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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홍염>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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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5.30  14: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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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에는 고향을 떠나는 것이 아주 심각한 문제였다. 으레 뼈를 묻는 곳이 태어난 데라고 여겼는데 아닌 상황이 왔을 때 사람들은 당황했다.

전쟁과 기아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어머니 품과도 같은 고향을 등질 때 사람들은 모진 인생을 서러워했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으며 나라를 원망했고 보란 듯이 살아 돌아와서 떵떵거리고 싶었다. 그러나 금의환향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대개는 한번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문 서방 일가족도 그런 경우였다. 경기도에서 이곳 서간도로 이주 한지도 벌써 3년째가 됐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세간을 정리하고 아내와 어린 딸을 데리고 왔다. 등짐을 지고 머리에 인 남부여대의 행렬은 초라했다.

그들을 동정하는 눈길은 사방에 있었을 테지만 여비에 보태쓰라고 줄 돈은 없었다. 그들도 떠나는 그들처럼 어렵기는 매한가지였다. 남의 논을 부쳐 소작농 생활을 정리하면서 문 서방은 이 지긋지긋한 삶을 바꿔줄 꿈의 장소로 먼 이국땅을 택했다.

그가 왜 이곳을 정착지로 정했는지는 잘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경쟁이 덜 심하고 땅이 넓어 부지런만 하면 세 식구 먹고는 살 수 있겠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게다.

이들이 강을 건넜을 때 국경의 밤은 매우 찼다. 그곳에 정착했을 때 그들의 꿈은 현실과는 너무 달랐다. 아차 싶었지만 너무 늦었다. 그 많은 땅 어디나 모두 주인이 있었으며 곡식 한 톨 심기 위해서는 소작을 부쳐야 했다.

고향 경기도와 수천 리 타향 백두산 서북편 서간도 한 귀퉁이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중국인 인가의 소작농으로 연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도 진 빚을 갚기는 늘 부족했다.

인가는 수시로 찾아와 갚으라고 독촉했고 그러지 못하는 문 서방은 늘 굽신거렸다.

얻어터지고 깨지면서 내년에는 꼭 갚겠다고 손발이 닿도록 빌었다. 다른 조선인도 다 빚을 졌지만 문 서방에게는 인가가 더 가혹하게 대했다. 문 서방의 17살 난 딸 용례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오늘도 문 서방을 추궁했다. 당장 달라고 했고 지금은 어렵다고 사정했다. 그러자 인가가 그렇다면 네 껍질을 벗기겠다고 협박했다.

말로 그치지 않고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렸다. 갸날픈 문 서방은 버티지 못하고 맞고 쓰러졌고 그 광경을 떨면서 지켜보던 아내는 인가를 잡고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했다.

인가는 그러는 문 서방의 아내를 그럼 너를 아내로 삼자고 잡아끌었다. 목불인견의 세상이었다. 용감한 용례가 나섰다. 어머니를 끌고 가는 인가의 손목을 물었다.

인가는 그러는 용례를 끌고 자기 집으로 갔다. 낯빛이 하얗게 질린 흰옷 입은 사람들은 시체처럼 서 있기만 할 뿐 누구하나 제지하지 못했다. 그날 부부는 그 집 담장 너머에서 ‘너를 이 땅에 데리고 와서 개 같은 놈 에게’ ...하는 말만 밤새 지껄였다.

어느 날 문 서방은 어디론가 향해 가고 있다. 강을 건널 때 중국인 썰매 꾼들은 문 서방에게 조선 거지 어디 가느냐고 놀렸다. 욕을 했다. 그의 행색은 거지와 다름없었다. 옷은 헐었고 쓴 벙거지는 낡았다.

그가 갈 때 바람은 몹시도 불었다. 눈보라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 이 대목에서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가 떠올랐다.) 북극의 겨울은 얼음장처럼 추웠다. 아마도 더 추운 것은 마음일 테지만 지금 당장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게딱지처럼 붙은 조선집 대여섯 채가 보였다. 목적지에 가까이 왔다. 사위라고 부를 수 없는 인가가 사는 달리소 땅이다. 조선 사람이 먼저 맞았다.

