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sight
전체뉴스 의약정책 제약산업 의사·병원 약사·유통 간호 의료기 한방 해외의약뉴스
최종편집 : 2019.7.21 일 06:00
연재
84. <배따라기> (192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발행 2019.07.11  15:04:18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구글 msn

사람은 후회하고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온다. 제일 힘센 것이 운명이라며 운명을 핑계 삼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김동인의 <배따라기>에 나오는 형만 해도 그렇다.

못된 짓을 수시로 했고 그 결과가 예견됐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다음 배따라기를 목청껏 부른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죄에 대한 벌치고는 너무나 낭만적이다.

조선시대 아니 일제 강점기 시절 한가하게 뱃전에서 노래나 부르는 이 남자 과연, 용서할 수 있을까. 아내를 죽음으로 내몰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떠나게 만든 죄는 작지 않고 크다.( 동생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같이 떠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바람피우는 동생도 바른 선생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는 일기 좋은 봄이고 장소는 북쪽 평양성이나 을미대 혹은 대동강이나 모란봉 인근이다. 한 남자의 목소리가 구슬프다. 죄를 지은 그 형이 배따라기를 부른다. 화자인 나는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청한다.

감출 일이 아니라면 얽힌 사연에 대한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그렇게 해서 형제의 슬픈 과거가 소설로 세상에 나왔다.

나는 문제적 황제 진시황을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 혹은 사람의 위대함을 끝까지 즐긴 사람, 인생의 향락자, 역사 이후의 제일 큰 인물로 평하는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토피아를 생각할 만큼 한가한 상태다. 그러니 형의 이야기에 고집을 부려 구태여 빼거나 더할 이유가 없겠다.

느긋한 마음으로 들어줄 준비가 된 나에게 사내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19년 전 팔월 열하룻날의 일을 털어놓는다. 그가 살던 곳은 바다를 접한 조그만 어촌으로 30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조실 부모했으나 형제는 고기잡이도 잘하고 글도 읽고 배따라기 노래도 제일 빼어나게 부르고 살림도 넉넉한 부자로 살고 있다.

마침 팔월 보름이라 형은 명절에 쓸 장도 보고 아내가 부탁한 거울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길을 걸을 때 그는 기분이 좋았다. 생각만 해도 예쁜 아내를 위해 당손네 집에 있는 거울보다 더 큰 거울을 사다 주리라 다짐했다.

늙은이들이 계집에게 혹하지 말라고 권고하거나 말거나 그가 아내를 고와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아내는 얼굴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마음 씀씀이도 그랬다. (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에도 예쁜 새색시가 등장한다. 색시는 미인이었기에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고 그것이 싫었던 신랑은 사랑하기보다는 매질했다. 여기 있는 형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못난 남편이다.)

아무에게나 애교가 만점이고 쾌활한 것은 타고났다. 천진난만한 아내를 그는 좋아하면서도 시샘했다. 불안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명절날이면 집이 청결하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아내에게 ‘아즈마니’라고 부르고 아내는 ‘아즈바니’, ‘아즈바니’ 하고 어울리고 즐겼다. 웃는 그 얼굴이 얼마나 다정스럽던지 남편이 보면 마치 사랑하는 남녀들이나 하는 행실 같았다.

꾹 참았던 그는 사람들이 가고 나면 아내를 마구 팼다. 그가 판단하기에 그런 웃음은 나한테만 지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아내는 매를 맞아도 쌌다.

발길로 차도 화가 풀리지 않으면 그동안 사다 주었던 것을 거두어들이기도 했다. 싸움이 더 커지면 옆에 사는 아우가 찾아와서 말렸다. 그러나 형은 그런 아우 부처까지 때렸다.

여기서 잠시 김동인이 묘사한 아우의 생김새를 보자. 아우는 시골 사람 같지 않은 늠름한 위엄이 있고 바닷바람에 이골이 났어도 피부가 희었다.

그런 아우에게 형수는 특별히 친절했다. 의심의 기운이 형의 가슴에 뿜어져 나올 만도 했다. 어떤 날은 나중에 먹기 위해 남겨 놓은 맛있는 음식을 아우에게 주려고 했고 이를 보고 그러지 말라고 했음에도 아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트집만 있으면 이 년을...”하고 형이 마음 먹을만 하지 않겠나. ( 이런 형의 사정을 잘 아는 아내는 조심했어야 했다. 없는 데서는 몰라도 있는 데서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기회는 바로 왔다. 상을 물리다 아내는 남편의 발을 밟았고 그 이유로 그는 아내를 냅다 발로 걷어차 상위로 고꾸라지게 만들었다. “이년, 사나이 발을 밟는 년이 어디 있어!”

한바탕 싸움 끝에 집을 나가라고 고함치는 남편, 못 나가겠다는 아내. 잘못한 것이 있는 남편은 그런 아내가 밉기보다는 고맙다. 그래서 괜한 소리로 그럼 내가 나갈까 한소리 하고는 탁주집에 들어 한바탕 술을 들이붓는다.

그리고는 아내를 위해 떡을 사가지고 들어온다. 그러면 또 서너 달은 평화가 오고 깨가 쏟아진다. 그러나 그 평화 오래가기 어렵다. 앞서 아우의 외모를 설명했다. 왜 남자나 여자나 얼굴값 한다고 하지 않나.

