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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짝코(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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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5.28  08: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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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이면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무시무시한 일을 겪고 잊을 만한 시기는 보통 한 세대가 지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시기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육이오를 상기하지 못했다. 누군가 말해도 시큰둥했다. 속된말로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반항하는 마음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에서 학살이 자행됐다. 광주도 또 한 세대가 훌쩍 지나갔다.

내가 한국전쟁을 그렇게 대했듯이 한 세대 아랫사람들 역시 광주를 그렇게 대했다. 경험하지 못했던 것과 경험한 것의 차이는 실로 엄청났다.

한국전쟁은 무심해도 광주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월은 치유하는 약처럼 목불인견의 참혹한 시절도 잊게 하고 무덤덤하게 만들고 있다.

임권택 감독의 <짝코>를 보면서 느낀 것은 그런 이중적 감정이었다.

제목의 <짝코>는 말 그대로 코가 짝짝이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엄연히 백공산이라는 이름이 있는데도 짝코( 김희라)로 불리는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북쪽의 편에 섰던 인물이다.

비하하는 듯한 별명이 붙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는 다른 적들은 모두 죽었는데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잔당 몇몇을 데리고 대장 노릇을 하면서 산속에서 최후까지 저항하고 있다.

남쪽의 입장에서 보면 하루 빨리 멸해야 할 적군들이다.

전투의 막바지 지점에서 송기열(최윤석)이 혁혁한 전과를 올린다. 경찰 특공대로 그는 짝코를 생포한다. 그 전의 공과 새로운 공이 더해졌다. 그는 특진은 물론 앞날의 보장을 기대해도 좋다. 상사는 물론 자신도 당연히 그러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했다.

짝코의 노련한 술책에 넘어가 그를 놓친 것이다. 뒤로 결박해 상부로 압송하던 그를 잠시 풀어준 것이 화근이었다.

발가락에 낀 두 개의 금가락지가 원수다. 노련한 짝코는 그것을 뇌물이 아닌 뒤를 보러 가는 대가로 주겠다고 제의한다. 인간의 생리를 보장해 주는 것은 비록 적이지만 잘한 결정이었다고 기열이 생각할 즈음 뒷박치기가 날아온다.

기열은 피범벅이 되고 이빨이 빠지는 수모를 당하면서 짝코를 놓친다.

당국은 노발대발하고 그를 파면한다. 기열은 모든 것을 잃었다. 그동안 공을 생각해 이것으로 끝난 것만 해도 다행이라지만 그는 전혀 다행스럽지 않았다.

경찰복을 벗자 억울함이 밀려왔고 그것을 참지 못하고 행패를 부렸고 술을 먹다가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그를 잡아 명예를 회복하려는 필생의 추격도 실패로 돌아갔다. 세상 어디에도 그는 없다.

속절없이 세월은 흘렀다. 그는 부랑자 신세로 거리를 떠돈다. 어느 날 고주망태가 되어 쓰러진 그에게 경찰이 다가선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모아 두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죽어서야 나오는 갱생원이다. 그곳에서 기열은 그가 놓친 짝코를 만난다. 신분을 세탁하고 지낸다고 해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친 그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한눈에 짝코를 알아본 그는 눈에 생기가 돈다. 죽이지도 생포하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망실공비가 바로 눈앞에 있다. 당장 체포해야 한다. 그는 수첩을 꺼내 들고 읽는다. 마치 영장 집행을 하는 수사관처럼.

“본적 전남 영광군 진원면 주소 본적과 동 본명 백공산 일명 짝코 직업 대장간 생년월일 1925년 10월 29일생 학력 무학 짝코의 죄상 1950년 동란이 발발하자 고향 진원리에서 놈들의 앞잡이로 대장간에서 만든 흉기를 보급 수많은 양민학살 동년 9월 28일 수복되자 빨치산으로 입산 속칭 짝코 부대의 두목으로 약탈, 방화, 살인, 무도한 만행을 자행 1953년 7월 30일 체포돼 압송 중에 도주.”

숨 돌릴새 없이 여기까지 읽고 나서 기열은 두 눈을 부르르 떤다. 백공산은 미친놈 짝코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기열은 마저 읽는다. 인상착의: 신장 1 미터 60센티. 눈썹이 짙고 눈이 부리부리함. 입술이 두툼한 정방형의 얼굴에 ... 듣고 있는 짝코가 벌떡 상체를 세운다. 병신 지랄하고 있네. 지가 무슨 수사반장이라고.( 이즈음 최불암 주연의 수사반장이 인기리에 엠비시에서 방송되고 있었다. 모여선 사람들이 한바탕 웃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열은 계속 한다.

