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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4-04-19 17:22 (금)
76. <군주론>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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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군주론> (1513)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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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언뜻 봐도 쉽게 잊히는 상은 아니다. 사람 이전의 원숭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양 볼이 홀쭉하고 하관이 빠르게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내 생각일 뿐만 아니라 그를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해 왔다. 지금 그의 초상화를 앞에 두고 <군주론>을 시작하는데 시선은 자꾸 앞쪽에서 머물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1469년에 태어나 1527년에 죽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초상화는 그의 진짜 모습이 아닐 수 있다. 그의 연구자들이 애용하는 그림을 그린 산티 디 티토가 그가 죽은 후 한 참 후인 16세기 후반에 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물을 보고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실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상상으로 그린 상상력의 근원은 바로 <군주론>을 관통하는 사악함이다.

이런 글을 쓴 자이이니 생김새도 아마 그 동물처럼 음흉할 뿐만 아니라 잔혹하며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에 딱 맞는 이미지가 필요했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상학>이 있었고 관상에 관해 동양뿐만 아니라 그 시기의 서양도 관심이 많았으니 화가는 이렇게 생겨 먹은 자가 바로 마키아벨리가 아니겠느냐고 추측했을 것이다.

짐작한 것을 그림으로 그렸을 때 후대의 많은 사람들은 다른 마카아벨리의 초상화보다는 산티의 초상이 그와 더 근접했을 것으로 믿고 그와 관련된 논문이나 책을 번역할 때 산티의 초상화를 표지에 곁들였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보니 과연 이 정도의 생김새라면 마키아벨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싶었다. 붉은 옷 속에 검은 조끼를 입은 그가 눈을 조금 아래로 깔고 동공이 왼쪽으로 쏠릴 정도로 옆을 비스듬히 보고 있다.

이마는 M자가 확연하고 짧게 깎은 머리는 날렵한 귀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말끔히 면도 된 인중 사이와 턱을 가운데 두고 일자로 입을 다물었으므로 법령이 양옆으로 퍼지고 광대뼈가 도드라진다.

그가 무언가를 파괴하고 누군가를 해치기로 결심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려는 찰나적 순간의 순간포착이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보면 깊은 수심에 잠겨있는 고뇌하는 사색가의 모습이다. 백성의 행복에 노심초사하고 어떻게 하면 갈라진 나라를 통일할 수 있을까, 잠 못이루는 자의 표정이다.

그런 마음으로 보니 과연 초상화의 주인공은 애국심이 넘쳐나는 품성이 넉넉한 마키아벨리가 틀림없다. 

이런 양가적 감정이 초상화를 보는 내내 떠나지 않는다. 산티의 그림은 전혀 ‘산티’가 나지 않는 하나의 명화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모나리자가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듯이 마키아벨리가 됐다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심정으로 내용 속으로 들어가 보자.

당시 피렌체는 심란했다. 로마제국이 쇠락한 후 이탈리아는 여러 제후국으로 쪼개져 있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나폴리와 밀라노가 고만고만한 세력을 형성했다. 거기에 로마 교황청까지 끼어 있었으니 다툼은 끊이지 않았다.

통일의 기운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데 주변국 상황은 달랐다. 프랑스나 에스파냐, 독일 등은 세력을 하나로 묶고 날로 번성했다. 이들의 길목에 있던 피렌체는 늘 전쟁의 피비린내 속에서 신음했다.

지금으로 치면 외교관 직함을 가졌던 마키아벨리는 이런 조국의 현실이 가슴 아팠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40 중반의 나이에 사랑하는 국가로부터 버림받아 직책을 잃고 가난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존재감도 확인하고 조국 통일의 길을 모색하는 방법으로 칼 대신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써대기 시작했다. 자신의 군주인 메디치가의 로렌초에게 헌정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바로 <군주론>이 되겠다. (The Prince )

‘메디치 전하’로 시작하는 첫머리에서 <군주론>의 집필 의도는 명확히 드러난다. 한마디로 말하면 위업의 성취를 바란다는 것. 그 위업이라는 것은 강한 국가, 통일된 국가를 의미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이렇다. 

