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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손목을 들어 움직이는 초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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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손목을 들어 움직이는 초침을 보았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6.14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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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침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라는 것이 참으로 잘 간다는 생각이다. 가만히 있어도 가는 것이 시간이다. 새삼스럽게 나는 이런 사실을 깨닫고 가는 시간을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앞으로 13초 후면 자정이다. 언제나, 매일 오는 자정이 무슨 색다른 의미를 둘 수 있는가하고 물을 수 있지만 자정은 하루가 끝나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다른 시간과는 다르다.

무서운 사건은 대개 자정 전후에 일어나지 않는가. 자정의 종소리가 막 울릴 때 범죄자가 칼을 뽑고 무시무시한 범행을 저지른 장면을 나는 떠올렸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자정이다. 그러나 초침은 자정을 지나 또 무심하게 그렇게 흘렀다. 어떤 범죄도 어떤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무언가 일어나기를 기다렸으나 그러지 않을 때 오는 허탈감이 엄습했다.

하루종일 산에서 허둥댔으나 눈은 되레 감기기보다는 더 말똥말똥 했다. 이러다가 서너 시간을 그냥 누워 있어야 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사실 내가 자정을 눈여겨본 것은 범죄가 일어나는 시점을 상기해서가 아니라 절대자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혹시 절대자가 이 근처에 왔다면 망설일 이유 없이 기척을 했을 것이고 그 시간을 나는 자정쯤으로 정해 놓은 것이다.

상대방의 의견이나 동의도 없이 나는 무작정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했다. 그러니 그 결과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나는 휴가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절대자와 또 한번의 만남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서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해 주지 않는 한 나에게는 일말의 희망도 없었다.

무언가 기대할 수 없는 미래는 현재를 비참하게 만든다. 나는 비참한 것을 싫어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행복하게 사는 삶은 원하는 것은 나쁜 것은 아니다.

바른길을 가지 않을지언정 나쁜 길로 접어들지 않은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더구나 나는 지구 혹은 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해 절대자를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갖고 있다.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한다면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거부하거나 의도적으로 회피할 생각은 없다. 다른 누구가 또한 그런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이미 두 번이나 절대자를 만난 경험이 있다. 절대자도 익숙한 것이 편할 것이다.

나이도 많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도 시간이 걸리고 형식이라는 것을 조금은 차려야 하기 때문에 절대자는 별다른 이유가 없는 한 카운터파트너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자정을 기다렸던 것이다. 설악산 공룡 능성의 어느 한 지점에서 비박을 하고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만나는 절대자는 어떤 극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물론 주고받는 합의는 아니다. 일방적으로 부탁하고 설명하고 그래서 절대자가 그렇다고 이해하면 절대자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것은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는 합의나 담판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나는 다시 손목을 들어 움직이는 초침을 보았다.

그 사이 시간은 흘러 13분이 지나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는 초침을 나는 전처럼 무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무슨 기척 같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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