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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광장>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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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8.24  12:3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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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김구 선생은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라고 말했다. 거듭해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은 한결같았다. 굽히지 않는 단호함은 마치 우뚝 선 강철과 같았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주인공 명준이 ‘중립국’을 외치는 장면도 이와 흡사했다. 북쪽 인사의 회유에도 남쪽 인사의 자유에의 미끼에도 그는 흔들리지 않고 중립국을 외쳤다.

대한독립만큼이나 움직일 수 없는 신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바뀔 수 없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에게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하게 만들었나. 그 절절함의 이면에는 과연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을까.

자, 일단 우리의 주인공 이명준의 신상부터 털어보자. 명준은 대학 철학과 3학년이다. 그는 아버지 친구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때는 해방공간이며 동족상잔의 전쟁이 끝나는 휴전 시점이다. 줄 잡아 수 삼 년 정도의 시간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다.

해방 후 명준은 자유를 만끽했다. 아버지는 그해 월북했다. ( 어머니는 얼마 안 가 사망했다.) 은행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친구는 명준 하나쯤은 충분히 군식구로 데리고 있을 만큼 넉넉한 살림이다.

명준이 주눅 들지 않고 제집처럼 생활할 수 있는 근거다. 그 집 아들과 딸과는 친구처럼, 애인처럼 사이가 좋다.

풍족하다 보니 젊은이들은 연애질이며 춤 질, 드라이브, 피크닉, 영화에 정신이 팔려있다. 돈은 돈을 벌고 풍족한 자들은 더 많은 부와 자유와 권력의 단맛을 즐긴다. 명준도 그들과 합세한다. 하지만 그런 불공정하고 늘어지는 세태에 실망의 빛도 보인다.

그러는 사이 어느 날 형사가 그를 찿는다. 월북한 아버지가 북의 고위 인사가 돼 남을 헐뜯는 방송을 하고 있다. 명준은 형사에게 구타를 당하고 온갖 고문과 정신적 치욕을 겪는다.

단지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입술이 터지고 얼굴은 만신창이가 된다. 그는 빨갱이 라는 누명과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다.

그즈음 그는 주인집 딸 영미의 소개로 강윤애를 만난다. 오토바이를 타고 서울에서 윤애가 사는 인천으로 내달린 그는 그녀의 집에서 여러 달 기거한다.

딱히 사랑이랄 것도 없었지만 명준은 그녀와 함께 잠을 자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가던 술집 주인으로부터 밀수선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북으로 간다.

타락한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광장이 죽은 남한을 탈출한 것이다.

북에서 그는 신문사 기자로 활동한다. 그러나 북도 그가 들었던 인민의 나라는 아니었다. 잿빛 공화국, 당에 의해 앵무새처럼 구호를 외치는 하나의 거대한 꼭두각시 집단이었다.

그는 본대로 기사를 썼다. 이 때문에 개인주의적, 소부르주아적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따가운 자아비판을 한다. 뒤늦게 그는 그곳의 이념 역시 남과 마찬가지로 그가 꿈꿔 왔던 세계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인식한다.

발레리나 은혜를 만난 것은 그에게는 천운이었다. 그는 그녀와의 밀회를 통해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인천의 윤애와는 다른 그녀에게서 그는 이것은 사랑인가 하는 의문 대신 그렇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터졌다. (상황설명은 간략하다.) 밀고 내려온 명준은 낙동강 전선에 배치됐다. 은혜는 간호사로 자원했다. 둘은 재회했다.

그들은 틈만 나면 명준이 발견한 동굴 속에서 사랑을 즐겼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둘은 아지트에서 살을 맞댔다. ( 그래서 그들의 사랑이 더 애틋했나.)

대공세가 있던 날 은혜는 죽었다. 명준은 포로가 됐다. ( 이 과정 역시 자세히 언급되지 않고 있다.) 휴전이 왔고 전쟁포로들은 남쪽인지 북쪽인지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명준은 단호하다. 그가 중립국을 택한 것은 북쪽도 남쪽도 그가 원하는 세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둘을 경험한 그에게 양쪽 다 이상사회와는 거리가 멀었다.

중립국으로 가는 인도 배 타고르호 안. 그는 먹물답게 석방 포로들의 통역을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선장과 통하는 사이가 됐다. 홍콩을 지나 마카오를 거쳐 배는 인도 콜카타( 옛 명칭 켈커타)로 향하고 있다.

명준은 포로들이 잠시 정박한 항구에서 나와 술도 마시고 여자도 취할 수 있도록 통역해 달라는 동료들의 제의를 시큰둥하게 받아 들인다. 이 과정에서 난투극이 벌어지고 명준은 그만이 홀로 사색에 잠기는 공간인 한쪽 갑판에 앉아 먼바다에 시선을 두고 지난 여정을 돌아본다.

갈매기들은 따라온다. 죽기 전에 은혜는 임신을 했고 배 속의 아이는 딸이라는 암시를 했다.

그런 상념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명준은 중립국도 자신이 살 곳이 못 된다고 판단했을까. 그는 투신자살한다. 이것이 대충 훑어본 <광장>의 마지막 부분이다.

: 여러 번 개작했다. 저자의 서문을 봐도 그렇다. 1960 ‘새벽’ 지에 발표한 서문에 이어 73년 판 서문, 76년 전집 판 서문 그리고 89년 판 서문까지 개정에 개정을 거듭했다.

그만큼 작가가 이 작품에 쏟은 애정이 막대했다. 개정을 하면서 내용의 일부도 바뀌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펴낸 책에는 김현과 김병익 평론가의 자세한 개작과정과 바뀐 내용들이 서술돼 있다.

여기서는 그런 것까지 살펴볼 이유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큰 흐름의 줄기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판 이후 개정판을 읽지 않은 독자들을 위해서 갈매기가 쫓아 오는 부분이나 마지막 은혜의 죽음 등에 대한 내용 등이 수정됐다는 사실만은 전하고 싶다. 문체와 문장, 그리고 내용까지 바뀌었으니 완전히 새로운 작품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할 필요는 없다.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면 1960년은 학생의 해였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문학사적으로 <광장>이 차지하는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김병익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민족의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한 <광장>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억압받아온 이데올로기의 전반적 상황을 증거하는 발언으로 거듭 읽힐 것”으로 내다봤다.

저자는 61년 판 서문에서 광장에 대해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라면서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고 강조했다.

주인공 이명준에 대해서는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자문하면서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 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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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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