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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봄 봄>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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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5.10  13: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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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무르익었다. 세상은 온통 초록이다. 씨암탉은 알을 낳고 수탉은 싸움질이 한창이다. 개구리는 튀어나오고 논은 써레질하는 황소의 거친 숨소리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오뉴월 죽순 자라듯 하루해가 다르다. 그러나 점순이는 아니다. 삼 년 하고 꼬박 일곱 달이 지나도 그 전과 매한가지다. 나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우리의 예비 장인 봉필이의 핑곗거리에 맞설 이유가 마땅찮다.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

이 한마디면 나는 맥이 그만 탁 풀리고 만다. 일이고 지랄이고 만사 팽개치고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러다가도 그동안 데릴사위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한 시간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한다. 뒤통수만 긁적거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장인님! 인제 저 장가 좀...”

다른 이유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일을 좀 더 잘하라거나 밥을 적게 먹으라는 잔소리는 그러마, 하고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점순이가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말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키를 잡아 뽑을 수도 없고 키 높이 구두를 신길 수도 없다.

딱히 정해 놓은 기간도 없다. 덮어 놓고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겠다고 하니 그 키가 언제 자랄지 누가 알겠는가. 내 나이 벌써 26살이다. 지금 가도 늦장가인데 올해도 성례는 틀렸다. 위로 크지 않고 옆으로만 벌어지는 점순이의 몸이 원망스럽다.

자를 가지고 재보고 싶어도 남녀는 내외한다고 하니 마주 서서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어쩌다 우물가에서 마주치면 “제- 미 키두!” 하고 헛바람을 넣는 것이 고작이다. 개돼지는 잘도 크는데 점순이는 왜 이리도 늦는지, 논둑에다 퉤 하고 침을 뱉는 것으로 화를 달랜다.

어느 날은 치성이 부족하다 싶어 성황당에 가서 점순이 키를 크게 해주면 다음에는 떡을 갖다 놓고 고사 드리겠다고 약조까지 했다. 그렇게 치성을 들였건만 점순이는 내 겨드랑이 밑에서 넘을락 말락 밤낮 요 모양 요 꼴이다.

모를 내다가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논둑으로 엎어져 버리는 심정 독자들은 알 것이다. 아프다는데 그까짓 모판이 다 무어야 그런 심산이다.

그 와중에도 다리에 붙은 거머리를 풀을 쓱쓱 뜯어 떼어내는데 장인님의 얼굴이 코앞에 와서 성난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눈치 빠른 봉필이가 나의 이런 꾀병을 모를 리 없다.

대뜸 욕지거리다.

“너 이 자식 또 이래 응?”

우리 장인님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부뚜막의 부지깽이도 나와서 일을 도울 만큼 바쁜 농번기에 난데없는 심술에 봉필이가 첨벙첨벙 논에서 달려 나온다.

그리도 대뜸 멱살을 잡고 따귀를 올려붙이는데 벌건 대낮에 눈에 별이 번쩍인다. 지금 모를 내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니 봉필이의 다급한 심정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함에도 나는 심히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손버릇이 못된 장인놈 아닌가. 사위한테 이 자식, 이 자식 하는 욕설에 넌덜머리가 난다. 봉필이가 아닌 욕필이가 딱 들어맞는다.

생각 같아서는 한 주먹에 날려 버리고 싶지만 지금까지 일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점순이로 치면 그렇게 예쁘다고는 할 수 없어도 개떡 뭉친 것도 아니고 딱 내 수준에 맞는, 볼수록 귀여운 이팔청춘이 아닌가.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봉필이는 조금 미안한 기색이다. 지난 가을처럼 일 안하고 그만 집으로 간다고 하면 낭패다. 할 일이 많은 농촌에서 공짜로 부려먹는 일 잘하는 내가 절실히 필요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늦잠도 자고 성깔을 부린 적이 있다. 그런데 영감탱이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돌멩이를 집어 던져 발목이 부러졌다. 사흘 동안 끙끙 앓았다.

