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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23 19:44 (화)
녀석은 힘이 빠지면 뒤로 밀릴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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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힘이 빠지면 뒤로 밀릴 것이 분명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8.09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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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을 손으로 직접 잡아본 것이 그 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화사인 꽃뱀이나 지방 토속어로 율메기로 불렸던 무자치 녀석은 어릴 적에 잡아서 머리 위에서 돌리다가 멀리 버린 적이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경험은 분명했다. 커서도 동물원에서 수 미터 길이의 노란 뱀을 목에 건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야생의 독사를 직접 잡은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뱀을 잡기 전에 나는 독사가 몸을 돌려 나를 공격할 것에 대비했다.

그가 몸을 틀 때 이 삼사 초 정도의 짧은 시간에 나는 녀석을 손에서 놓고 뒤로 넘어질 생각을 했다.

그러면 독사의 양 이빨에 물리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내가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하고 생각을 했는지 지금 돌이켜 보면 아찔하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나는 아무렴 어때? 하는 막연한 심정이기도 했다. 혹시나 했던 절대자를 만날 수 있을까 했던 기대감이 무너진 실망감도 있을 것이다.

또 이런 면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독사에 물린다고 해서 바로 죽지는 않는다. 물린 부위 위로 피가 통하지 않게 묶은 다음 야생초를 짓이기면 아픔과 부어오름으로 서너 날 고생을 하겠지만 생명은 건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혈관을 물리지 않는다는 조건이었지만 나는 죽기보다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컸으므로 독사의 꼬리를 과감히 잡을 수 있었다.

독사를 손으로 잡은 순간 그 느낌을 여기서 제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목구멍을 간질이는 포도주의 미세한 표현을 말로 나타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섬뜩하다거나 차갑다고 하는 것은 편견이었다는 것을 금새 알았다. 그냥 살아 있는 무언가를 잡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낚시에 걸려 올라와 팔딱거리는 생선을 잡았을 때와 같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뇌를 스쳐 갈 때 순간적으로 놈의 버티는 힘이 대단하다는 것을 온몸이 감지했다. 녀석도 자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알았는지 더 발버둥 거렸다.

설마 그것이 사람의 손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겠지만 살모사는 몸을 돌려 나를 공격하기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한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가던 길을 계속 가도록 나를 내버려 두라고 짜증을 냈다. 그러면서 몸을 반쯤 구멍 속에 집어넣은 상태로 더는 밀리지 않겠다는 결기를 다졌다.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뒤로 나올 수도 없는 형국에 빠진 녀석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날름거릴지 아니면 앙 다문 채로 인상을 쓰고 있을지 보지 않아서 모를 일이지만 그 당시는 녀석의 표정이 어떠리라는 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나중에 뱀 연구자를 만나면 물어볼 작정이다. 구멍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뱀이 자신의 몸통을 잡 당기는 상항과 맞부닥쳤을 때 표정은 어떤지 하고 말이다.

아령을 들은 바 있어 팔의 힘에 자신이 있던 나는 잡아당기는 근육을 최대한 사용했다. 그래도 뱀은 구멍에서 빠져나오지 않았다. 나와 뱀의 사투는 길었다.

뱀을 잡아빼서 어쩌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내가 분명히 승자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꼬리 보다는 더 위쪽인 몸통의 가운데 부분을 정확히 잡고 있었기 때문에 뱀은 힘이 빠지면 뒤로 밀릴 것이 분명했다.

나는 놈의 몸통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쥔 팔에 힘을 더욱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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