그 희멀건 하게 잘난 아우는 인근 영유 고을로 출입이 잦더니 며칠씩 묵고 오는 일도 생겼다. 첩을 두었다는 소문이 퍼졌고 그 소문은 형의 아내 즉 형수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아내는 시동생이 그 마을에 들어가는 것을 벌레보다 싫어하고 심지어는 동생네 집에 찾아가 담판을 하고 동서에게 왜 못 가게 하지 않았느냐고 싸우기까지 했다. ( 이런 일은 동서가 해야 맞다. 그런데 형수가 오지랖이 넓다.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었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아우가 그런 곳을 다니는 것을 말리지 않는 남편을 못난 둥이라고 하면서 나무랐다. 트집 잡을 거리를 제대로 잡은 남편은 이년, 하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것은 첫 번째이고 악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거꾸러지도록 아내를 패대기치는 것은 두 번째 행동이다.

겨우 도망간 아내는 조신하게 몸을 사리는 대신 아우 집에 가서 시시덕거리며 놀다가 해가 져서 어두워 져도 집에 오지 않는다. 새벽 동터 올 무렵 부엌의 식칼을 들고 남편이 뛰어든다. 살인이 날 징조다. 그런데 마침 아내는 아우와 함께 있기보다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문밖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런 아내를 찌를 수 없던 남편은 이년, 하면서 머리채를 휘어잡고 집으로 와 뺨을 물어뜯고 이리저리 자빠져서 뒹구는 것으로 화를 푼다. ( 여기서 일단 한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이 일로 아내가 자숙하고 남편이 성질을 죽이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장담할 수 없다.)

자, 다시 장날로 돌아가 보자. 마침 마음에 맞는 거울을 산 형은 선물을 받고 기뻐할 아내를 생각하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는 마침 서녘으로 기울면서 새빨간 바다를 만들었고 분위기에 취해 그는 탁주 집도 안 들르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남편은 차마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떡 상 사이에 아우의 헝클어진 모습과 아내의 치마가 배꼽 아내로 늘어진 모습을 보고 만 것이다.

마주친 아우나 아내는 당당하기보다는 안절부절못하는 것이 꼭 무언가 훔치다 들킨 도둑 같은 표정이다. 세 사람은 한동안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아우가 겨우 한다는 말은 “그놈의 쥐 어디 갔니?”뿐이었다. 아무리 바보라도 그 상황에서 쥐 운운하는 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위인이 어디 있을까.

치정을 확정한 남편은 아우와 아내를 사정없이 때리고 또 때렸다. ( 이 글을 쓰는 즈음 베트남 아내를 마구 때리는 한국 남편의 장면이 퍼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은 물론 한국에서도 크게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그리고는 물 고기밥이나 되라며 내쫓았다. 그렇지만 그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왜 맞은 자는 다리를 뻗고 자도 때린 자는 그러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무슨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그는 기다렸다. 어둠이 왔다. 남편은 불을 켜기 위해 성냥을 찾다가 쥐 한 마리가 ‘후덕 덕’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아우와 아내는 그 놀이 대신 정말 쥐잡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떠난 아내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물고기 밥이 되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장사를 지낸 이튿날 아우도 떠났다. 그리고 10년 후 난파된 형은 아우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가 깨어났을 때 아우는 없었다. 그 뒤 삼 년이 흘렀다. 강화 인근을 지날 때 형은 동생이 아니면 부를 수 없는 배따라기 소리를 다시 들었다. 그날 이후로 형은 더는 아우를 볼 수 없었다.

나에게 배따라기를 불러 주었던 형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통일이 오면 을밀대와 기자묘 주변을 어슬렁거리면서 그가 깔고 앉아 한편으로만 누웠던 풀들을 쓰다듬어 보고 싶다.

: 아내가 의심의 소지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남편이 싫어하면 외간 남자에게 웃음 짓지 않았으면 이런 불상사는 없었다. (그렇게 믿어도 될까.)

특히 시동생과 붙어 지내는 것은 상피가 아니었다 한들 조신한 행동은 아니었다. 큰 사고 뒤에는 작은 수많은 징후가 사전에 도사리고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여러 번 경고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무시했다.

아내가 좀 더 남편의 말에 신경을 썼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죽은 아내 탓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당시 사회상을 보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고 외간 남자에게 눈길은 주어서는 곤란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굳이 하인리히 법칙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다 해도 남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두둔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 이런 팁은 내용의 본질과는 다르다는 것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자연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거나 유미주의적 관점이 두드린 진다거나 혹은 배따라기 민요를 통해 비극이 아름답게 승화됐다는 뭐, 그런 내용이 더 어울린다. )

한편 김동인은 <감자>에서도 질펀한 남녀의 애욕을 사실대로 그려 충격을 주었다. 송충이 잡이를 나섰던 복녀의 변신 과정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임을 감안해도 파격적이다. 그런 경험이 쌓여 감자 서리를 하다 왕서방에 이끌려 가는 장면은 전적으로 복녀를 탓할 일은 아니다.

김동인은 <감자> 외에도 <광염 소나타>라는 괜찮은 단편을 남겼다. 초기 우리나라의 단편 문학의 꽃을 피우는데 크게 공헌했다. 하지만 친일인명 사전에 이름이 올라 떳떳하지 못한 후세의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나 적극적인 친일로 인해 그의 작품은 빛이 바래고 있다. 작품과 작가는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전히 작품 만으로만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은 요새 들어 완전히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의약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 까지 쓸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너무 심한 욕설이나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운영원칙이죠.
회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기자윤리강령이메일무단수집거부
RSS HOME BACK TOP
발행소 : 서울 구로구 경인로 661 104동 1106호  |  전화 : 02-2682-9468   |  팩스 : 02-2682-9472  |  등록번호 : 서울아 00145
발행인 : 이 병 구  |  편집인 : 송 재 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강현구  |  등록일자 : 2005년 12월 06일  |  발행일 : 2002년 6월 23일
의약뉴스의 콘텐츠를 쓰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 됩니다. Copyright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mp@news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