그 제서야 울상이 된 장인님은 일 좀 해라, 그래야 가을에 벼 잘되면 너, 장가들이지 않겠니? 하고 또 꼬드긴다. 장가라는 말에 한달음에 일어나 밀린 일을 하루 만에 해치웠다.

그러면 가을이 왔을 때 정말로 혼례를 시켜줘야 하는 게 옳은 일이다. 문서로 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구두 약속도 약속이니 지켜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이는 거짓이 아닌 참이다.

그런데 하필 그때 물동이를 이고 점순이가 들어오는데 키가 난쟁이 똥자루에 버금간다. 담배통을 들먹이며 이때다 싶은 봉필이는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데리고 무슨 혼인을 한다구 그러니?”

장가고 뭐고 장인님을 맷돌에 내리꽂고 내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으나 이번에도 꾹꾹 참고 만다.

빈손으로 고향으로 가는 것도 꼴 사납다. 장가들러 갔다가 오죽 못났으면 쫓겨 왔느냐는 손가락질을 받을 게 뻔하다. 그래도 한 번 소리라도 쳐본다. 집으로 가겠다. 그러니 그동안 일한 품 삵을 달라.

호락호락한 장인이 아니다. “이놈아, 네가 데릴사위로 왔지 머슴으로 왔니?” 나도 지지 않고 대든다. “밤낮 부려만 먹고 성례를 시켜 줘야지유.” 답은 뻔하다. 그애는 안 크는데 낸 들 어쩌니.

하던 소리 또 한다. 결국 오늘도 내가 밑지는 장사를 했다.

그래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장인님이 헛소리하는 것은 아니다. 미워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그 전날 일만 생각해도 그렇다. 혼자서 화전밭을 일구는데 점순이가 새참을 내오지 않는가.

야릇한 꽃내는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 벌들은 붕붕 날고 바위틈에는 샘물소리 졸졸 흐르는데 이 봄날에 저기 아지리랑이처럼 점순이가 먹을 것을 가지고 살랑살랑 다가온다.

16살 우리 점순이, 내 색시가 저기서 손짓하고 오는데 내 가슴이 울렁울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키만 보면 울화통이 도진다. 남들은 잘도 크는데 점순이만큼은 왜 이리도 더딘지. 몸도 조신 한 것도 아니다. 밥을 엎어 돌밥을 먹이기 일쑤인데 오늘은 왠 일인지 성한 밥째로 밭머리에 곱게 내려놓는다.

누가 보는 사람도 없지만 이 순간도 내외를 해야 하니 서로 떨어져 있고 내가 밥을 다 먹고 나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점순이가 한 마디 쏘아붙인다. “ 밥 낮 일 만 하다 말텐가!”

“그럼 어떻게?”

나도 참 멍청이다. 점순이가 그렇게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 안 해도 알아야 하는데 겨우 한다는 것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되묻는 것뿐이다. 나도 참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성례시켜 달라고 해야지 뭘 어떻게?”

그래 점순이 말대로 오늘은 기어이 끝장을 내고 말자. 장인님, 아닌 빙장님을 모시고 구장님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자초지종을 말하고 현명을 판결을 요구했다. 내 장황한 이야기를 들은 구장님은 길게 길러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더니 기다리던 답을 내뱉는다.

“봉필씨, 얼른 성사시켜 주구려.”

옳다, 이렇게 되면 약싹 빠른 우리 봉필이도 빠져 나갈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 짐작은 이번에는 빗나갔다. 예의 그 한 방. “아 성례구 뭐구 기집애 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입맛만 다시는 구장님 대신 나는 용기를 내어 거진 사 년 동안 안 자란 키가 언제 크냐고 고함을 친다. 그러면 우리 봉필씨도 지지 않고 쐐기를 박는다.

“ 글쎄, 이 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보구 떼냐?”

캬, 이 쯤되면 두 발 두 손 다 들게 된다. 나는 결심했다. 더럽다. 더러워. 내 장가안가고 만다.

