건을 아저씨에게 갔다고 주라고 했다.

접힌 손수건 안에는 다른 무엇이 그러니까 편지 같은 것이 들어 있으리라. ‘당신의 마음은 고맙지만 난 그 마음을 받을 수 없어요. 그러니 더는 나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내 집에서 당장 꺼지세요.’

편지글에 썼다면 뭐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편지를 받아든 아저씨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날 밤 어머니가 또 풍금을 탔다. 그 곡조는 전과는 달리 매우 슬펐으리라. 아마도 그 곡은 ‘트윈 폴리오’가 번안해 부른 ‘하얀 손수건’이 아니었을까.

: 하얀 손수건을 이성에게 주는 것은 사랑의 징표라기보다는 이별의 전달로 보아야 한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목소리가 고운 나나무스쿠리의 원곡을 송창식, 윤형주가 ‘트윈 폴리오’의 이름으로 번안해 부른 ‘하얀 손수건’의 가사는 애절하다. (원곡 역시 ‘먼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 새를 그리워하는...등’ 온통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어머니가 옥희에게 전해 주라고 한 하얀 손수건에 네 번 접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을지 궁금하다.

마치 주요섭이 유행가를 듣고 이 글을 쓴 것 만 같다. 그러나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작가가 32살인 1935년에 발표했으니 1967년 원곡이 나오고 그 이듬해 번안곡이 나온 시점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되레 이 소설을 읽고 나나무스쿠리가 노래를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아니면 말고.)

하얀 손수건을 주고 어머니는 더는 달걀을 사지 않는다. 풍금도 타지 않는다. 여자의 결심은 이처럼 냉정하다.

어쨌든 옥희라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본 어머니와 사랑손님과의 관계는 맺어지기보다는 떨어졌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죽어라고 외웠던 기억이 교과서 속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불놀이’로 근대시의 효시를 열었던 주요한이 친형이다. 형은 지독한 친일인사였다. (형이 그랬다고 해서 동생인 주요섭마저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은 지나치다.)

사회주의 계열로 나뉘는 카프 활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서정성 물씬 풍기는 이런 작품을 남겼다. 1961년 신상옥 감독은 김진규, 최은희를 등장시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멋진 영화를 만들었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님도 보고 뽕도 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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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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