그러나 반기는 대신 썰매 꾼처럼 대뜸 욕지기였다. 더러운 놈, 되놈에게 딸 팔아먹은 놈.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렇게 문 서방을 대했다. (대한다고 생각했다.) 온 동네가 나서서 자신의 뒤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관운장과 장비를 무섭게 그려 붙인 인가의 집 앞에 문 서방이 섰다. 뼈다귀를 핥던 얼룩 개와 또 다른 여러 마리의 개가 으르렁거렸고 어떤 놈은 달려들어 바짓가랭이를 물기도 했다. 가새비( 장인) 가 왔으나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일꾼들과 의론하던 인가는 마지못해 아는 체를 했다. 담배도 한 대 권했다. 그는 사위라고 부르는 대신 장구재(주인)로 인가를 호칭하면서 아픈 아내가 용례를 보고 싶어 한다고 애걸했다.

인가는 거절했다. 꼭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 이 대목에서 강산애가 부른 ‘라구요’ 라는 노래가 자꾸 입 언저리에서 맴 돌았다.) 는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문 서방은 기가 죽었으나 속으로는 부뚜막의 낫으로 녀석의 배를 확 긁어 놓고 싶다.

그 집을 떠나며 문 서방은 울었고 인가의 머슴들은 웃었다. 마당에서 인가는 문 서방에게 지폐를 주었고 문 서방은 받은 지폐를 더러운 놈의 더러운 돈이라며 찢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지금 먹고 사는 것도 다 인가 덕분이다. 용례가 끌려간 후 부쳐 먹는 밭도 인가가 특별히 챙겨 준 것이다. 용례가 있는 작은 집을 보면서 문 서방은 목놓아 서럽게 울었다.

개들이 짖었고 그런 개를 돌로 때려죽이고 싶었으나 작년 가을 조선 사람이 중국 사람 개를 죽이고 총살당한 일이 떠올라 그러지도 못했다.

문 서방이 헛걸음 하고 돌아온 날, 아내는 미친 사람처럼 용례를 부르다가 죽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 이튿날. 회오리바람이 불고 차디찬 별들이 총총한, 밤이 퍽 깊은 시각.

한 남자가 인가네 낫가리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다. 불은 활활 타올라 보릿짚 더미를 사르고 울타리를 넘어 집을 살랐다. 불이야, ( 이 대목에서는 옥슨 80이 부른 ‘불놀이야’ 노랫말을 흥얼 거렸다.) 하는 고함 소리. 그 와중에 두 남녀가 불 속에서 튀어나온다.

숲속에 숨어 있던 남자가 번개같이 달려 나와 도끼로 한 사람의 머리를 찍는다. 그리고 옆에 있던 용례를 안는다. ‘나다, 아버지다, 용례야.’ 이 장면은 최서해의 <홍염>의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한 마디를 더 붙인다.

“그 기쁨! 그 기쁨은 딸을 안은 기쁨만이 아니었다. 적다고 믿었던 자기의 힘이 철통같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자기의 요구를 채울 때 사람은 무한한 기쁨과 충동을 받는다.”

: 고향을 떠나는 소설은 많다. 존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 역시 그런 작품이다. 먹고 살기 위해 온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떠날 때 눈물 콧물이 사정없이 흘러내렸다. ( 이 장면에서는 마마스 앤 파파스가 부른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따라 부르게 된다고 언젠가, 어느 장면에서인가 읊조린 적 있다.)

그곳에 도착해서 삼시 세끼를 위해 악전고투를 벌이는 조드 일가의 슬픔이 <홍염>을 읽는 내내 겹쳐졌다. 소작농이었고 지주의 횡포가 있었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난다는 점에서 서로 같았다.

갔던 곳이 생각했던 곳보다 비참했고 그래서 그들 가족이 해체됐던 것도 같다. 주인공이 살인하고 살인의 정당성을 받쳐 주는 것도 같다.

가진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대결과 투쟁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동서양의 거리만큼이나 시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그것까지 논할 수는 없다. 그러니 그만.)

최서해는 초기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이끌었다. 말랑말랑하고 이상적인 부르주아 계몽 문학이 힘을 잃은 자리를 치고 들어왔다. 계급과 민족의식이 두드러진다.

작가는 1918년부터 23년까지 간도에서 살았다. 이 작품은 그런 체험의 결과다. 그곳에서 그는 밑바닥 생활을 했고 그것이 민중을 그려내는 작품 속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그의 초기작 <탈출기>도 눈여겨봐야 한다. 서간문 형태의 글은 그가 왜 집을 탈출하고 무슨 무슨 단에 가입했는지는 밝히고 있다.

현실의 체념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이유로 들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삶, 그런 삶이 자식까지 이어질 때 죽은 송장으로만은 살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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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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