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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난파 기념관과 봄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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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19.04.17  11:4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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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단장한 돈의문역사박물관 옆길을 타고 조금 오르면 홍난파 기념관이 있다. 이층의 붉은색 벽돌집이 단아하다. 울뚝불뚝한 주변의 성냥갑 아파트와 비교해 보면 절로 실감이 난다.

그 옆에는 흉상이 있다. 흉상 아래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 문구가 있다.

읽어 보니 봉숭아를 비롯한 많은 가곡과 동요 백곡을 남겼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맨 아래는 인생은 짧아도 조국과 예술과 우정은 길다는 글귀로 마무리 되고 있다.

'고향의 봄'을 생각하고 '봄처녀'를 찾아서 들었다. 아름답고 처연하고 구슬프며 어떤 생기같은 느낌이 찾아오기도 했다.

본명이 홍영후이며 호가 난파인 그는 우리나라 음악의 선구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또 독립운동에도 조금 가담한 듯 싶다. 미국 유학 당시 흥사단에 가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일제로 부터 고문을 당했다. 이후 그는 독립대신 친일의 길로 갔다. 일제를 찬양하고 전쟁을 미화하고 독려하는 많은 곡을 남겼다. 1938년 이 무렵 '희망의 아침' 같은 친일노래도 작곡했는데 가사는 역시 그와 비슷한 길을 간 이광수가 작사했다.

난파 기념관을 오르는 길은 주변에 새 아파트가 생기면서 잘 정돈됐다.

산책로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피어 있고 봄처녀들이 수시로 오고 간다. 행여 그 처녀가 나를 찾아오는 것은 아닌지 가서 물어보고 싶은 어리석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꽃다발 한 아름 안고 봄처녀가 다니는 그 길목에서 '봄처녀'를 들으니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고뇌에 가슴이 아련하다.

일제가 없었다면 친일로 손가락질 받을 일도 독립운동으로 칭찬받는 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고 예술가들은 오로지 예술로만 평가를 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슬픈 과거가 모질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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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bgusp@newsm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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