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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지옥화(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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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지옥화(1958)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7.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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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피는 꽃은 어떤 모습일까. 가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답하면 정답이지만 아마도 지독히도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라고 의문부호를 단다면 더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다.

지옥에서 피는 꽃은 이승에서는 볼 수 없는 치명적인 무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는 한국의 팜므파탈의 원조라고 불러도 좋을 최은희의 미모와 볼룸을 앞세우고 있다. 과연 지옥에서나 필 만한 꽃이다.

당당하고 자신만만하고 요염한 그녀의 언행 이면에는 보아서 아름다운 육체가 밑바탕이다.

때는 전쟁 후 미군 부대 주변이다. 그들을 상대하는 이른바 양공주 가운데 한 명이 소냐( 최은희)다. 소냐는 미군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 그들의 대사 가운데 코 큰 미국놈이나 한국놈이나 사내는 똑같다, 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를 살피는 영식(김학)이 있다. 뺨에 흉터 자국이 있는 영식은 어떤 수완을 발휘했는지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이쁜 소냐의 기둥서방이다.

미군이 가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소냐와 영식이 엉킨다. 영식은 질투하지 않는다. 아마도 돈을 벌기 때문일 것이다. 소냐는 그런 영식이 싫지 않다.

그런데 영식이 동생 동식(조해원)이 합류하면서 상황은 꼬이기 시작한다. 무작정 올라왔는데도 남대문에서 김서방 찿는 것보다 쉽게 형을 찾은 동식은 이곳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갈 것을 형에게 제의한다.

그러나 단맛에 이미 익숙한 형은 거절하고 동식의 고민은 깊어진다. 동식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 지면서 소냐는 형보다는 동식에게 마음이 끌린다.

잡놈 스타일의 형보다는 학구파 냄새를 풍기는 동생이 더 호감이 간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유혹이라는 것을 한다. 말하자면 형수가 시동생을 어찌해 보겠다는 수작이다.

앞서 소냐 역의 최은희를 팜므파탈의 원조라고 했던가. 그녀 앞에서 동식은 한낮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그녀의 리드에 처음에는 거부하는 듯 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나중에는 그녀의 몸을 탐하지 않을 수 없다.

"날 꼭 껴안아 줘요."

"동식의 머리에서는 무르익은 옥수수 냄새가 나."

이런 말을 소냐에게 듣는다면 동식이아닌 그 누구라도 구렁이 담 넘듯이 어물쩍 넘어갈 수밖에.

 

동식의 젊은 피는 소냐의 몸을 더욱 꽃 피우고 그녀는 대담하게 동식에게 함께 이곳을 탈출하자고 작당 모의를 한다. 괴로워 하는 그에게 이미 엎어진 물이라고 달래는 소냐의 그릇은 대범하다.

홍콩이든 그 어디든 여기를 떠나 도망가자고 꼬드긴다. 동식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형의 여자를 데리고 도망가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한편 형은 한탕 크게 일을 벌일 작정을 한다.

쏠쏠하게 돈을 벌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군수물자를 털어 단번에 일확천금을 얻고자 한다. 그는 일당을 불러 모아 놓고 대열차 강도 작전을 진두지휘한다.

소냐는 헌병대에 전화를 건다. 밀고다. 기둥서방의 성공보다는 실패를 원한다. 형이 없는 세상에서 동생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다. 여보, 라고 불렀던 형은 이제 남이고 도련님이 내 사랑이 됐다.

그녀의 웃음 뒤에는 이런 살벌한 결기가 새겨 있다. 초반 작전은 순조롭다. 열차를 세우고 물건을 트럭에 옮겨 싣는다.

그러나 도주는 어렵다. 헌병의 짚 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흙먼지를 날리면서 화면을 가득 채운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과 트럭을 따르는 미군 헌병 차량의 행렬은 긴장감 바로 그것이다.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고 젖은 어깨를 들썩일 수밖에 없다. 작전은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영식은 이 모든 원인이 그녀, 소냐에게 있음을 안다.

총을 맞아 비틀거리면서도 누르면 뛰어나오는 재크 나이프를 꺼내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찌른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미움 때문이었다.

이미 동생과 그런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용서를 했는데 작전까지 방해하니 죽기싫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살려 둘 수 없다. 둘은 죽어 가고 있다.

이때 동식이 진흙탕 속으로 헐레벌떡 다가온다. 동식은 과연 누구를 품에 안을까. 사랑해서 함께 도망가자고 외쳤던 소냐인가, 아니면 피붙이 형인가.

당신이 동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기준은 오로지 뛰는 가슴에만 맡겨야 한다. 그러나 동식은 사랑이 아닌 피를 찾았다.

소냐는 죽어서도 사랑을 얻지 못했다. 소냐가 지옥에 떨어질 만큼 잘못을 저질렀어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적어도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연옥 정도로 격상돼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나의 생각일 뿐이지만 그녀는 적어도 진흙탕에서 한때 사랑했던 남자의 칼에 찔려 죽어야 할 운명은 아니다.

그러나 신상옥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이런 여자는 그렇게 결말을 맞아야 한다고 믿었다.

국가: 한국

감독: 신상옥

출연: 최은희, 김학, 조해원

평점:

 

: 전쟁의 비극으로 <지옥화>가 피어났다. 

미군이 진주했고 그들을 위해 사방에서 꽃봉오리가 열렸다. 그런데 그 꽃은 독초여서 죽음과 또 다른 죽음을 연달아 불러왔다.

양공주는 화장을 하고 분 냄새를 풍겼다. 미군들은 수시로 그녀의 거처를 들락거렸고 그들이 가고 난 자리에는 달러 냄새가 가라앉았다.

기둥서방은 숨어서 미군이 가기만을 기다렸고 소냐는 그런 그를 밀쳐 내지 않았다. 기지촌과 그 주변에서 기생하는 양공주와 기둥서방의 역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가지각색의 향수병과 뾰족구두와 핸드백이 어울리는 빵긋 웃는 얼굴의 그녀, 가는허리와 껌을 질겅질겅 씹는 어여쁜 멋쟁이 아가씨의 삶은 길지 않고 짧았다.

사랑했었던 남자의 칼에 찔려 죽을 때 그녀가 쓰러진 자리는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했다. 다른 남자에게는 몸은 주어도 마음은 그러지 않았던 소냐는 마음 까지 준 동식에게 철저하게 배반당했다.

동식은 그녀의 죽음을 무시하고 다른 양공주와 함께 버스를 타고 시골로 내려갔다. 그가 내려갈 때 그는 웃고 있었고 미래는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건달패가 부르는 하모니카 곡은 손목인이 작곡하고 송민도가 부른 ‘양공주 아가씨’라는 노래라고 한다. 가사는 볼 수 있으나 노래는 들을 수 없어 아쉽다.

가난과 돈벌이. 남대문, 서울역 인근의 인력거. 선풍기, 당구, 카드놀이, 잡지, 선글라스, 수영, 맥주, 댄스홀 등의 풍경이 정다운가. 배가 흔들리는 것으로 정사를 대신 모여주는 감독의 솜씨는 과연 신상옥이다 하는 감탄을 불러온다.

과감한 노출신과 러브신, 카바레 공연에서 보여주는 댄서의 화려한 몸짓과 의상, 그리고 최후의 순간에 벌이는 추격전과 살인의 순간은 스릴러 영화의 진수라고 평해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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