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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상태와 같은 그런 감정이 찾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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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상태와 같은 그런 감정이 찾아 왔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7.08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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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섞이어서 들려 오는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가 귀를 세우고 그것과 다른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할 때 이번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텐트의 천장을 세게 때리는데 위에서 아래로 눌러 대는 힘이 느껴질 정도로 빗방울의 기세가 드셌다. 헤드 랜턴에 비친 천장은 물방울이 떨어지는 장면과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겹쳐 마치 어둠 속에서 여러 사람이 인형극을 펼치는 것처럼 혼잡스러웠다.

나는 앉았다가 다시 누웠다. 그리고 요란한 비와 바람과 천둥과 번개 속에서 어둠을 응시했다. 망망대해에서 일엽편주로 폭풍우를 만난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마음은 위기를 느낄 만큼 급박하지도 흔들리지도 않고 되레 차분하기만 했다. 심각한 상황에서 정신적 공황상태를 만났을 때 흔히 사람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이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래서 느긋해졌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차분한 마음으로 나는 밖의 상황을 지켜봤다. 텐트는 방수가 잘 되고 있고 배수 역시 문제될 것이 없었다. 능선의 양쪽은 많은 물이 한꺼번에 흘러도 넘치지 않고 아래로 흘렀다.

문제는 묶어놓은 밧줄이었다. 혹여 한쪽이라도 풀려나가면 텐트는 균형을 잃고 쓰러질지도 몰랐다. 왼쪽 상단의 움직임을 주시한 것은 그쪽에 묶은 나무가 굵지 않고 손목만 한 굵기였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온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갔다. 밖으로 나가려는 기세는 한풀 꺾였다. 굳이 나갈 이유도 없었다. 비바람을 맞고 광야에서 소리칠 일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 합리화가 앞섰다. 그래서 나는 오래 더 누워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그러기 전에 어림짐작으로 지금은 몇 시쯤일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처음에는 새벽 1시 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3시쯤으로 수정했다.

약간 잠이 들었던 시간도 있었고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불었던 시간까지 계산에 넣었다. 그러다가 아직 3시는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두시 반쯤으로 정정했다.

시계를 보려다 말고 나는 다시 그 시간을 3시 30분으로 늦췄다. 3번 변경했으므로 나는 더 그럴 생각도 없었고 마지막 시간이 맞았으면 하고 바랐다. 맞는다고 해서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었고 틀린다고 해서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맞았으면 하는 기대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시계를 천천히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야광판의 불빛이 선명했다. 랜턴까지 끈 상태였기 때문에 텐트 안은 말 그대로 암흑천지였다.

인공의 불빛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시침과 분침을 확인했다. 그리고 초침의 가운데 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시침과 분침과는 달리 초침은 전체가 야광으로 채워지지 않았고 끝부분만 원형으로 희미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눈을 가까이 대고 자세히 보아야 했다. 초침은 무심했다.

쉬지 않고 말 그대로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방향을 따라 나도 눈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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