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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2-12-09 18:50 (금)
그렇게 해서 이곳 깊은 산속에 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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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이곳 깊은 산속에 오게 됐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3.26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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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준비에 시간이 걸렸다. 3일을 산속에서 지내야 했으므로 먹는 것부터 시작해 잠자리까지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산에 이력이 났어도 오래전의 일이었다. 비박을 해 본 기억도 까마득하다. 그래서 배낭에 이것저것 꾸려 넣을 때는 새삼 작은 흥분이 일기도 했다.

벌써 마음은 깊은 계곡 속에 있었다. 능선을 넘어 또 다른 능선으로 향하기도 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장면도 상상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좀 더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서너 시간이 흘렀다. 30킬로 미터 배낭이 빡빡하다. 그리고 그 위에 10킬로 정도의 작은 짐이 더해졌다.

둘을 떨어지지 않게 잘 묶는 것도 일이었다. 다 마쳤다고 한숨을 쉬고 나자 시간이 저녁 11시를 넘고 있었다. 새벽 출발을 위해서는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지만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되레 눈망울은 초롱초롱해지고 어디에서 절대자를 만나야 하는지 그 생각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만나지도 못할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들었고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순간 벌떡 눈보다 몸이 반응했다.

시계를 보니 4시였다. 그냥 일어났다. 더 누워있어봤자 피곤한 더 할 뿐이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먹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작은 가로등 불빛과 높은 건물의 옥상에서 쏘는 빛이 잠깐씩 창문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최대한 느긋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봤자 커피먹는 시간은 10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대한 그러려고 작정했다.

한 모금 마시고 맛을 음미했다. 두 모금 마시고 다시 창밖을 보았다. 일진이 사나운 건지 아니면 순탄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아직 갈산도 정해 놓지 않은 것을 그러나 나는 자책 하지 않았다. 방문을 밀고 나가는 그 순간에도 목적지는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

절대자가 있는 곳을 모르는 이상 그럴 수밖에 없다. 감에 의존하기로 하기보다는 택시 기사가 원하는 쪽으로 가려고 생각했다.

관악산도 좋고 북한산도 나쁘지 않았다. 그가 이 시간에 강원도 태백산까지 가겠다고 하면 나 역시 그러겠노라고 대답할 준비가 돼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바람은 싸늘했다. 춘삼월 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겨울 기운이 남아 있었다. 꽃샘추위라고 일기예보는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기후변화에 더 주목했다.

여름은 짧아지고 겨울은 길어지고 있었다. 이것은 하늘을 덮고 있는 두꺼운 어떤 층이 태양의 빛을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파트 정문으로 나서자 택시 두어대가 서 있었다. 지금 이 시간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보면서 간혹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 없는 손님은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남을 걱정하는 버릇은 최근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때는 내 앞가림도 힘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내 코가 석자 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생각은 쓰레기를 치우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서둘러 택시에 오른 나를 보고 기사는 배낭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옆자리에 있는 그것을 보니 과연 그랬다. 트렁크에 실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소중한 것을 껴안듯이 나는 배낭을 왼손으로 감싸 쥐면서 아직 목적지를 묻지 않은 기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디 산이 좋을까요?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산은 설악산이지요. 그럼 설악산으로 가지요. 그렇게 해서 나는 지금 설악산에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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