한쪽 코가 유난히 크고 그 위에 사마귀가 달려 있음. 이상의 증거로 짝코를 체포한다. 포승을 받아라. ( 그러나 포승줄은 없다. 항상 가지고 다녔으나 입소 전에 압수 당했다.) 그리고 이빨을 빼서 그날의 현장을 상기시킨다.

"니놈은 30년 전 지리산에서 도망친 망실공비여."

이 말을 하면서 달려들다가 되레 떠밀려 쓰러진다. 짝코는 이미 그곳에 숙달돼 있다. 미친놈 육갑하네. 다른 제소자들은 짝코의 말을 믿고 기열을 바보 취급한다.

그날 저녁, 기열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경찰이 됐고 적을 토벌하고 공을 세우고 짝코를 체포하고 그리고 저승길처럼 뒷간길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가줄 수 없다며 인정을 베풀다 놓친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진진하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어느 날 짝코는 죽으면 눈을 기증하겠다는 말을 한다. 기열은 분노한다. 살인자의 눈깔, 빨갱이의 눈깔 기증은 절대 안 된다고 흥분한다.

이즈음 입소자들도 기열이가 미친 자가 아니고 백공산이 망실공비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한다.

짝코가 펄쩍 뛴다. 기열이 수첩에 적은 것을 읊조렸던 것처럼 짝코도 자신의 경력을 떠벌인다.

“여러분들 내 이력을 잘 알지 않은가. 1950년 공산군이 남침 허자 당당히 국군에 입대, 수복이 될 때까지 낙동강 전선에서 적과 싸웠고 휴전이 되자 예비역 육군 상사로 무공훈장을 받고 제대한 나의 이력을 말이여.” ( 이 장면은 기열이 수첩에 적은 것을 읽고 떠들 때 만큼이나 박진감 있다. 연기력은 물론 발음도 좋아 보고 듣는데 매우 만족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듣고 난 재소자들은 다들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송씨말 듣고 보니 의심이 간다며 백공산을 노려본다. 그래서 날 고발하겠다고. 짝코가 버럭 고함을 친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재소자가 이렇게 중얼거린다. 다 같이 죽어가는 마당에 이제와서 빨갱이면 뭐하고 망실공비는 뭐하냐. 30년 지난 세월이다. 피장파장이다.

과연 기열은 망실공비를 체포해 누명도 벗고 빠진 이에 대한 원한도 값을 수 있을까. 망실공비는 순순히 자신의 죄업을 뉘우치고 기열과 화해하고 법의 심판을 받을까.

국가: 한국

감독: 임권택

출연: 김희라, 최윤석

평점:

: 갱생원 생활 중간, 중간에 감독은 이 들 두 사람의 행적을 그려 넣는다. 지리산의 전투와 가족관계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의 일들.

마을에서 영웅이었던 기열은 옷을 벗고 나서 형편없이 망가진다. 가족을 돌보기는커녕 패대기치고 술에 젖어 살며 이유 없이 행패를 부린다.

그 와중에 처형은 우물에 빠져 자살하고 가족은 해체된다. 기열이 보기에 짝코는 정말로 철천지원수,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인간이다.

짝코 역시 전쟁으로 인생 전체가 망가졌다. 그 역시 가족이 해체됐다. 원하지 않은 전쟁의 피해자들.

어쩔 수 없이 이편이나 저편에 서서 서로 상대를 죽였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는 그만 화해하라고 악수를 청한다.

그러나 내밀기도 내민 손을 맞잡기도 여전히 어렵다. 영화가 나온 1980년은 어두운 시절이었다. 독재의 칼날이 가차 없었다.

이런 엄혹한 시기에 화해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감독의 용기라고 해야겠다. 임권택 감독 자신이 태생적 핸디캡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런 주장을 편 것은 <짝코>의 작업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이었는지를 반증한다.

그러나 <짝코>는 여로모로 미완성인 작품이다. 초반 30여 분은 기세 좋게 치고 나갔다. 빈틈이 없고 긴장감이 팽팽하고 배우의 연기가 좋다. 그런데 중반부로 가면서 어딘가가 빠진 듯한 허술한 인상을 주며 이런 느낌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어리숙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이 들 즈음 최근 감독의 말을 빌려 보면 여기저기 가위질 당했다. 그러면 그렇지. 앞뒤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누군가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잘랐기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의 숱한 작품 가운데 리메이크 하고 싶은 작품으로 <짝코>를 꼽고 있다.

영화는 누더기가 됐지만 나름대로 작품성을 확인했다. 이데올로기가 뭔지도 모르고 남북이 갈려 죽기 살기로 싸웠던 지난날의 아픔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혜은이가 불러 히트한 ‘제3 한강교’ 노래가 배경음으로 나온다.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 한강교 밑을...’ 따라 불러본다. ( 제3 한강교는 84년 지금의 한남대교로 개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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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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