군주와 국가, 정복과 통치, 점령과 반란, 도시와 자치, 강압과 설득, 신의와 배신, 가해와 시해, 시민과 귀족, 영토와 주권, 교회와 세속, 군대와 용병, 국가와 군대, 전쟁과 훈련, 칭송과 비난, 폭정과 덕정, 윤리와 정치, 경멸과 증오, 강압과 회유, 친선과 중립, 측근과 각료, 아첨과 조언, 패망과 존속, 인간과 운명, 조국과 해방 등이다. ( 신동준 역, 인간사랑)

제목만 대충 보고도 내용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고 작정하고 써 내려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코 길지 않으나 긴 어떤 책보다도 떨림과 여운이 있다.)

이 가운데 중복된 것도 있고 서로 어긋나는 주장도 있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것은 군주가 취하려야 할 태도다. 백성에게 귀족에게, 군인에게, 적에게, 신에게 그리고 그 자신에게.

 

선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악해야 한다는 것. 

참이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거짓이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파기해야 하고 백성을 사랑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억압해야 한다.

관대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인색해야 하고 덕을 베풀어야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폭정을 해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강압을 요구하고 또 때에 따라서는 회유하고 친선하고 중립을 지켜야 한다.

여기서 때는 군주에게 필요한 때이다. 더 나아가 조국을 해방할 때이며 통일할 때이다. 공공의 이익과 평화가 필요한 때이다. 그런 때에는 지체없이 사악해지라고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충동질한다.

악행 없이 권력을 보존하기 어려운 경우는 악행으로 인한 오명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주문한다. 이 대목에서 마키아벨리는 분명히 악을 숭상했다. 이때 그는 강력한 통치력을 보여줬던 체사레 보르자를 염두에 뒀다. 군주의 바람직한 모델로 여긴 것이다.

그만큼 체사레 보르자는 가혹했다. 

인자해서 혼란스러운 군주보다는 폭정을 해서라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한 그가 유약한 군주보다 낫다고 봤다. 군주는 간사한 여우가 되어도 좋고 사나운 사자여도 상관없다는 것. 품성이 없어도 구비한 것처럼 행동하고 신앙이 없어도 있는 것처럼 꾸며야 한다. (참, 좋은 거 가르쳤다.)

간사하고 악한 것은 나쁜 것이다. 

하지만 시쳇말로 풀이하면 융통성이다. 투자할 때와 그러지 않을 때를 구별하는 것이다. 리더 십에 관한 것이며 처세에 관한 것이고 성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출세 입문서와 같은 것이다. 이름만 달리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책은 군주든 시민이든 누구나 읽어야 한다.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상관없다. 예나 지금이나 필독서로 살아남은 원천이 여기에 있다.

고독한 군주의 마음을 알고 싶은가, 초라한 백성은 또 어떤가, 배운 것을 쓰고 싶어 안달하는 현자들에게도 더할 나위가 없다. 세상 누구에게나, 고민에 빠진 자라면 이 책은 동굴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이다.

: 마키아벨리는 잔인무도한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이것은 오해가 아닌 진실이다.

인정과 도덕은 가지고 놀라고 개에게나 주라고 말한다. 중상모략과 술책은 결과가 좋으면 그대로 묻힌다.

그러니 강한 군주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 살려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모이면 가차 없이 찔러 죽인다. 그런 자를 모범으로 삼아야 진짜 군주가 돼 나라를 통일하고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창에 찔려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냉혈한 주문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평화를 사랑했다. 공공의 가치를 중시했으며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걱정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놨다.) 평화를 위해 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면서도 그것을 증오했다. 아이러니다.

이런 불편한 진실과 마주 섰을 때 우리는 가슴 한구석이 찡함과 동시에 손뼉을 치면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비참한 현실과 그것을 돌파할 방법으로 제시한 마키아벨리의 처세술은 무슨 짓을 하든 일단 성공만 하면 칭송받게 된다는 위험한 독배다.

반드시 본받기보다는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은 결과보다도 과정을 중시하기도 한다. 산티의 그림에서 악마가 보였다가 도덕군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 것은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그렇게 하라는 의미는 아닐까.

군주론은 1513년에 썼으나 출간은 그보다 늦은 1532년에 했다. 게으른 독자를 위해 마지막 26장 조국과 해방과 관련된 끝부분을 소개한다. 통일을 위한 권고라고나 할까.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기회를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이탈리아 통일의 시대적 사명을 과감히 맡아 달라.’

한편 마키아벨리언은 권모술수에 능한 비열한 인간을 뜻하는 대신 전쟁의 종식과 평화통일을 바라는 자질과 운과 도덕을 겸비한 유능한 통치자로 이해하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참고로 헌정 대상인 로렌초는 이 책을 읽어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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