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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두르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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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두르지 않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 의약뉴스 이병구 기자
  • 승인 2019.02.15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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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쯤인가. 한참을 달렸다. 급가속을 하기도 했고 느리게 가기도 했다. 하지만 리처드는 언제나 적정속도를 유지했다.

그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그럴 나이도 됐으나 본성이 그랬다. 그런 그가 그녀는 마음에 들었다.

서두르지 않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않고 간혹 그랬을 경우는 밀어붙이기보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뒤로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을 그녀는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불같이 화를 내고 바로 사랑의 공세를 펴는 사람은 영화에서나 존재가치가 있다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리처드의 그런 자세는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

다시 얼마를 더 달렸다. 빌딩 숲을 지나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하이웨이로 접어들었다. 들판의 모습은 아직 푸른 빛은 아니었다.

멀리 높은 산은 하얗게 내려 앉은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하지만 멀리 아지랑이가 꿈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감지했다.

봄의 계절을 그녀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챘으며 그런 계절이 마음에 들어 그녀는 창문을 조금 아래로 내렸다. 차를 오픈 하기에는 이른 시기였다.

불어오는 바람으로 그녀는 머리가 귀 뒤로 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말린 머리카락이 볼을 지나 귀로 넘어갈 때 그녀는 작은 간지러움을 느꼈다. 기분 좋은 감촉이었다.

그 때 리처드는 그녀에게서 어떤 냄새를 맡았다. 분냄새는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화장을 하는 타입의 여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병동에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도 그런 습관이 유지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냄새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그녀가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문을 연 것인지 아니면 환기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인지를 알 필요는 없었다. 창문을 여는 단순한 행동 하나가 잠시 침묵을 지켜 오던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좁혀 주었다.

이것은 변화였고 그 변화에 대해 리처드는 반응했다. 그녀의 옆모습을 살짝 바라보면서 그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리고 볼륨을 높였다. 팝송 대신 케이팝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그의 세심함에 마주 고개를 흔들었다. 언제 한국음악을 준비했는지 그녀는 묻지 않았다. 열린 창문으로는 바람이 세게 불어 왔고 아직은 대화보다는 자연의 바람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바람 소리와 음악이 한데 어우러졌다. 차는 뜸해졌다. 백미러로 보이는 공간에는 따라오는 차가 보이지 않았다. 앞선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도로를 세낸 것처럼 도로 위에는 리처드의 차만 있었다.

그런 사실을 그녀가 깨닫고 있을 때 리처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가 없다. 우리 세상이야. 리처드가 다시 한번 몸을 흔들었고 그녀도 따라 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카락에서 멈췄을 때는 나지 않았던 냄새가 다시 차내를 채웠다. 샴푸를 쓰지 않는 그녀는 아침에 비누로 가볍게 머리 감기를 했다. 머리에서 나는 냄새라면 바로 그 냄새일 것이다.

하지만 리처드는 비누 냄새 대신 다른 냄새를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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