빙모님은 참새만 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애를 낳느냐고 장인님의 궁둥이를 확 밀어 버린다. 그런다고 화가 풀릴 리 없다.

땅을 얻어 부치다 떨어진 뭉태는 부추긴다. 임마 봉필이를 모판에 거꾸로 박아 버려라. 영득이는 일 년을 살고 장가 들었는데 너는 뭐니? 화난 집에 부채질이다. 차라리 우물에 빠져 죽어라.

그렇다고 홧김에 서방질할 수는 없다. 농번기에 남의 일년 농사를 망쳐 버리면 징역을 간다는 말 때문이 아니다. 딸 셋 가진 장인님의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여섯 살인 막내딸이 데릴사위를 들일 때까지 시간을 벌어야 하는 봉필이의 처지를 이해못하는 바도 아니다. 구장님과의 담판도 무위로 끝났다. 다시 점순이에게 방법을 묻는 수 밖에.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는 쓰다듬는 “수염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나는 바보인가. 일만 잘하고 말 잘듣는 어리숙한 바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점순이 한테 바보 소리 들으니 살고 싶지 않다.

누워서 무심히 흘러가는 하늘을 본다. 장인님이 일 안 나가고 그런 나를 보고 소리를 또 꽥하고 수탉처럼 지른다. 이 자식아, 남의 농사 버려주면 징역 간다. 가면 어때.

차라리 징역이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다. 화가 난 장인님이 지게막대기로 나를 친다. 밥을 잔뜩 먹어 딱딱한 배를 꾹꾹 찌른다. 아프다. 마음도 아프고 몸도 아프다. 옆구리를 차고 볼기짝을 후려친다.

더는 참을 수 없다. 일어나서 점순이가 일러준 대로 수염을 잡아 확 나꿔 챈다. 울타리 구멍으로 지켜보던 점순이의 반응은? 잘했어, 내 남편 착하기도 하지! 내 말 잘 들었으니 상 줄테야, 이리와.

이랬을까. 아니면 이 자식이 우리 아버지를 패. 너 혼 좀 나봐라 하고 뒤따라온 장모님과 함께 내 귀를 잡고 뒤로 당겼을까.

: 작품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나와 점순이의 혼례식 장면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폼 새는 그해 가을에는 나와 점순이가 분명 연지곤지 찍고 성례를 올렸을 것이다.

내가 장인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로 인해 장인님이 아픔을 참지 못하고 할아버지하고 외마디를 지르고 그 결과 내 머리가 터졌을 때 터진 머리를 불 솜으로 손수 지져주고 호주머니에 희연(담배 상표 이름) 한 봉을 넣어 준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 장인님 이시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착한 우리 장인님 이신가. 그리고 또 이런 말도 덧붙이셨다.

“올 갈 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말 말고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 얼른 갈아라.”

1935년 조광지에 발표된 김유정의 <봄 봄>은 많은 그의 단편 중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리숙한 데릴사위와 장인 봉필이가 점순이의 혼례를 놓고 벌이는 일대 희극은 읽는 내내 손에 배꼽을 쥐게 한다.

공짜로 노동력을 부려 먹으면서 키를 핑계로 점순이와 혼례를 미루는 봉필이의 수작질은 어리숙해 보이지만 똘똘한 ‘나의 투쟁’으로 서서히 종착점에 다다른다.

어린 점순은 알 것 다 알면서 좀 더 대시 하지 못하는 나를 충돌질 하지만 정작 중요한 싸움판에서는 나 대신 봉필이를 택해 나의 기대를 일순 무너트린다.

그러나 그게 다 김유정이 짜놓은 쫌쫌한 얼개인 것을 생각하면 그 시대 우리 문학의 천재 작가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다.

때는 왜정 시대, 일제의 잔학한 수탈이 절정에 이르고 우리 농촌은 일손 부족에 허덕인다. 그것이 다 왜놈 때문인데도 그런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현실회피나 무시 대신 좀 더 시대 분위기를 파고들지 못한 것을 애석해할 필요도 없다. 해학과 웃음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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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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